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특집] 단군조선史 시·공간差 좁힐까

단군조선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학자들의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고사의 복원’을 외치며 이른바 재야사학계에서는 줄기차게 기원전 20세기를 훌쩍 넘어서는 한민족 대제국사를 주장하고 있다.

실증과 고증을 앞세우는 강단 학자들은 이런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거나, 위작일 가능성이 큰 사료에 바탕한 허구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이런 대립에 최근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강단 학계가 공식으로는 처음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단군의 실존을 주장하는 북한 역사학계와 남한 학계의 고조선사 공동 연구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쪽의 의견이 얼마나 좁혀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 미답의 경지로 남아 있는 우리 고대사를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지난달 23일 국편 국사관 대강당에서 ‘고조선사의 제문제’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그 동안 단군조선이 실사(實史)라고 주장해온 대표적인 재야사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서고 고대사를 전공한 강단사학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국편이 “그동안 재야사학자들이 국사학계의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가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재야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직접 발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설명한대로, 이 자리는 강단사학계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직접 듣고, 토론하는 사실상 처음 있는 자리였다.

토론회에서 국사찾기협의회 고준환 회장(경기대 법학부 교수)은 그 동안 국사학자들이 위서로 취급해 온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을 재평가, 단군조선사를 기록한 중요한 사료로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재인 국사광복회장은 만주대륙에서 발생한 동이(東夷)의 숙신(肅愼)족이 서남쪽으로 남진하여 황하문명을 건설했으며, 중국 동북지방의 문명은 숙신의 문화에서 중국 황하문명으로 이전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이라이트는 서영수(단국대) 서영대(인하대) 김성환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관, 복기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원 등 사회ㆍ토론자로 참석한 강단 사학자들의 비판과 반론이었지만, 워낙 인식 차이가 커서 양쪽의 의견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토론회를 준비한 박대재 국편 편사연구사는 “고조선사는 한국사의 서장이지만 시작을 어느 시기로 볼 것인가, 위치를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 등 기본적인 시ㆍ공간 문제 등에서 이견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국사학계와 재야사학계의 시각차를 극복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상고사의 틀을 세우기 위해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계속 마련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단군학회(회장 윤내현 단국대 교수)와 북한 조선력사학회가 ‘단군’과 ‘고조선’을 주제로 2002년부터 진행한 공동 연구의 성과를 모은 ‘남북 학자들이 함께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지식산업사 발행)도 눈여겨볼만하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 윤 교수, 이형구 선문대 교수,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남한 학자 7명의 논문 9편과 허종호 조선력사학회장, 손영종 사회과학원 연구사, 김유철 김일성종합대 교수 등 북한 학자 14명의 논문 22편을 담은 이 책은 단군릉까지 복원해 가며 단군조선사를 정사(正史)로 기술하고 있는 북한 주류 역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을 엿볼 수 있어 의미 있다.

물론 연구자들은 근거하는 사료나 관점에 따라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제 각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손 연구사는 ‘단군조선의 성립’이라는 논문에서 ‘삼국유사’ 등 사료와 단군릉 발굴 등 고고학적 성과를 근거로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30세기 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한 주류학계의 단군 인식을 소개한 글에서 정영훈 교수는 “기원전 24세기 (고조선) 건국설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했다.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연구자들은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민족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했다”고 의의를 새겼다.

(한국일보 / 김범수 기자 200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