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史實)을 뒤집어보면 진실이 보인다”

역사대중화에 앞장서는 역사평론가 이덕일 박사
원사료 4000여권 보유··· 사회적 이슈 새겨나면 원사료 찾아보면 사실(史實) 재해석해

“역사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실(史實)을 쉽게 서술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선을 갖고 바라보느냐 하는 시각의 문제가 더 긴요한 거죠. 독자들은 사건을 둘러싼 전개과정보다는 그 사건을 해석하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선왕 독살사건’(다산초당)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김영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김영사) ‘사도세자의 고백’(휴머니스트)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 등 내놓는 책마다 20쇄 이상 인쇄를 거듭하며 호평을 얻고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 이덕일(45) 박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를 강조했다.

“고구려의 경우만 해도 그래요.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정권이었다는 중국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당(唐) 태종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방증해줍니다. 시안(西安)에서 고구려까지의 거리가 얼마입니까? 1000㎞도 넘는 곳에 떨어져 있던 당나라 황제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까지 쳐들어간 것이에요. 요즘으로 치면 부시가 직접 군대를 지휘해 이라크를 공격해 들어간 것입니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지요. 말을 타고서 1000㎞ 이상을 달려야 하는 고행길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리한 일을 당태종 이세민은 왜 해야 했을까요? 더욱이 그는 수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을 직접 본 사람입니다. 수나라의 몰락 원인이 수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세민이 왜 친정(親征)에 나섰을까요? 그것은 천하의 패권을 놓고 벌인 자존심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를 치지 못하는 한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하게 어깨를 겨뤘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의 정권이 중국을 통일하게 되면, 그 정권은 필연적으로 천하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한판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박사의 이야기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세계의 최강국은 한(漢)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고조선은 그런 한나라와 2년에 걸친 전쟁을 치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조선의 국력을 단적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요즘 미국과 2년간 대등하게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이 사실은 고조선이 고대세계의 최강자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조선의 영토는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는 지역을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중국에선 사용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는 지역이 무척 넓어요. 한반도는 물론 만주를 넘어 지금의 내몽골 지역에서까지 발견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고조선의 영토가 대동강 인근에 국한됐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1997년 이후 1년에 두 권꼴로 책 내

이 박사는 “개인적으로는 역사서술의 기초가 된 원사료를 직접 찾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이것은 역사를 사실적으로 다루기 위한 필수 작업”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박사가 보유하고 있는 원사료는 무려 4000권이 넘는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반고(班固)의 전한서(前漢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명나라 때의 원사(元史) 등 32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중국 정사(正史)인 ‘25사(史)’, 조선 태조~철종까지 472년의 역사를 2077책 500여권으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50권으로 이뤄진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종서 정인지 등이 139권의 책으로 고려의 역사를 정리한 고려사(高麗史), 조선 전기의 역사를 정리한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이 이 박사가 1차적으로 의존하는 원사료다. 그는 평소에 이러한 사료를 읽고 내용을 정리해뒀다가 어떠한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관련 사실을 찾아 세부적으로 파고드는 방법을 사용해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서울대 총장과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고 칩시다. 지금의 서울대 총장은 조선시대로 보면 성균관 대사성에 해당합니다. 저는 원사료를 읽었으니까 정조 때 군신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러면 조선왕조실록 등을 뒤져 정조와 성균관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이었는지를 다시 찾아봅니다. 그러면 이익의 손자였던 이가환을 정조가 대사성으로 임명하니까, 이를 놓고 ‘적절치 못하다’며 성균관이 들썩거렸던 앞뒤의 세부 정황을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박사가 지금까지 쓴 책은 30여권.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인문 분야에선 드물게 수만~수십만부짜리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인기 필자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이 박사가 처음 책을 냈던 1997년만 해도 이덕일이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를 해보네요. 그땐 사실 저도 출판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였습니다. 어느 출판사가 역사서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으니까요.”

이 박사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출판사 30곳에 팩스를 보냈다. “제목과 목차, 간단한 내용을 적어 30군데에 팩스를 보냈습니다. 그리고선 마음먹었지요. ‘어느 출판사든 제일 먼저 책을 내자고 하는 곳과 계약을 하겠다’라고 말이에요. 그랬는데 30곳의 절반인 15곳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저는 애초 마음먹은 대로 가장 먼저 답장을 준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게 ‘석필’이란 출판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큰돈은 아니었습니다만 인세를 받았습니다. 제겐 의미있는 금액이었습니다. ‘아, 이 정도라면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그 이후로는 계속 책을 냈습니다. 1년에 두 권 꼴이지요.”

이슈, 의미, 재미 함께 추구하고 싶어

이 박사는 자신의 인기비결에 대해 “시각이 독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세종만 해도 그렇습니다. 세종이 위업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아버지인 태종이 사전에 정적(政敵)을 제거해줬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국론을 단일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효율적인 정치를 펼 수 있었던 것이죠. 어떤 하나의 현상에는 반드시 그것을 있게 한 원인이 있습니다. 시각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고, 이 사람 입장과 저 사람 입장 모두를 바꿔가며 사실(史實)을 읽어보면 다양한 포커스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한 가지 사건을 놓고도 여러 가지 소재를 얻어낼 수 있게 되지요. 그것을 집어내서 재미있고 색다르게 가공해 전달하는 과정이 역사 대중화를 추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재탕 삼탕 우려내면 독자들이 금방 싫증을 내게 되거든요.”

이 박사는 지난 10월 3일부터 조선일보에 격일로 ‘이덕일 사랑(舍廊)’이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칼럼의 소재 역시 같은 원칙을 갖고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적 이슈와 역사적 의미, 그리고 재미를 함께 추구하고 싶습니다. 200자 원고지 5.4매라는 제한된 지면이긴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모두 다 담아보고 싶습니다. 만약 안된다면 이 중 두 가지만은 반드시 담아보자는 생각입니다.” 이 박사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며 “조금 더 수련을 쌓은 뒤에 칼럼을 맡아도 맡아야 하는 것인데, 너무 일찍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고 겸양의 말을 덧붙였다.

(주간조선 / 이범진 기자 200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