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건국당시 한반도 북쪽에 韓族 살고 있었다”

우리 민족은 어디서 기원했으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최근 국내 학계에서도 ‘민족은 근대적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단일민족의 신화에 대한 관심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경우 고대부터 민족적 정체성이 뚜렷이 차별화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해 한국의 고대사 대부분이 중국사의 일부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면서 한민족의 뿌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고 있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만주 일대의 예맥(濊貊)족과 한반도 남부의 한(韓)족이 합쳐져 오늘날의 한민족이 성립됐다고 설명해 왔다. 예맥족은 만주 일대 평지에 거주했던 예(濊)족과 산악지대에 거주했던 맥(貊)족을 칭하며, 훗날 두 부족이 합쳐져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백제의 지배층을 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한족은 마한, 진한, 변한을 구성한 부족으로 신라와 가야, 백제의 민중계층을 뜻한다.

이에 대해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는 단군설화와 중국 사서를 바탕으로 ‘고조선은 건국 시기부터 이미 한족, 예족, 맥족 3개 부족의 결합으로 이뤄졌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쳐 주목된다. 신 교수는 한국의 단군학회와 북한의 조선역사학회 학자들이 2002년 이후 가진 3차례 공동학술회의의 결과를 정리한 ‘단군과 고조선 연구’(지식산업사)에 실린 논문 ‘한민족의 형성과 단군에 대한 사회사적 고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시경(詩經)의 한혁편(韓奕篇)과 후한 때 왕부(王符)가 쓴 잠부론(潛夫論)에서 춘추전국시대 때 한(韓)나라와는 또 다른 한(韓)을 산둥(山東) 성 일대 연(燕)나라의 이웃 국가로 언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정씨집운(丁氏集韻)’에서 상서(尙書) 등 중국 고서에 등장하는 한맥(Q貊), 한예(寒穢)족에 대해 ‘한(Q, 寒)을 동이의 별종’이라고 설명한 것을 예로 들며, 이는 우리말 ‘한’의 발음을 중국인이 편한 대로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단군설화를 해석하면 태양 토템을 지닌 한족과 곰 토템을 지닌 맥족, 호랑이 토템을 지닌 예족이 고조선을 건국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즉 해(태양)와 밝음(광명)을 숭배하는 환웅계열은 한족(桓·韓·밝달족·배달족)을 상징하고, 그와 결혼하는 웅녀는 한족과 혼인동맹을 맺은 맥족,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는 예족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의 이런 해석은 한반도 북쪽의 예맥족은 중국에 흡수된 민족이고 한반도 남쪽의 한족이 현재의 한민족을 구성했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를 반박하는 또 다른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