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기획·탐사 공모] '흔들리는 중국동포 4세대들'

본지가 주최한 제4회 대학생 기획.탐사 기사 공모전의 수상작 7편을 오늘부터 싣습니다. 대학생들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신선한 시각이 담긴 기사입니다. 지면 사정으로 전문을 모두 싣지는 못했습니다.

대상

연세대(원주캠퍼스) 철학과 4년 강은나래

중국 개방화 직후인 1980년대에 태어난 중국동포 4세대들. 이들은 요동치는 중국 경제체제와 동포사회에서 자라나 교육받았다. 지난 8월 중국 옌볜 등지에서 동포 대학생 2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해 해외동포 정책의 방향을 찾아봤다.

◆ 백지 수준의 한국사 실력 = "여기는 중국이고, 우리 국사는 중국 역사잖아요. 한국사는 잘 몰라요."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중.고교를 나온 연변과기대 3년생 김명호(22)씨의 말이다. 이 대학 양대언(역사학) 교수는 "동포 신입생의 한국사 실력은 거의 백지 수준"이라며 "집안이나 중.고교에서 제대로 된 한국사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포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중.고교 때 고구려에 대해 어떻게 배웠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의 고대국가'라고 정확히 답한 학생은 32.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배운 적 없다' '배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내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답했다.

고구려.발해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연구작업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59.9%. 이 중 상당수는 동북공정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동북공정이 계속 진행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계속돼야 한다'(31.8%)는 답변이 '중단돼야 한다'(19.9%)는 의견보다 훨씬 많았다. 나머지는 '모르겠다'와 무응답 등 판단을 유보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민족 역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 잘 모릅니다. 소수민족 역사가 대입시험 과목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학교도 학생도 열심히 가르치거나 공부하려 들지 않습니다."(옌볜 제1중학 교사 리강씨)

◆ 정체성 위기 = '국가(중국인)와 민족(조선족) 중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6%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에서 찾았다. '한국에 귀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하고 싶지 않다'(72.3%)는 답변이 '하고 싶다'의 7배에 달했다.

옌볜대 강순화(역사학) 교수는 "동포 학생들은 부모세대의 처절한 민족의식을 이해하지 못한 세대"라며 "하지만 한국과의 교류를 지켜보면서 독자적인 민족관과 정체성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소비에 춤추는 세대 = 중국 공무원 한 달치 월급은 평균 800위안(10만여원)이다. 하지만 동포 대학생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4%가 이보다 많은 돈을 한 달 용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 달에 1500위안 이상 쓴다는 응답도 11.1%(28명)나 됐다.

연변과기대 경영정보학과 정광옥(2년)양은 "한국 청바지는 200위안 정도로 중국산의 두 배지만 세련된 한국 옷을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과소비하는 학생들은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포 대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쓰지만 79%는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서 쓴다고 답했다.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직접 번다는 응답은 11.5%에 그쳤다.

◆ 떠나는 젊은 세대 = 95년 문을 연 연변과기대의 재학생 중 85% 안팎은 동포 4세대다. 졸업생의 진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졸업자 1709명 중 55%가량이 옌볜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근무지를 보면 베이징.상하이 같은 중국의 대도시(614명)가 가장 많았고, 한국(234명).일본(80명) 순이었다. 연변과기대 취업지원실 주욱천 과장은 "한번 떠난 졸업생은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할 때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옌볜대의 경우 전체 졸업자 2886명 중 211명이 졸업 후 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강순화 교수는 "기성세대가 '이 땅은 우리가 피로 지킨 땅'이라고 외쳤다면 지금 세대는 '낙후한 땅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게 이들의 생존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양대언 교수는 "이들에게 더 이상 한국식 민족주의를 강요할 수 없다"며 "동포 4세대가 한.중의 경제적.정치적 이해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도록 한국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모전 심사평

"해외동포 보는 시각 바뀔 필요성 일깨워"

올해로 4회가 되는 중앙일보 대학생 기획.탐사기사 공모에는 52편이 응모(전국 23개 대학에서 70명이 참가), 공모전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응모작은 1, 2차 심사를 통해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주장을 펴는 글이나 기행문류의 기사, 취재력이나 필력이 미흡한 기사를 제외하고 남은 16편을 대상으로 본 심사를 벌였다.

우선 정확한 사실에 입각하려는 자세를 보았다. 최근 기성 언론에서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사람들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기자 자신의 주장을 사실과 뒤섞은 기사가 증가하고 있음을 볼 때 사실을 철저히 확인하는 노력은 대학생들에게도 요구된다.

동시에 기획.탐사기사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나 추세를 잘 포착하거나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 특히, 대학생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현직 기자들이 놓치는 사회 현상을 발굴, 대학생의 참신한 관점에서 조명해 주는 기사다.

이 밖에 심사위는 주제의 참신성, 기사 내용의 풍부성, 메시지의 명료성을 종합 평가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흔들리는 중국동포 4세대들'은 취재자가 1년 동안 옌볜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족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생활상을 다각적으로 조명,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기사는 조선족 전체가 아닌 대학생에 초점을 맞춰 기존의 기사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특히 자신을 조선족이기보다는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한민족을 사랑하지만 한국에 귀화는 하지 않겠다는 조선족 대학생들의 복잡한 심리를 잘 반영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쓴 '노인들, 약물 남용에 빠지다'는 전문지식을 십분 발휘한 기사로 노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보여줬으며, '이유 있는 반미, 근거 있는 친미'는 젊은 세대에 널리 펴져 있는 감성적 반미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논리에 근거한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이 밖에 자식에 대한 끝없는 부담 문제를 다룬 '고달픈 캥거루족 부모들', 해외 인턴 취업의 허상을 파헤친 '해외 인턴의 명과 암', 외국에서 대안교육으로 떠오른 '홈스쿨의 아이들', 지하철 안전시설의 위치 문제를 지적한 '지하철 비상장비 엉망' 기사도 소재 발굴 능력, 문제의식, 구성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모씨' 등 불필요한 익명성의 남용은 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내년 응모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사항이다.

이창근 교수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전 한국언론학회장

공모전 입상작

◆ 대상: '흔들리는 중국동포 4세대들'-강은나래(연세대 철학과)

◆ 우수상: '해외 인턴의 명과 암'-김종원(한국외대 디지털정보공학과).김천열(한국외대 독일어과), '이유있는 반미, 근거있는 친미'-조재혁(서울대 인문대).한상원(고려대 사회학과)

◆ 가작: '지하철 비상장비 엉망'-박현우(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고달픈 캥거루족 부모들'-김경현(성신여대 영문과).유지윤(연세대 사회학과), '노인들, 약물남용에 빠지다'-권다희.이정민.진현주(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대대 1중대), '홈스쿨의 아이들'-송하욱(연세대 경제학과)

(중앙일보 200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