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차 기술 얻기 인수·스카우트 필사적

한국 산업 경쟁력의 중추인 자동차 관련 기술까지 경쟁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이번 현대차 감사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해외 기술유출 대상은 반도체.휴대전화.이동통신 핵심부품 등 IT에 집중돼 왔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자동차 산업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정하고 해외 유명 자동차 업체들과 지분 참여를 통한 합작법인을 설립해 왔다. 현재 세계 자동차 10대 업체 가운데 프랑스 르노 이외에는 모두 중국에 합작 공장을 갖고 있다. 르노도 내년께 중국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업체는 그러나 중국에서 구형 모델만을 생산하며 기술 이전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따라서 중국 업체들은 선진 기술 습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디자인 및 엔진.내구성 기술을 가장 탐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술은 그만큼 자체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현대차가 자체 적발한 기술도 유출되면 안 되는 핵심 기술이다. 자동차 내구성 시뮬레이션은 신차를 개발하면서 차량을 제작하기 전에 컴퓨터로 각종 재료(강판 및 소재)와 설계 데이터를 입력한 뒤 내구성 등을 테스트하는 것을 말한다. 도어의 경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수천 번 문닫는 동작을 반복한 뒤 이상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따라서 시뮬레이션 자료에는 각 부품의 재질과 강도 등에 관한 정보가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강철구 이사는 "최근 기술유출은 합작공장 설립이나 산업스파이에 의한 도용보다 협력업체나 내부 직원들의 데이터 관리 허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불법적인 기술유출이 밝혀지면 국제소송을 통해 철저히 대응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분야에서 중국에 기술이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처음 제기된 것은 2003년 쌍용차 해외 매각 때다. 매각 우선협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중국의 란싱(藍星)그룹은 공장.연구소 등을 세밀히 실사했었다. 그러나 란싱 그룹은 돌연 인수를 포기해 쌍용차가 갖고 있는 디젤 엔진 기술만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었다. 올 초 쌍용차는 중국 상하이차(SAIC)에 6000억원에 매각됐다. 이때에도 기술유출 문제가 지적됐었다.

전직 대우차.기아차 연구개발 담당자들이 중국 자동차 업체에 대거 스카우트된 것도 기술유출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이들이 중국 업체에 취직한 뒤 단순한 복제만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한국형 중국차'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문제가 된 '짝퉁 마티즈(중국명 QQ)'가 대표적이다. GM의 중국법인인 상하이GM은 지난해 12월 QQ를 생산하는 체리자동차를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고소했다. GM대우차 관계자는 "QQ는 마티즈 순정 부품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완벽히 똑같다. 단순히 외관만을 베껴서는 그런 차를 생산할 수 없다"며 "설계도면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커 이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리자동차에는 전 대우차 출신 연구소 직원 여럿이 간부급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진 기자

기술 유출 적발된 것만 82건

추정 피해액 77조원에 달해

기술 해외 유출 사례

1998년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 이후 지금까지 모두 82건의 기술유출이 적발됐다. 추산 피해액은 76조95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적발된 사례에 불과하며 실제 피해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여기에다 국내 핵심 연구진이 고액 연봉과 각종 인센티브 등을 내세운 외국 경쟁 업체들에 속속 스카우트돼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간 해외 기술유출은 주로 전자.정보통신(IT) 산업에서 적발됐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분야다. 유형별로는 외환위기 이후 인력감축과 조기퇴직 등으로 불안을 느낀 내부 직원에 의해 이뤄진 사례가 많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해외 기술유출 82건 중 73건(89%)이 전.현직 직원이 저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2~3년 전부터 고부가 기술유출 시도가 잦아지면서 적발 건당 예상 피해규모도 수조원대를 넘어섰다. 올 7월 최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빼내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로 하이닉스반도체 전.현직 직원들이 구속됐다. 만약 이들이 적발되지 않아 기술이 유출됐다면 앞으로 5년 동안 12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게 검찰 추산이다.

98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대만 유출(6조원), 2001년 LG정보통신 초고속정보통신망 기술 중국 유출(5조원), 2003년 6월 휴대전화 컬러모듈 기술 중국 유출(4조3000억원) 등 모두 국가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들이다. 중소기업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7월 벤처기업 전 대표 등이 회사로부터 광산 기술을 빼돌려 호주 회사에 팔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한국의 첨단 기술에 가장 눈독 들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첨단 산업에서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선 첨단 기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일본 등 일부 업체도 국내 기업의 기술에 눈독 들이고 있다.

첨단 기술의 해외유출 시도가 잇따르면서 관련 기업들은 내부 단속에 힘쏟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카메라폰.디지털 카메라.캠코더 사용과 개인용 저장장치 반입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2005-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