일본 '전설의 명반' 공개된다

일본 황실이 세계 최고(最古)의 나무 바둑판인 '목화자단기국(木畵紫檀碁局)'을 29일~11월 14일 나라(奈良) 국립박물관에서 공개한다. 바둑판 이전에 비견할 수 없는 예술품으로 찬사를 받아온 이 목화자단기국은 아쉽게도 1300여년 전 백제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목화자단기국과 짝을 이루는 수정 바둑돌인 홍아(紅牙)와 감아(紺牙) 각 150개, 그리고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바둑통인 은평탈합자와 흑백기자(바둑돌)도 함께 공개된다. 1993년 한번 일반에 전시된 이래 12년 만이다.

이들 바둑계 최고의 보물들은 모두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보낸 것이다. 660년 백제가 망한 뒤 고묘(光明)황후가 일본황실의 보물창고인 나라현 도다이지(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봉헌해 이곳에 보관되어 왔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 판이 백제의 유물임을 인정치 않으려 애쓴다. 반면 한국 측은 온갖 경로로 백제 작품임을 증명해내는 등 목화자단기국은 고대 바둑의 비밀을 온몸에 품고 있는 바둑판이기도 하다.

◆ 목화자단기국은 어떤 바둑판인가 = 자줏빛이 나는 자단(紫檀)이란 나무에 상아를 정교하게 박아 종횡 19로를 그렸다.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에만 나타나는 17개의 화점이 뚜렷하다. 옆면엔 봉황과 꽃, 낙타 등 동물들의 그림이 역시 상아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예술적으로도 품격과 자태가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 일본 측 주장 = 일본은 목화자단기국이 백제에서 온 것은 인정하지만 백제는 단지 경유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 없는 낙타가 그려진 것과 자단이란 나무가 인도 남부 스리랑카 원산인 것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멀리 티베트 등 중국의 변경에서 만들어져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일본에 도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 한국 측 반론 = 서지학자 안영이씨는 고묘 황후가 만든 일본 황실의 진보장(珍寶帳)을 찾아내 목화자단기국과 홍아, 감아 등이 한 세트로 백제 의자왕으로부터 일본 황실에 전해진 사실을 밝혀냈다.

또 일본서기에서 '백제로부터 낙타가 왔다'는 구절을 찾아내 백제가 무역을 통해 낙타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목화자단기국은 화점(花點)이 17개다. 17개의 화점은 한국 고유의 순장바둑에만 필요한 것이다. 안영이씨는 일본 측이 소국인 백제로부터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한다고 말한다.

삼국시대에 바둑이 성행했던 증거는 많다. 중국 사서인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엔 "바둑과 투호놀이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고 후주서(後周書) 백제전엔 "여러 놀이 중 바둑을 특히 숭상한다"고 적혀 있다. 신라의 박구는 당나라 최고수가 되어 중국 황제의 바둑사범인 기대조(棋待詔)란 직책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엔 고대 바둑의 유물이 하나도 없고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들과 안영이씨 등 바둑 연구가들은 12년 만에 공개되는 목화자단기국을 보기 위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중앙일보 / 박치문 전문기자 200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