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낳은 엄마는 없었다

출산의 기쁨도, 육아 걱정도 한산해진 한 산부인과 병동의 풍경
“체력 되면 둘째 낳고 싶다”지만 “키울수록 낳는 게 무섭다”는데…

“괜찮아요, 겁먹지 말고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지난 9월9일 오후 4시 침묵 속에 잠들었던 서울 중구 충무로 삼성제일병원의 분만 대기실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졌다. 젊은 임신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분만실에서 걸어나왔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넘겼지만, 그의 뱃속 아기는 아직 세상 구경을 할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 그는 “유도 분만을 하려고 해도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아이는 건강하다”는 병원 간호사들의 다독거림이 있은 뒤에야 그의 울먹임이 잦아들었다. 대기실은 다시 깊은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저출산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이들은 분만실에서 직접 아이들 받아내는 직원들이다. 여성 한명이 가임기간(15~49살)에 낳는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 1980년 2.83명에서 1990년 1.59명으로 곤두박질친 데 이어, 지난 2003년 1.19명,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1.16명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 우리나라는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205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엄살이야” 대기실 할머니들은 못마땅

이 병원 간호부에서 근무하는 신연지씨는 “지난해에 견줘 출산이 한달에 100건 정도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1월 이후로는 저출산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애 낳는 산모 수가 줄었다. 신생아 기념품 창구 직원도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촬영해 담아주는 ‘첫울음 동영상 CD’ 제작에 3년 전만 해도 하루 평균 30~40건 정도 신청이 들어왔는데 최근엔 가장 많을 때가 하루 20건이 안 되는 정도”라고 말했다.

분만대기실과 분만실 주변에서 딸과 며느리의 출산을 기다리는 할머니들은 “애 낳기를 꺼리는 젊은 사람들이 못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해. 자기가 조금만 힘들면 안 하려 하고. 잔걱정도 너무 많아.” “우리는 뭐 편했나? 다 참고 견딘 거지. 요즘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힘든 걸 감수하려고 하지 않아.” 그렇지만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짐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지난 9월2일 첫째와 5살 터울의 둘째를 낳은 안은주(34)씨는 “치솟는 교육비와 육아 부담 때문에 둘째를 낳아야 할지 크게 망설였다”고 말했다. 밤샘작업이 많은 설계일을 하던 안씨는 5년 전 첫째아이를 가지려고 일을 그만뒀다. 그는 하루 24시간 동안 아이 곁에서 ‘스탠바이’하느라 강박증까지 생겼다. 그는 “나이도 있고 아이 키우기도 너무 힘들어 둘째까지만 낳기로 했다”고 말했다. “큰애 한달 유치원비만 30만원이고, 이것저것 합치면 애한테 들어가는 돈이 매달 60만원이 넘어요.” 유치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주일에 5일 동안 아이를 맡아준다. 안씨는 “둘째가 자라면 비용도 두배로 늘어날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엄선옥(42)씨는 세 번째 아이의 엄마가 된 동생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왔다고 했다. 엄씨의 동생 성옥(39)씨는 한달 전 세 번째 딸을 낳았다. 큰아이는 여섯살, 작은아이는 세살이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라며 웃던 그는 출산 장려를 위한 정부의 육아 지원금에 회의적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면 이것저것 합쳐서 한달에 50만원, 유모를 쓰려면 60만~70만원 정도 들거든요. 지금 이 아기 이불만 해도 5만원이 넘어요. 애 키우는 엄마들은 다 알겠지만, 애 하나 키우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지원금으로 얼마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돈 몇푼 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죠.”

가정 화합 알지만 양육비가 가슴 눌러

이날 정오께 둘째를 낳으러 가족분만실로 들어간 동시통역사 김화정(34)씨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는 친정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다, 유모를 둘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도 갖췄다. 김씨의 친정어머니는 “역시 가정엔 아이가 있어야 화합이 된다”며 육아 예찬론을 폈다. “마땅한 화제가 없는 어른들에게는 아기 우는 입술만 봐도 너무 예뻐서 분위기가 싹 바뀌거든요.” 그렇지만 김씨도 직장에서 되도록 일을 안 맡으려고 애쓰는 등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둘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셋 이상 낳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개인 여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죠. ”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교육이다. “ 사교육이 필요 없을 만큼 교육제도가 제대로 갖춰진다면, ‘기러기 아빠’ 같은 것도 없어지고 아이 낳는 부담도 줄지 않겠느냐”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진통 다섯 시간 만에 3.5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박혜숙(57)씨는 큰딸 차은정(30)씨가 낳을 첫 손자를 기다리며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박씨는 손자를 맞으러 단숨에 비행기를 탔다. 그 역시 출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정에 아이가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어요. 캐나다에서는 아이를 평균 3~4명은 낳거든요. 특히 4를 좋은 숫자로 여겨 동네에 사남매가 많죠.” 차씨는 캐나다 시민권을 갖고 있어, 그쪽에서 아이를 낳으면 매달 16만원 정도의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사위가 “아기는 무조건 한국에서 낳아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했다.

분만대기실의 가족들은 “어이쿠, 머리통도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태어난 아기들의 수는 “아이는 많을수록 좋다”는 ‘할머니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분만실에서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모두 20명. 첫째로 태어난 아이가 15명, 둘째가 5명, 셋째 이상은 없었다. 병원쪽은 지난해 총 분만 건수 8886건 가운데 둘째 이상을 낳은 것은 3319건으로 전체 분만 건수의 3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아이는 396명, 넷째아이는 39명으로 전체 산모 중에서 삼남매 이상의 남매를 낳은 비율은 0.05%였다.

아이를 낳은 뒤 몸조리를 위해 병원 3·5층 병실에 입원한 엄마들은 “아이를 낳아 키울수록 아이 낳는 게 점점 무서워진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육아의 고통은 오로지 젊은 부모(특히 엄마)들의 몫이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엄마들은 현실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로 고통받고 있었다. 첫 출산의 기쁨을 누린 엄마들은 “체력만 된다면 더 낳고 싶다”고 말했지만, 둘째를 낳은 엄마는 “교육이나 환경오염 때문에 아기 낳기도, 기르기도 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셋째를 낳은 엄마들은 “애 키우다 미치기 일보직전”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분만 건수, 조사 시작 7년만에 최저치

부모 귀에 사랑스럽게 들려야 할 ‘응애’ 소리가 많은 엄마들의 귀에 온갖 육아 문제가 ‘응’축된 ‘애’로사항쯤으로 들리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분만실의 ‘응애’ 소리는 분명히 줄고 있다. 올해 6월까지 이 병원 상반기 분만 건수는 3991건을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예상되는 분만 건수는 7900여건. 조사가 시작된 7년 만의 최저치다. 분만실의 한 간호사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말에만 같이 자는데 미안해 죽겠어요. 아이가 외로워 보여 동생을 낳아주고 싶어도 큰애처럼 키우게 될까봐 엄두가 안 나죠. 정말이지 자기 밥그릇을 갖고 태어나기도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요.” 분만대기실의 정적이 잠시 깨지고 진통이 시작된 임신부의 비명소리가 방을 채웠다.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죠.” 그는 웃으며 비명이 흘러나오는 진통실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다.

(한겨레21 / 하정민 인턴기자 2005-10-4)

“용감한 우리, 삼남매를 키운다”

‘비용 대비 산출’이라는 경제 공식 버리고 ‘큰 결심’을 감행한 부모들
부대끼며 자라는 아이들에 안도하지만 정부에 대한 서운함 버릴 수 없어라

열린우리당 이상민(47) 의원은 지난 8월29일 오전 3.0kg의 첫딸을 얻었다. 7살, 4살짜리 아들에 이어 세 번째 아이였다. 이 의원은 딸을 얻은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평균 출산율이 1.16이라는데, 나는 3명이나 낳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애국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 맞서 세 아이를 낳는다는 게 이 의원 같은 정치인에게는 떳떳하고 내세울 만한 일인지 몰라도, 평범한 부모들에게는 아직 힘든 일이다.

“제발 외계인 보듯 하지 마세요"

2005년 이곳 대한민국에서 세 아이를 낳는 건 ‘외계인 취급 당하는 것’을 무릅쓰는 일인지 모른다. ‘무자녀’가 수모와 조롱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급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무자녀 혁명’이나 ‘출산 파업’과 같은 낱말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유행어가 될 만큼 출산과 육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는 많이 변했다.

6살(영웅)과 4살(영진)짜리 아들에 이어 지난 5월 딸(영채)을 출산한 윤진숙(29·서울 종로구 창신동)씨가 셋째를 얻은 뒤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 돈 많은가 보다”는 비아냥이다. “그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그냥 ‘그래, 나 돈 많다’고 무시해버려요. 사실은 돈이 없지만요.” 윤씨는 최근 세 자녀 부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몸소 체험했다고 털어놨다. “아이 셋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외계인 보듯 해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심란한 세상인데, 아이 많이 낳는 사람을 우대해줘야죠. 얼마 전엔 옷을 사러 아이들 셋을 데리고 동대문에 갔는데 주변의 시선이 이상한 거예요. 우리 애들을 보더니 사람들이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12명 자녀 가정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거 봤냐, 그게 사람이냐 동물이지, 그런 얘기하면서 수군거리더라고요. 그 뒤로는 아이 셋 데리고 길거리 나서기가 두려워요.” 그래도 윤씨는 셋째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딸을 원했고, 소원대로 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끼리 서로 잘 놀 때가 가장 보기 좋다. 아이가 셋이나 되지만,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허전해질 만큼” 그는 진짜 아이를 좋아한다. 세운상가에서 에어컨 등 냉난방기를 설치하는 일을 하는 남편의 상황이 안 좋아 경제적인 여건은 더 어려워졌지만, 남들이 하는 사교육을 따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는 셋째가 태어난 직후 다음카페에 ‘세 아이의 엄마들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 키우는 데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부 지원책에 대한 정보 갈증도 심해요. 그런데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지만 지원을 받으려면 자격 요건도 까다롭더라고요. 별로 혜택을 받을 만한 것이 없어요. 많이 낳으라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주선희(35·서울 중랑구 망우2동)씨는 최진훈(7)·효광(6)·윤서(4)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2002년 그는 “정말로 큰 결심을 한 뒤”에 막내를 낳았다.

버스 타면서 기분 나쁜 이유

삼남매를 키우는 게 왜 좋은지에 대해 주씨는 “사회성이 길러지는 점”을 꼽았다. “큰애한테 ‘동생들하고 같이 놀고 있어라’고 하면 정말 동생들을 돌봐요. 여동생이 울 때는 달래면서 돌봐주기도 해요. 자기들끼리 아웅다웅 싸우는 것을 보면 ‘힘들어도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하나밖에 없으면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큰애 믿고, 맘 편하게 주변에 일보러 다닐 수 있어서 좋아요.” 홍해선(34)·채정희(32)씨 부부는 첫째딸 여진이(9)에 이어 두 아들 승하(6)와 승지(4)를 낳았다. 세 아이를 둔 이후의 변화를 묻자, 채씨는 “가족 사이에 사랑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남편이 막내를 많이 좋아한단다. “옛말에 셋째 아이한테는 돌부처도 돌아선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족 모두 막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죠.” 채씨는 또 “아이들이 형제관계 속에서 스스로 크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했다. “큰아이가 작은애들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이죠. 부모로서 무책임한 말 같기도 하지만,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서로 부대끼면서 자란다는 걸 느껴요.” 이은희(26)씨는 애초부터 세 아이를 낳으려는 계획에 따라 세 아이(6살과 4살짜리 아들과 2살짜리 딸)를 낳아 기르고 있지만, 여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둘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셋 있을 때는 열 키우는 것같이 힘들어요. 오죽하면 선녀와 나무꾼 얘기에서 산신령이 애 셋 낳기 전까지는 날개옷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겠어요. 큰애 때부터 기저귀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있었어요. 6년 내내 고생했죠.”

이씨는 “정부의 지원책이 너무 부족해서 서운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버스 탈 때 돈 내는 문제부터 꼬집었다. 애들 셋을 데리고 타면 어른 하나와 초등학생 두명분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버스운송규정을 보면 어른과 같이 타는 미취학 아동 1명만 무료 승차가 가능하다. 이씨는 “얼마 안 되는 거지만 기분이 매우 나쁘다”며 “이런 식이라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아들’목적으로 한 셋째 출산도 있지만…

김지연(43)씨는 늦둥이를 낳은 경우다. 고등학교 2학년인 큰딸에 중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에 이어 지금 여섯살인 막내를 2000년에 낳았다. 그는 “느닷없이 생긴 막내 덕분에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더 느껴진다”고 했다. 막내는 올해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달에 18만5천원이 들어가 다른 사교육은 엄두를 못 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23일 발표한 2004년 4분기 소비자태도 부가조사(노후 불안감 확산에 따른 가계의식 조사)를 보면 전체 조사대상 1천 가구 가운데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60.6%가 ‘양육비와 교육비 증가’를 꼽았다. 흔히 생각하듯이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나 ‘여성의 출산기피 현상’을 꼽은 응답은 각각 20.3%와 12.3%에 불과했다.

동덕여대 한국여성연구소가 지난 상반기 보건복지부에 낸 보고서 ‘출산 의욕 고취를 위한 사회적 대처방안’을 보면 전국 2767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상적인 자녀수’로 현재의 합계출산율(1.16명)을 훨씬 웃도는 평균 2.2명을 들었다. 낳고는 싶은데 못 낳고 있는 셈이다. 무자녀 선호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51%가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부부만의 애정으로 충분하기 때문에’는 37.4%, ‘일에 부담이 간다’는 7.7%에 불과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형제자매 관계가 전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이들의 사회성을 높이고 정서지능(EQ)를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형제자매는 동료적 관계, 도움, 정서적 지지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놀이친구·공부친구·교사·학습자·보호자·의존자·경쟁자 등 서로에게 다양한 구실을 한다. 특히 남자든 여자든 하나뿐인 ‘외동아’나 남자아이들로만 이뤄진 ‘형제’ 여자아이들로만 이뤄진 ‘자매’보다는 혼성의 ‘남매’가 정서지능 발달에 긍정적이라는 연구(상자기사 참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공주대 유아교육과 김상희 교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형제자매 관계가 있어야 사회적 관계인 또래 관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동성일 때보다는 혼성으로 형제자매 관계가 구성되는 것이 다른 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안전망 확보 뒤따라야

세 아이를 기르는 이들이 모두 자식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아들을 낳으려는 목적으로만 세 아이를 낳는 이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출생·사망 통계 결과’를 모면 셋째 아이의 성비(여자아이의 수를 100으로 하고, 남자아이의 여자아이에 대한 비를 나타내는 수치)가 지난해 현재 132였다. 전체 출생 성비 108에 견줘 훨씬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를 낳은 문제까지도 비용 대비 산출의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는 사회적 풍조에 일정 정도 반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보육 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지지와 지원, 임신-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와 보상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들은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두개의 장벽에 둘러싸인 또 다른 이름의 ‘사회적 소수자’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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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의 최소 보육비 부담은?

주신희씨네 한달 지출 71만원, 내년엔 97만5천원

주신희(35)씨네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중산층이다. 남편 최영민(37)씨는 석재를 취급하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한다. 남편의 수입은 경기에 따라 출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을 느껴본 적은 없다. 주씨는 “그래도 남들처럼 아이들 사교육에 들일 돈은 없다”고 말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과 의료비를 뺀 이 집의 ‘순수 보육비’는 얼마나 될까.

한살 터울인 큰아이 진훈(7)이와 효광(6)이는 서울 중랑구 금파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에는 한달에 보육료(21만7천원)와 특별활동비(2만원)를 합쳐 23만7천원을 낸다. 거기다 아이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매주 한글나라 선생님(3만8천원)을 부르고,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동네 태권도 학원(7만원)에도 보낸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막내 윤서의 어린이집 보육비를 내줘 가계에 큰 보탬이 된다. 그러나 애초 “셋째아이의 보육비를 모두 책임지겠다”는 서울시의 호언과 달리, 만 2살까지만 보육비를 부담하기로 해 내년부터는 윤서 보육비(26만4천원)도 주씨네 부담이다.

내년부터 주씨네가 부담해야 하는 순수 보육비는 한달에 97만5천원. 주씨는 “강남에서 한다는 영재교육이나 조기 영어교육은 꿈도 못 꾼다”며 사교육을 최대한 줄이고 줄인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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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구성, 당신은 몇점?
3명 이상>2명>외동아의 순으로 정서지능이 높게 나온 연구결과도

형제자매 관계가 다른 인간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보다 생물학적 유전형질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형제자매의 99% 이상이 33~99% 정도의 공통된 유전자를 가진다는 게 생물학의 연구결과다. 또 인생주기 전체에 걸쳐 지속하는 인간관계라는 특징도 있다. 다른 가족관계와 비교할 때 본질상 더 평등하며 동료관계의 특징인 ‘호혜성’이 가장 큰 속성이다.

형제 수와 관련해 외동아보다는 형제자매 사이가 성격 형성이나 정서지능(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능력,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성취하기 위해 정서를 이용하는 능력)에 긍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그러나 형제가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즉, 형제 수가 너무 많아지면 부모의 관심이 분산돼 한 아동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고 그만큼 아동의 자존감이 줄어들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결국 적당한 형제 수는 상호 협조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사회성과 안정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공주대 김상희 교수는 “이상적인 자녀 수를 숫자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외동아가 아닌 다수의 형제자매들이라 해도 부모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을 때, 예를 들어 편애를 하게 되면 분노와 질투가 커져 협력하는 관계에서 갈등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형제 구성(외동아, 형제, 자매, 남매)에 따른 유아의 정서지능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한 것도 있다. <형제 자매 구성 형태에 따른 유아의 정서지능의 차이>(우은숙, 중앙대 교육대학원 석사)를 보면 자기 조절이나 타인 인식 측면에서 남매나 자매가 외동아나 형제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족구성 형태 및 형제자매 수와 정서지능과의 관계>(정길화, 창원대 교육학과 석사)라는 연구에서는 형제자매 수를 외동아, 2명, 3명 이상으로 나누어 구분한 결과 3명 이상 > 2명 > 외동아의 순으로 정서지능이 높게 나왔다.

이런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아이를 가진 엄마들 사이에서 떠도는 ‘딸 낳고 아들 낳으면 200점, 아들 낳고 딸 낳으면 100점, 딸 둘 낳으면 50점, 아들 둘 낳으면 0점’이라는 자녀 구성에 관한 우스갯소리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화여대 박성연 교수는 “3명 이상 자녀의 형제자매 관계 연구는 출산이 활발히 이뤄졌던 70년대를 끝으로 최근까지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면서 “한명 또는 두명만 낳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연구 샘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혼성으로 3명 이상을 낳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경제사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현실적으로는 3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에 발맞춰 이와 관련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21 / 길윤형, 김창석 기자 2005-10-4)

칼 빼든 정부, 늦었지만 뛰어라

인구 감소로 애태우는 지자체들, 셋째아이 300만원 지원 등 처절한 전쟁

9월1일부터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시행 들어갔으나 해답은 미지수

“셋째 아이를 낳으면 300만원입니다. 저희가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서울 남해군청 직원 박진평씨는 “한마디로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한반도 남쪽 끝 작은 섬마을인 남해군은 지금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남해군의 현재 인구는 5만2593명. 군의 인구는 지난 1964년 13만7914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40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군의 지금 인구는 전성기 때의 3분의 1을 가까스로 넘기는 수준이다. 그동안 섬의 젊은이들은 푸른 꿈을 안고 도시로 향했고, 그들이 낳아 기른 젊은이들은 결혼·출산·양육에 딸려오는 삶의 고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남해군의 전체 인구 가운데 만 65살 이상 인구의 비율은 24.7%. 유엔이 정한 초고령 사회 기준(만 65살 이상 인구 비율 20%)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남해군은 경남 의령군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늙은 마을 1등을 차지했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출산율을 이어간다면 2026년께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2050년에는 세계 최고령 국가(노인인구 비율이 37.3%)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해군은 30년 뒤 대한민국이 맞이하게 될 불길한 미래인 셈이다.

남해군, 결국 노인흡수 정책으로 선회

그렇지만 이 작은 어촌 도시가 인구 감소를 손 놓고 바라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남해군은 지난 4월21일 ‘남해군 인구증대시책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군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신생아 예방접종을 무료로 놔주고, 셋째 아이를 낳는 가정에는 3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조례 시행 이후 9월 현재까지 300만원의 혜택을 받은 집은 9곳뿐이다. 박씨는 “좀더 기다려봐야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없어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군은 은퇴한 노인 인구를 흡수할 수 있도록 펜션 단지를 만드는 쪽으로 인구정책 방향을 바꿨다.

전남 강진군의 대책은 좀더 파격적이다. 강진군은 셋째 아이에게만 출산장려금으로 목돈 300만원을 내놓는 남해군과 달리 첫째 아이에게는 1년 동안 한달에 10만원, 둘째 아이에게는 한달에 15만원, 셋째 아이 이상에게는 한달에 2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하고 있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군에서 주는 양육비와 전라남도에서 주는 출산장려금 40만원을 합쳐 400만원의 현금을 받게 된다. 군 관계자는 “군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양육비를 주는 게 다른 지자체와 구별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자녀당 소득공제액 240만원-> 520만원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출산축하금·보육료 지원, 임산부·영유아 건강관리 시책 등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는 모습은 생존을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연상시킬 만큼 처절하다. 전라남도는 2001년부터 ‘농어촌 지역 신생아에 대한 양육비 지원’ 사업을 실시해 지난해부터 도 안에서 태어나는 아이 한명에게 30만~4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충남 태안과 경북 예천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경남 진주시 등 2곳에서는 불임부부 검진·치료비 지원, 전남 완도군 등 4곳은 정·난관 복원 수술비를 지원한다. 액수는 적지만 경남 남해군같이 출산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는 105곳, 전남 강진같이 양육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는 부산 중구 등 6곳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 차원의 노력으로는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들의 대책은 인구에 따라 지급되는 지방교부금을 확보하기 위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강한데다, 지급되는 출산지원금이나 양육비의 액수가 출산을 유도할 만큼 많지 않다. 또 지역마다 지원 여부, 금액이 다르다 보니 지원이 약한 지자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왜 옆동네에서는 돈을 주는데 우리 동네에는 없느냐”는 항의가 이어지기 일쑤다.

지금까지 마련된 중앙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자녀 1명당 소득공제액 폭이 240만원에서 520만원으로 늘어난 것을 포함해 △정·난관 복원 수술 보험 적용 △주요 산전검사 보험급여 확대 △자연분만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 의료비 지원 등이다.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는 1996년까지 시대착오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펴오는 등 저출산, 인구 고령화 문제를 간과해왔다”며 “출산율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 지난 9월10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순절 평화의 마을'을 찾아 아이들과 '올챙이 송'을 부르고 있다. 김 장관은 만 "6살 미만의 어린이가 입원 치료를 받을 때 환자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출산율이 지금 같은 추세로 이어지면, 앞으로 어린이날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고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법’을 만들어 9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 5년에 한번씩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정부의 기본계획이 나오면 지방자치단체도 그에 맞는 저출산 대책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이르면 9월 말 5개 분야 34개 과제로 구성된 ‘범정부적 저출산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표 참조).

대책에는 유산·사산 휴가제(2006년부터·최대 45일) 도입, 출산휴가비 국고 지원 등이 확정됐고, 자녀를 세명 이상 낳은 가정에 국민임대아파트를 우선 공급하는 등의 대책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보육료 문제 해결을 위해 영·유아의 보육료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엄청나게 커진 사교육 시장을 잡는 등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종합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

또 일하는 엄마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육아지원 시설을 크게 늘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한주택공사와 여성가족부는 ‘주공 임대주택 보육시설 무상제공 협약’을 맺어 2017년까지 보육시설 1251곳(6만2550명 수용)을 지어 해당 지자체에 20년 동안 무상 임대할 계획을 발표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올해 안에 만 6살 미만 어린이가 병원에 입원할 때 환자 본인 부담금을 모두 면제해주는 방안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대책들로 1.16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15~49살의 가임기간 동안 낳는 아기의 수)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해답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다.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번 떨어진 출산율은 다시 올리기 힘들고, 정책 효과가 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특징”이라며 “우리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출산지원 정책

중앙정부 -정·난관 복원수술 보험 적용 -기형아·풍진 검사 등 주요 산전검사 보험급여 확대 -자연분만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본인부담 진료비 전액 면제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의료비 최대 700만원 지원 -자녀 한명당 소득공제액 520만원까지 확대 -저소득층 보육료·유아교육비 감면

지자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충남 태안군, 경북 예천군) -예비 신혼부부 건강검진 (서울시 중구 등 13개 지자체) -불임부부 검진·치료비 지원(경기 안산시 단원구, 경남 진주시) -출산지원금 지급(충남 천안시 등 105개 지자체) -출산용품 지급(경남 고령군 등 50개 지자체) -신생아 건강보험 지원(월 2만원) (충북 증평군, 전북 정읍시) -도우미 지원 (대전시, 경남 진해시) -보육료 지원 (서울시 등 50개 지자체) -양육비 지원 (부산시 중구 등 6개 지자체)

도입 검토 중인 지원정책 -유산·사산 휴가제 최대 45일 도입(도입 확정) -출산휴가비 국고 지원(도입 확정) -세 자녀 이상 가정 국민임대 아파트 우선 공급 -보육료 지원폭 대폭 상향 조정 -육아시설 대폭 확충, 대규모 아파트 단지 보육시설 설치 의무화 -만 6살 미만 어린이 입원치료 본인부담금 면제

* 자료: 보건복지부

엄마에게 아동급여 주는 스웨덴

북유럽 출산정책의 성공은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결과

낮은 출산율은 경제 구조가 선진화된 대부분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나라마다 취하는 정책과 사회 여건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39년부터 모성보호를 위한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해 부모 모두 최대 480일 동안(유급 390일·무급 90일)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1960년대부터 공공보육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고, 1982년부터는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족에게 특별급여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부터는 아동급여를 만들어 엄마쪽에 한달에 85유로(약 11만원)를 지급한다. ‘가족’이 아닌 ‘엄마’쪽에 돈을 주는 것은 혼외출산율이 높아 한 부모 가정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1980년대 이후 출산율이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양성평등적 정책을 일찍부터 도입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 등 남유럽에서는 출산율이 80년대 이후 급속히 하락해 2002년 현재 합계출산율이 1.2명 수준에 머무른다. 이들 국가는 전통적 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낮은 편이다. 일본도 엔젤플랜(1995~99), 신앤젤플랜(2000~2004) 등을 통해 △보육시설 확충 △가족지원센터 확대 △방과후 보육서비스 도입 등의 지원책을 쏟아부었지만 떨어진 출산율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조남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다양한 출산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으면, 일본의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산 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옛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출산율도 매우 낮다. 체코와 폴란드의 합계출산율은 80년대만 해도 2명을 넘었지만, 2002년 현재 1.1~1.2명으로 떨어졌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출산율이 상승해 현재는 서구 국가들 가운데 예외적으로 2명 이상이다. 미국의 출산율 상승에는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장기 호황이 중요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저소득 계층인 흑인들의 출산율이 높아 백인의 출산율만 놓고 보면 유럽의 평균 정도에 머무른다는 연구도 있다.

왕에게 혼수 비용 타 쓰다

결혼 장려로 출산 장려 시도했던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출산율 장려 정책은 있었다. 콘돔과 같은 발달된 피임 방법이 없었던 그 시절의 ‘출산 장려’ 정책은 곧 ‘결혼 장려’ 정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나이가 차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불효 가운데 후손이 없는 일이 가장 큰 불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이 어느 시대보다 강했으므로 아무리 가난해도 남자건 여자건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혼해야 했다.

여성학자 정성희씨는 1998년 펴낸 <조선의 성풍속>에서 “조선시대에는 양반 사족의 딸로서 서른살이 넘도록 가난해 출가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혼례 비용을 보조해주었다”고 적고 있다. 또 집안이 궁핍해 서른살이 넘도록 시집보내지 않으면 그 집 가장을 중죄로 다스렸다.

조선의 중흥기를 이끈 정조의 노력은 좀더 적극적이다. 정조는 혼기를 넘긴 미혼자를 조사해 2년마다 한번씩 짝을 지워 결혼시켰고, 성종 때에도 전국의 25살이 넘도록 시집 못 간 처녀들을 조사해 쌀·콩 등을 혼수로 지원했다.

가난해 결혼을 못하는 늙은 총각과 처녀가 있을 경우 해당 지역의 고을 수령은 왕에게 혼수 비용을 요청했다. 자신의 관할지에 노총각·노처녀가 늙도록 있으면 정부로부터 문책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1517~78)도 수령 시절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에 60살이 넘도록 장가들지 못한 불쌍한 노총각이 있다고 왕에게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출산 장려 정책의 하나로 “미혼인 직원들의 중매를 서겠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혼이 ‘선택’이 아닌 ‘강요’가 되는 사회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아이 울음소리 없는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엄혹한 현실이다.

(한겨레21 / 길윤형 기자 2005-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