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연구 박사급인력 집중 육성”

17일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제교류재단의 공동주최로 열려온 세계한국학자대회가 19일 마무리됐다.

이번 대회는 ‘해외 한국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한국학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한국에서 어떤 지원을 바라는지 알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37개국에서 108명의 한국학자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일본·중국 ▲아시아·오세아니아 ▲미주 ▲유럽·중동·중앙아시아 등 4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국학기관·한국학회 현황과 발전방안 ▲한국학지원기관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안 ▲한국학 교과과정과 교재개발을 주제로 토론했다.

한국학과 폐지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가장 관심을 끌었던 모임은 유럽·중동·중앙아시아 그룹. 아무래도 ‘한국학의 위기’ 자체가 유럽에서 한국학과가 폐지됐다는 소식에서 나온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격적이라고 ‘반짝 투자’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는 게 현지 한국학자들의 조언이었다.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 대학 한국어번역원장은 독일에서의 한국학 축소원인을 ‘통독효과’로 설명했다. 통독비용 때문에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임과 동시에 구 동독지역에 있는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그 지역 대학의 한국학과가 폐지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후베 원장은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한국학과가 차츰 환영받고 있다면서 대신 석·박사 과정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한 문제로 꼽았다. 한마디로 고급인력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돈 스타 영국 더럼대학 동아시아연구소장 역시 블레어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한국학과 폐지의 배경으로 꼽았다. 대학 평가와 구조조정이 진행되다 보니 한국학과뿐 아니라 영국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아시아 관련 학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 소장은 돈을 얼마 쓴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보다, 각국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한국학에 접근하고 있는지 분석해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제훈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 일본·한국학과장은 이 때문에 성급해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연 학과장은 어차피 한국학에 대한 관심은 한국의 국력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정부나 기업이 유명 대학에 기부하는 방식 등으로 한국학과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것보다 젊은 박사급 연구원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레이너 도멜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 동아시아학연구소장은 지속적인 지원 못지 않게 ‘적절한 시기에 결정적인 지원’이 한국학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봤다. 도멜스 소장은 99년 동아시아학연구소를 세울 때 한국학과가 포함된 것은 때 마침 한국측에서 교수와 사서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학 표준교재는?

또 한가지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한국학 교재의 표준화다. 그런데 이는 참 어려운 작업이다. 해외한국학자들의 수준도 천차만별이고 배우는 학생들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일괄적인 교재가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굳이 필요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초가 될 만한 것은 교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송창주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오스트랄아시아한국학회 부회장은 “각국의 배경과 역사가 다르더라도 비슷한 수준을 상정한 교재의 표준화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송 부회장은 모든 교재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사회와 문화’와 같은 기초과목은 공동교재 개발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왕혜숙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다양한 교재 개발을 주문했다. 어학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기 때문에 한국 영화를 통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서 시청각 관련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신문 / 조태성 기자 2005-10-20) 

“한국학 투자에 기업들 돈내야”

“한국학의 위기라는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외려 한국학에 대한 ‘자생적인 관심’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윤덕홍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운을 뗐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교육부장관과 각 대학 부총장들이 모임을 열었다.

주제는 “한국학과를 어떻게 설치할 것이냐.”였다고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돈을 댄 것도 아닌, 자발적인 모임이 이뤄졌던 것. 각국의 경제사정과 한국정부의 지원여부에 따라 부침은 있지만,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예로 든 동남아 지역은 지금 당장 교수급 요원을 원하는데.

- 내년부터 교수요원 양성을 시작한다. 해당 국가 학생을 우리가 공부시켜 교수로 되돌려보낸다. 그들은 그 사회의 지도층이 될 수 있고 또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바르게 이해시켜야 친한파를 만들 수 있다.

역시 돈이 뒷받침되어야 할 텐데.

- 솔직히 예산 얘기하는 게 부끄럽다. 1년에 100억원이 조금 넘는데 기본비용 빼면 쓸 돈이 얼마 없다. 그래서 프로젝트 형식으로 민간자금을 유치해볼 생각이다. 코리아브랜드가 높아지면 기업에게도 이익인데 설득이 쉽지 않다. 일본학 기금은 반이 기업에서 나오는데….

우리 기업은 왜 소극적인가.

-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이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면 멕시코의 우수한 학생을 삼성장학생으로 우리 연구원에 데려오면 된다. 돌아가면 친한국, 친삼성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실 비용도 얼마되지 않는다. 외국인에게 학비를 안받으니 기숙사비·생활비 등 연간 600만원 정도 드는데, 6억원이면 100명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학 지원기관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한국학을 총괄해서 관리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조직을 만들 때 나와야 하는데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신 국제교류재단과 역할을 분담한다. 그쪽은 하드웨어, 우리는 소프트웨어하는 식으로.

연구원의 조직개편도 그런 취지인가.

- 역사·철학 하는 식의 학과별 구분을 연구소별 조직으로 바꿨다. 연구소들은 자급자족 체제다. 개편한 이유는 그동안 우리 연구원이 너무 공부만 해왔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 국가, 사회, 국민이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자는 의미다.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연구원이 되어야 한다.

이번 대회 결과는 어떻게 반영되나.

- 일단 한국학백서를 만들어 해외 한국학자의 인명과 관심분야·전공분야 등을 정리할 생각이다. 대륙별·기관별 특징이 나오면 지역마다 ‘거점대학’을 선정해서 집중 육성할 예정이다. 또 한국학자 재교육과 한국학 교재 표준화 방안에 대해서도 연구에 들어간다.

(서울신문 / 조태성 기자 2005-10-20) 

‘첼시’에는 1000억원 지원하면서

신문을 쫙 펼쳐봤을 때 정말 인기 없는 기사들이 있다. 여행 수지 적자 폭이 늘고 있다는 것과 해외 유학 연수비용이 연간 수 십 억 달러가 넘는다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해외 문물을 경험하고 현지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투자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 없다. 그러나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한국을 관광하거나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학에 대해 연구하는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미 6회에 걸쳐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이 기사화한 ‘해외 한국학의 현주소’란 기획 취재를 위해 영국에 갔을 때였다. 당시 이미예 교수란 분과 어렵게 연락이 돼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올해 6월 한국학 강좌가 폐지된 뉴캐슬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한국어 교육을 맡아왔다.

낮게 깔린 이 교수의 목소리는 한국학 강좌 폐지를 막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읊조리더니, 결국 한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한 때 한국 대기업인 S사와 L사가 영국 북부에 진출했을 당시에는 수천 달러 정도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런 일시적 관심은 공장 등이 철수하면서 바로 사그라졌다”는 질타였다.

이 교수는 2001년 이미 한국학 강좌 폐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뉴캐슬 대학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을 설득해 주영 한국 대사관과 국제교류재단 등에 공식 후원을 요청하게 했다.

그러나 대학쪽의 관계자들도 4년여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뉴캐슬 대학의 경우 중국학과 일본학을 잔존시키면서 상대적으로 수강생이 적은 한국학 강좌만 문을 닫았다. 한국학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스포츠 마케팅이다. 올해 삼성전자는 영국 명문 축구단 첼시와 후원 계약을 맺고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LG역시 올해부터 내년까지 리버풀FC에 100만파운드(18억원)를 후원한다고 한다.

이처럼 스포츠 마케팅에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는 기업이지만 가시적 효과가 떨어지는 한국학 사업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현지 한국학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큰 것을 놓치고 작은 것을 얻는 근시안적 접근방식이다. “기업들이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한국학은 경제적 이익만 가지고 따질 문제가 아니다. ‘영국과 인도에서 사용되는 세계지도에 독도가 사실상 일본 영토로 표기됐다’는 짜증나는 뉴스를 언제까지 참고 들을 것인가.

(미디어오늘 200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