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과 다섯 자루의 칼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 중 수수께끼는 ‘칼 다섯 자루(五刀)를 차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학계에서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해석해왔는데 필자가 만난 전통무예 연구가는 위엄용이 아니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전통무예인 칼을 날리는 ‘비도술(飛刀術)의 마지막 전습자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주장이었다. 설득력은 있었으나 근거 사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중국의 경극(京劇)에 그 근거가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연개소문이 주인공인 경극이 4편이나 만들어졌다. ‘독목관(獨木關)’, ‘분하만(汾河灣)’ 등이 이런 경극들인데 여기에서 연개소문은 고구려 장군이 아니라 소수민족 장군으로 등장해 칼을 던지는 비도술을 사용한다. 고구려 장군이 아니기 때문인지 북한의 항의로 1965년 상연 금지되었다.

이런 경극들이 송(宋)나라 때 만들어진 민간 문학인 평화(平話)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중요하다. 중국 민중들이 고구려 무사들의 전투장면을 목도하고 이야기로 남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구·신당서’ 등은 연개소문이 패주하는 당 태종을 곱게 보내준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원 내륙 깊숙한 곳까지 추격했다는 야사가 많았는데 송나라 때의 민간문학이 사실임을 증거한 셈이다.

명(明)나라 말기 모원의(茅元儀)가 편찬한 ‘무비지(武備志)’에는 ‘당 태종 때 검사(劍士) 1000명이 있었으나 일부 비법이 전해지지 않다가 근래에 조선에서 그 검법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게 패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그 검법은 고구려 전통무예일 것이다. 장이모(張藝謨) 감독의 무협영화 ‘연인(원제:십면매복〔十面埋伏〕)’은 당나라 말기 왕권에 대항하는 ‘비도문(飛刀門)’ 이야기다. 우리가 위엄용이라고 쉽게 해석하는 동안 중국은 경극과 영화로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 후손들 묘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비도술을 소재로 삼은 우리 영화나 소설은 언제나 나올까 기다려진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조선일보 200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