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어느 민족이나 나라를 막론하고 그 집단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고 장구한 역사나 민족 정체성이 강한 집단일수록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음식은 그 집단이 속한 지역의 지리적 여건과 기후와 풍토 속에서 배태되고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 집단의 문화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나 피자, 터키의 케밥, 태국의 쌀국수 등은 각기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들이다. 갖가지 음식들은 민족적 디아스포라(해외 이주)가 활발하고 국력이 강할수록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어느 특정 지역이나 민족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정착됐다.

김치는 고추장, 불고기와 더불어 우리의 음식문화를 대표한다. 현재의 김치는 고추가 전래된 1600년대에 정착된 것으로 보이지만 김치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론도 많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는 발효음식을 잘 만들어 먹었으며, 삼국사기 신문왕편에 혜(醯:김치무리)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대체로 삼국시대를 기원으로 잡고 있다.

이런 민족적 유전자 탓인지는 몰라도 해외 원정경기에 나선 운동선수들의 필수품은 단연 김치와 고추장이었다. 80년대 들어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일반인들의 해외여행이 물꼬가 트이면서 여행객의 가방 속을 채운 김치 냄새로 인해 외국 국적사 비행기나 공항에서 숱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치는 우리의 국력이 커지면서 미국, 일본 등 해외 한인 집단거주지를 중심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해 이제는 브랜드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많은 세계인들이 한국을 찾으면서 김치의 맛과 과학성도 널리 알려져 세계화된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김치는 세계시장에선 종주국의 지위를 의심케하고 있다. 상술의 귀재인 일본이 ‘기무치’란 브랜드로 세계인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고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이 김치시장에 뛰어든 지 오래다. 국내 식당에 유통되는 김치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란 사실도 암담하다. 민족문화의 정수인 우리 김치가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려 기반이 무너질 참이다.

최근 납 등 중금속에 오염된 중국산 김치가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납 꽃게나 조기, 불량 고춧가루 등 중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인지라 이번 '납 김치'의 충격파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당국은 일단 유해성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당장 우리 주부의 70% 이상이 올 김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김시헌 자치행정2부장>

(대전일보 2005-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