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공부방에 희망 심어준 ‘맞춤형’ 기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기업 사회공헌 활동도 더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필수적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겨레>는 기업도 단순한 경영활동 차원을 뛰어넘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는 차원에서 ‘기업시민’ 면을 신설한다. 사랑을 실천하고, 나눔의 훈기를 불어넣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데 앞장서는 기업들을 찾아 격주로 소개한다.

수학교재 구입부터 어린이 성교육까지
교사들 제안 맞춰 370명 쌈짓돈 참여
“골라서 돕고 반응 확인되니 관심 지속”

“언니 오빠들, 감사해요.” 바이올린을 꼭 붙든 아이들의 손이 살짝 떨린다. 하얀 볼도 발그레 상기돼 있다. 지난달 23일 충남 아산의 구세군 아동센터 음악교실. 합주를 지켜본 사람들이 큰 박수를 보내고서야, 아이들은 함박 웃음을 터뜨린다.

이날 음악교실 창단에 이은 공연은 씨제이(CJ) 직원들의 도움으로 열렸다. 씨제이의 후원 활동이 다른 기업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전국 빈곤층 공부방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전적으로 직원들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내 기부 사이트인 ‘도너스 캠프’(www.donorscamp.org)에 올라온 교육 제안서들을 보고, 원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전국의 공부방 선생님들이 교육 제안서를 사이트에 올리면, 이 프로그램에 관심있는 직원들이 한두푼씩 내 참여하는 것이다.

씨제이가 사회공헌 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이 교육지원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교육 제안의 범위가 학습지도에서 예술, 체육, 현장체험, 심성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교사들이 제안한 교육 프로그램은 평범한 회사원들의 직접 참여와 선택에 의해 실제로 현실화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공부방 아이들의 반응과 기부 내역은 사진과 함께 사이트에 그대로 공개된다.

“학습교재 구입에 감사드려요. 해법국어 17권 10만8375원, 해법수학 10권 6만3750원….”(광주 상록지역아동센터) 대부분 공부방 지원과 관련된 것이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올린 간절한 제안도 눈에 띈다. “주변 임대아파트는 북한 이탈 주민, 장애인, 홀로 사는 노인 등이 어렵게 모여 살고 있어요. 겨울용 담요와 내의 20벌(40만원)이 필요하답니다.” (부산 개금3동 사랑빛 지역아동센터)

기부 대상으로 채택된 제안을 비용 기준으로 보면 1건당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안팎이다. 직원들의 푼돈이 모아져 후원이 이뤄지는만큼 단돈 천원도 소중하게 쓰인다. 직원들의 평균 기부액은 3만원 정도. ‘방치된 소외계층 아이들의 성교육’ 제안에 후원했다는 주재경(32) 대리는 “평소 기부라면 불우이웃 돕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기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씨제이가 지난 7월 도입한 이 기부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기부와는 달리, 공부방 교사들의 제안과 직원들의 선택에 의해 능동적인 참여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사의 기부 활동을 이끌고 있는 곽대석(50) 사회공헌팀장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빈곤층 자녀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일종의 맞춤형 기부”라면서 “기부자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른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투명한 지정기부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큰 의미를 뒀다. 사원 백재은(27)씨는 “지금까지는 기부하고도 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를 정도로 내고 나면 끝이었다”면서 “이 프로그램은 내가 돕고 싶은 곳을 골라 돕고 반응을 확인할 수 있어 계속 관심이 쏠린다”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모금 상황이 전해지고, 이메일로 아이들의 감사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기부에 참여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한다.

현재 이 사이트에 올라온 제안서는 140건, 이 중 심의 절차를 거쳐 기부 대상으로 채택된 것은 절반 정도다. 지금까지 370명이 기부해 1752만원이 모였다. 프로그램의 회원으로 참여한 직원 중 실제 기부자는 아직 14%에 불과하지만, 선진 외국의 자발적 기부율이 3~5%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꽤 성공적인 출발로 보인다. 총 기부 횟수는 참여자보다 200건이나 많은 570건, 한번 기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기부에 참여하는 재기부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드백이 가능하고 기부자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도너스 캠프가 기부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는 셈이다. 씨제이는 사내외 반응을 봐가며 내년부터 일반인에게도 사이트를 개방할 예정이다.

(한겨레신문 / 홍대선 기자 200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