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산책] 中國의 역사관

사람이든 나라든 어려울 때 도와주고 슬플 때 위로해주는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와 국경을 맞댄 중국과 일본이 좋은 이웃이냐 하면 꼭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당한 것은 수천 번도 더 된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터무니없는 역사왜곡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고구려사ㆍ발해사 탈취에 이어 고조선사까지 중국사에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이라면 중국의 역사 탈취는 패권주의적 역사관의 발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몽골사 티베트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대사를 중국 변방사로 둔갑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하유역과 발해만 일대, 만주는 고조선문명의 발상지요, 한민족사의 요람이었다. 고조선에 이어 부여ㆍ고구려ㆍ발해가 차례로 일어난 우리 고대사의 중심지였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고구려사ㆍ발해사의 왜곡 탈취도 모자라 이제는 동북아 고대문명 전체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알려진 동북공정(東北工程)에 이어 탐원공정(探源工程)을 통해 우리 고대사의 뿌리인 ‘요하문명(遼河文明)’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탐원공정이란 중국의 신화시대를 역사시대로 편입하려는 단대공정(斷代工程;1996~2000년)에 이어 중국문명의 기원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중국학계는 이 공정을 통해 ‘고구려 민족은 기원전 1600~1300년에 은상씨족(殷商氏族)에서 분리됐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고구려가 중국의 고대국가 하(夏)ㆍ상(商:殷)ㆍ주(周)의 하나인 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왜 이처럼 역사왜곡에 나서는 것인가. 그동안 중국사의 기원은 황하문명설이 주류로 자리잡아왔었다. 그러나 근래 요하유역에서 기원전 7000~1500년의 신석기ㆍ청동기유적이 대거 발굴됐는데 빗살무늬토기ㆍ비파형청동검ㆍ돌무덤 등 한국고대사의 특징인 유물ㆍ유적이 대거 출토됐다. 특히 중국측이 위기를 느낀 것은 기원전 1700~1100년대의 은허(殷墟)유적보다 훨씬 오래 전의 갑골문이 이 지역에서 출토된 사실이다. 이는 고조선의 요하문명이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섰다는 분명한 반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3대 공정을 통해 고구려사ㆍ발해사뿐만 아니라 고조선사, 즉 한국문명사의 기원까지 왜곡하려는 속셈을 드러내 이제는 ‘중국문명은 황하문명뿐 아니라 요하유역의 동북문명이 합쳐진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비뚤어진 한국역사관은 뿌리가 깊다.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이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던 속국’이었다는 인식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다. 조공ㆍ책봉이 일종의 외교관계였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예를 들면 최근의 중국영화 ‘신화’에는 고조선의 공주가 ‘나라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진시황의 후궁으로 끌려가는 내용이 나온다. 만주와 한반도 전체를 아울렀던 대제국 고조선이 진시황이 두려워 공주를 바쳤다는 기록은 양국 역사서 어디에도 없다. 이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주변국은 모두 오랑캐라는 오만무례한 중화사상에서 비롯된 역사패권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작 한심한 짓은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가 주말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후속작으로 ‘칭기즈칸’을 방영하고 있는 점이다. 몽골 침략군에 맞서 피어린 투쟁을 벌이던 삼별초(三別抄)를 주제로 한 드라마를 만들지는 못할망정 우리나라 전강토를 잿더미로 만들고 숱한 백성을 학살한 잔악한 몽골군의 우두머리 칭기즈칸을 영웅으로 환생시키는 이런 사극을 무엇 때문에 비싼 외화를 낭비해가면서 방영하는가.

우리 사학계와 정부는 어떤 입장인가. 고구려사ㆍ발해사에 이어 백제와 고려사도 중국의 변방사가 되고 민족사를 빛낸 숱한 영웅호걸이 모두 중국인으로 둔갑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중국이 동북공정에 책정한 예산은 5년간 3조원이다. 정부는 귀중한 혈세를 낭비하지 말고 그 절반, 아니 100분의1인 300억원이라도 우리 역사 지키기를 위한 예산으로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황원갑 / 소설가·한국풍류사연구회장>

(서울경제 2005-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