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오염 외국의 3 ~ 4배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되는 수은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월경(越境) 오염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본지가 최근 입수한 미국 '지구물리학연구 저널'(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의 2004년 8월호 게재 논문 '일본.한국.중국 주변 대기 중 수은'에 따르면 동중국해 상공의 수은 농도는 ㎥당 6.3ng(나노그램.10억분의 1g), 동해 상공은 3ng으로 측정됐다. 특히 제주도 서쪽 해안(고산리)의 수은 농도는 최고 6.34ng에 달했다. 자연 농도(1.2ng)의 최고 5배 수준에 이를 정도로 한반도 주변의 수은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 국립대기연구센터가 2001년 한반도 주변 상공에 16차례 비행기를 띄워 수은 농도를 측정한 결과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의 수은 농도가 높은 것은 석탄을 많이 쓰는 중국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의 석탄 화력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수은은 연간 약 600t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미국은 자국 내에 떨어지는 수은의 30%가 중국발(發)이라며 인공위성과 항공기 등을 이용해 중국의 오염물질을 추적하고 있다. 편서풍이 나쁜 공기를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수은과 황사 먼지를 지구 곳곳에 흩뿌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종대 김기현 교수팀도 2000~2001년 서울 한남동에서 5.4ng, 강화도에서는 3.3ng의 수은 농도를 확인했다. 외국의 3~4배 수준이다. 김 교수는 "서울과 강화도의 오염도가 높은 것은 중국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방한한 덴마크 환경역학전문가인 필립 그랑진 교수는 "한반도.일본의 지표면 ㎡당 연간 35~70㎍(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의 수은이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수은 오염이 가장 심한 미국 동부지역, 동유럽 등과 같은 수준이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대비책은 커녕 실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대기 중 수은을 상시 측정하는 장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수은과 관련된 대기환경기준도 없는 실정이다.

◆ 수은 배출량의 33%는 중국산 =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은 전 세계 석탄의 25%를 소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다. 베이징 중심가의 수은 농도는 10ng을 넘는다. 이 같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매년 30만 명에 이른다. 중국의 석탄 소비는 경제성장에 따라 앞으로도 매년 12%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수은 배출량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오염방지 정책 때문에 오염배출량이 한동안 줄었으나 최근 화력발전소 건설 등으로 인해 대기오염 배출량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수은 규제 국제협약 필요" = 중국의 수은 배출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 연구팀은 미 대륙은 물론 한반도 주변의 대기 오염까지 정밀 측정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환경계획(UNEP)을 통해 수은 오염을 지구 전체의 환경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UNEP는 2001년 '수은 등의 지구 오염 상황과 영향 평가(GMA)' 사업을 추진키로 결의했고 올 2월 수은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본격 추진키로 결정했다. 유럽연합(EU) 등 일부 국가들은 기후변화협약처럼 수은 배출을 규제하는 국제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손 놓고 있는 한국 정부 = 국내 산업체에서 배출되는 수은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 이한국 박사가 2003~2004년 국내 32개 소각시설을 조사한 결과 배출허용기준(㎥당 100㎍)을 초과한 시설이 네 곳이었고, 최고 315㎍을 배출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환경부는 대기 중 수은 농도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내년에 일부 지점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한 뒤 대기 중 수은 측정방법을 마련하고 임신부 등 민감 계층을 대상으로 하루 섭취량을 정해 권고하는 등 생물경보체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주대 의대 장재연(환경보건학) 교수는 "수은은 휘발성과 독성이 강해 물-공기-먹이사슬 간 이동이 활발하다"며 "환경 내 이동과 인체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수은의 독성 = 수은은 언어장애.운동장애.정신지체를 일으키고 사망을 초래하는 유해 중금속이다. 1950년대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수은 중독으로 인해 손발이 뒤틀리고 혀가 마비되는 미나마타병이 발생, 1만2000여 명이 병에 걸리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서는 88년 형광등 제조회사에서 일하던 15세 소년이 수은.유기용제 중독으로 사망했고, 형광등.온도계 제조회사 노동자들이 수은에 집단중독된 사례도 있다.

오늘 한.중.일 환경장관회의

이재용 환경부 장관과 셰전화(解振華) 중국 국무원 국가환경보호총국 국장(장관급),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 환경상이 참석하는 제7회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가 22, 23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회의에서 3국 장관들은 자원순환형 사회 구축, 황사와 기후변화 대응 등을 논의한다.

(중앙일보 / 강찬수 기자 200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