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평양에 가보니

개성에서도, 금강산에서도 그랬다. 북한의 거리는 온통 잿빛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양도 그보다 크게 나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줍지 않은 선입견이 깨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흔히들 평양을 공원 속의 도시라고 부른다. 그만큼 녹지 공간이 많다는 뜻일 터.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한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자 쭉쭉 뻗은 포플러 나무 가로수가 남쪽 이방인을 맞는다. 마치 숲속에 길이 나 있는 느낌이다.

평양 시내에 가까워 오니 드넓은 평양 평야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이미 벼를 베어낸 자리에 심은 보리의 푸른 빛이 눈의 피로를 가시게 한다. 이삭 줍기를 하다 말고 볏단에 기대어 담배 한 모금에 취한 농부의 모습은 남측의 정경과 다른 곳을 찾기 힘들다.

금릉2다리와 금릉동굴(터널)을 지나 본격 평양 시내에 진입했다. 금수산 기념 궁전 앞 대로 옆에 설치된 궤도 전차가 부지런히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김일성 종합대, 4ㆍ25 문화 회관, 우의탑 등을 지나 개선문에 들어선다.

겉보기에는 평지에 지어진 듯 하지만 이 곳은 사릴 모란봉 자락이다. 높이 60m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보다 10m나 높다고. 개선문 광장에서 멀지 않은 을밀대에는 상추곡(賞秋曲)을 즐기려는 평양 시민들로 가득하다.

평양 학생 거리는 제법 번화가인 모양이다. 창전식료품, 창전옷상점, 종로약복점 등의 이름을 단 잡화 상점이 거리에 즐비하다. 은행나무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며 가을을 재촉하고, 대동강과 보통강 주위에 능수 버들은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축 늘어졌다. 평양의과대학 앞 윤이상 음악관 담벼락을 가득 메운 담쟁이 넝쿨은 마지막 붉음을 불사르고 낙엽으로 변신할 채비를 서두른다.

본격적인 관광에 나선다.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들렀다. 원시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북한 지역 유물 10만여점이 전시돼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인 평양시 상원군 검은 모루 동굴에서 출토된 물소와 사슴의 화석뼈가 진열돼 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검은모루가 바로 여기다!

잃어버린 역사의 반쪽을 찾은 느낌이다. 고구려 세번째 도읍지인 안학궁과 덕흥리 무덤벽화의 내부를 원형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도 인상적이다. 한편 신라, 백제의 유적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편이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은 남한으로 치자면 어린이 회관에 해당하는 곳. 7~17세 청소년의 예능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가야금, 발레, 수예 등 다양한 예능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데 수강료가 모두 무료이다.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기량을 닦은 청소년들의 공연이 수시로 이뤄진다. 평양교예극장에서는 평양의 대표적인 서커스공연팀으로, 모란봉교예단과 쌍벽을 이루는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묘기들이 펼쳐진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의 묘로 알려진 동명왕릉은 427년 장수왕이 길림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할 당시 옮겨왔다. 동명왕릉과 이 주변에 산재하는 16기의 왕릉은 지난 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됐다. 일제 때 도굴로 심하게 훼손됐으나 1993년 다시 복원했다. 인근에 조성된 소나무는 제주도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입구에는 왕릉 조성 당시 세운 정릉사터가 있다. 북한이 고구려 벽화 등의 유물을 근거로 전통 양식대로 복원했다. 단층도 신라, 백제는 물론 고려의 절에서 보는 것과 달라 이채롭다. 대웅전(大雄殿)을 옛 이름인 보광전(普光殿)으로 표기하는 것도 색다르다.

(한국일보 / 한창만 기자 200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