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장가 강수(强首)는 소대가리"

김창겸 박사 주장, 일명 "쇠대가리"

특이한 외모, 특히 얼굴 생김새 때문에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들은 많다.

공자(孔子). 그의 이름은 구(丘). 언덕이라는 뜻이다. 한데 공자가 공구(孔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얼굴 생김새 때문이라는 기록이 많다. 丘란 언덕이라는 뜻인데 공자는 이마가 툭 튀어나오고 머리가 편평한 언덕 같이 생겼다 해서 이름조차 '언덕'이 되었다 한다.

그보다 먼저 죽은 공자의 아들은 이름이 리(鯉). 잉어라는 물고기다. 공자의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떤 사람이 그녀를 위해 건네 준 잉어를 먹고 아들을 낳았다 해서 이름조차 '공 잉어'였다. 공리(孔鯉)는 또 다른 이름인 자(字)가 백어(伯魚)인데 우두머리 물고기라는 뜻이다. 잉어가 바로 물고기 중에서도 가장 귀하다 해서 字까지 백어(伯魚)를 삼았다.

한(漢) 왕실을 전복하고는 신(新)이라는 왕조를 개창한 왕망(王莽). 그는 독수리 머리, 즉, 대머리였다. 대머리는 사악함의 대명사였던 듯, 후한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채옹(蔡邕)은 그의 대머리를 문제 삼아 그를 선천적인 악인으로 공격했다.

한국사에서 용모 하면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나아가 당군(唐軍)까지 한반도에서 몰아내던 소위 통일전쟁기 때 문장으로 대활약한 강수(强首)가 있다.

생몰연대가 확실치 않은 그에 대해 삼국사기(三國史記) 강수열전(强首列傳)에는 묘한 기록이 두 군데서 발견된다.

하나는 그의 출생에 대한 대목이니, 이에 의하면 강수의 어머니는 꿈에 뿔(角)이 돋친 사람을 보고 임신을 하고는 아들을 낳았는데, 정말로 그 아이 머리 뒤에는 높은 뼈가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강수는 '뿔사나이'였다.

다른 하나는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어 마침내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배알하게 된 순간에 대한 묘사가 있다. 이 대목 삼국사기 기술은 다음과 같다.

"왕이 놀라 기뻐하면서 서로 늦게 만났음을 한탄하고는 그 성명을 물으니, (강수가) 대답하기를 "신은 임나가라(任那加良) 사람으로 이름은 우두(牛頭)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이 "경(卿)은 두골(頭骨. 얼굴생김새)을 보니 강수 선생(强首先生)이라 할 만하오"라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편수원이며 신라사학회장인 김창겸 박사는 강수의 원래 이름 '우두'(牛頭)나 나중에 김춘추가 내린 이름 강수(强首) 모두 실은 '소대가리' 혹은 '쇠대가리'라는 것이다.

머리가 소처럼 생겼다 해서, 혹은 쇠뿔 같다고 해서 牛頭, 즉, 소대가리라 했으며, 그런 대가리는 쇠(鐵)처럼 셀 수밖에 없으며 '센대가리' 혹은 '쇠대가리'와 같다는 것이다.

22일 서울 마포 경인문화사에서 개최된 신라사학회 제44차 정기발표회에서 김 박사는 '강수와 신라 중대 사회'라는 글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삼국사기 판본(板本)에 따라 그의 이름을 '우두'(宇頭), 혹은 '자두'(字頭) 등으로 돼 있으나 '우두'(宇頭)가 옳다고 지적했다.

즉, 字頭는 宇頭를 잘못 기록한 것이며, 宇頭는 牛頭와 발음이 같다는 것이다. 宇라는 글자가 모양이 비슷한 字자로 잘못 쓰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강수는 원래 이름이 '소대가리', 즉, 牛頭였으나 나중에 출세하고 나서 '소대가리'로 그대로 부르기는 뭣 해서 牛 대신에 발음이 같은 宇자로 대신 썼다고 주장했다.

문무왕은 한반도 통일을 달성한 뒤 신하들의 공로를 총평하는 와중에 그 1등 공신으로 군사 분야에서는 김유신을 꼽는 한편, 문장에서 강수가 기여한 공로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극찬했다.

이로 볼 때 신라의 '소대가리' 강수가 소나 쇠처럼 저돌적이지만은 않았음이 확실하다. 외교문서로 당 황실을 농락할 만큼 교활한 소대가리였던 것이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