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EU에 남긴 美-英의 `트로이목마'?

"터키는 미국과 영국이 EU에 남긴 `트로이목마'가 될 수도 있다" 역사적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협상이 지난 3일 46년만에 막을 올린 것과 관련해 EU 일각에서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트로이 목마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 편에 나오는 전설로 그리스 군이 정예군사를 숨긴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전술로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다는 얘기다. 이후 외부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터키에 대해 다소 과도한 듯한 `트로이목마' 우려 발언은 실은 유럽인들이 미국의 개입을 몹시 못마땅한듯이 빗댄 비유에 다름아니다.

터키 가입협상은 지난 3일 밤 룩셈부르크에서 EU 외무장관들이 무려 30시간의 마라톤 협상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EU 외교관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실제로 라이스 장관은 오스트리아가 막판까지 특별협력국 지위만 주자는 주장을 꺾지않아 결렬 위기에 놓인 협상을 살리기 위해 EU 순번제 의장국인 영국과 터키 지도자들과 연쇄 전화 접촉을 갖고 막후 작업을 벌였다고 미 국무부가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그리고 터키간 3각 대화채널에 대해 EU 외교관들은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EU 회원국의 한 고위인사가 "영국이 우리와 논의하기 앞서 터키와 미국과 먼저 상의했다"고 불만을 내뱉을 정도다.

전통적으로 EU 지도자들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물론 이 점을 모를리 없는 라이스 장관도 조심하긴 했다.

막판 장애물인 오스트리아엔 전화를 걸지 않는 신중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라이스 장관은 오스트리아가 고집을 꺾은 후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터키 가입협상의 로드맵을 담은 EU 외무장관들의 공동합의문을 터키가 받아들이는데 막후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터키 정부는 최종 합의문 가운데 터키가 EU 회원국의 국제기구및 조약 참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놓고 최종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가 승인을 거부하고 있는 EU 회원국 키프로스에 대해 나토 가입 등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스 장관은 레젭 타입 에르도간 총리, 압둘라 굴 외무장관 등 터키지도자들에겐 이 문구가 키프로스의 나토가입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득 했다.

이어 타소스 파파도풀로스 키프로스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키프로스가 나토에 가입할 의향이 없다는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막판 맹활약을 전해들은 EU 외교관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 이상인 특파원 200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