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이야기

멧돼지는 저돌적이다. 그래서 잡기가 힘들다

역사책을 보면 '요동성'의 위치는 고구려 국토의 한가운데였다. 요동성은 고구려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성이다. 하지만 '요동(遼東)'이라는 단어는 '먼 동쪽', '아득하게 먼 동쪽'을 의미하는 말이다. 오늘날 서양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극동(極東)'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소리다.

국토의 중심부에 있는 성이 어째서 까마득하게 먼 동쪽을 의미하는 요동성이 되었을까. 중국사람들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중국사람들은 고구려 땅을 '요동'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고구려 쪽을 바라보면 아득하게 멀기 때문에 요동이라고 한 것이다. 자기들 땅이 아니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고구려사람들은 '요동성(遼東城)'을 '오열홀(烏列忽)'이라고 불렀다. '오리골'이라고 읽었다고 한다. 바로잡아야 할 땅 이름이다.

어쨌거나 이 '요동'에서 어떤 사람이 돼지를 치고 있었다. 어느 날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돼지가 희한했다. 머리가 하얀 돼지였던 것이다. 돼지의 주인은 이 신기한 돼지를 임금에게 바치기로 했다.

돼지 주인은 돼지를 가지고 길을 나섰다. 하동(河東)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사람들에게 돼지를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시큰둥했다. 모두들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마을에 있는 돼지는 모두 머리가 하얀 돼지였다. 돼지 주인은 쑥스러워서 슬그머니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여기에서 '요동시(遼東豕)'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요동 돼지'라는 소리다. 남이 보면 대단치 않은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떠들어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식견 좁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동파육(東坡肉)'이라는 돼지고기요리법까지 개발할 정도였다. 소동파는 어느 날 하양(河陽)지방의 돼지고기가 일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을 듣고도 그대로 있을 소동파가 아니었다. 즉시 하인에게 몇 마리 사오라고 지시했다. 심부름 나선 하인은 술을 좋아했다. 하양 돼지를 사서 돌아오다가 술집에 들렀다. 술타령을 하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정신이 든 뒤에 돼지를 찾았지만 없었다. 자기 돈을 털어 '보통 돼지'를 사다가 바치고 시치미를 뗐다.

소동파는 이 돼지를 요리해서 친구들과 파티를 열었다. 친구들은 당연히 '하양 돼지'일 것이라고 생각, 무턱대고 칭찬을 했다. 소동파의 요리솜씨를 즐겼다.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어떤 노인이 찾아왔다. 하인이 잃어버렸던 '하양 돼지'를 찾아서 소동파에게 전달하려고 온 것이었다.

소동파의 친구들은 얼굴이 빨갛게 변하고 말았다. '보통 돼지'를 '하양 돼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맹목적으로 칭찬을 했던 것이다. '맹목(盲目)'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화자찬 같지만 외교문제는 기대를 초과달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나라경제가 잘 굴러가고 있고, '경제 올인'은 유신시대에나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대통령이 이번에는 외교에서도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총리는 "일부 언론이 혹세무민하고 있지만 나라는 반석 위에 올라 있다"고 했다는 소식이다. 대통령의 말과 어딘가 통하는 발언이었다. 이 기사를 읽고 떠오른 것이 '요동시' 이야기다.

청와대는 "파탄 난 나라경제를 국민과 함께 힘겹게 다시 일으켜 세우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격려는 못할망정 매도와 저주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부 언론'에 대한 지적은 잊을 만하면 나오고 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며 떠올리는 것이 '하양 돼지'이야기다.

서울 시내에 멧돼지가 한 달 사이에 3번이나 나타났다는 보도다. 또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멧돼지 고기는 '네발짐승' 가운데 최고로 알려져 있다. 집돼지와 달리 역한 냄새가 없을 뿐 아니라 육질이 무척 연해서 누구나 포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멧돼지는 '저돌적(猪突的)'이다. 그래서 잡기가 힘들다. 저돌적인 것 또한 누군가와 닮은꼴이 아닐까.

<김영인 논설위원>

(데일리안 200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