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동맹(同盟)의 역사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대륙의 변방에서 바다와 담을 쌓고 중국의 풍향만 살피고 살아온 한국인의 심성에는 금방 와 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의 막부와 담판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땅으로 확보한 동래사람 안용복을 국경을 이탈했다는 죄로 귀양을 보낸 조선왕조가 아닌가. 당시에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더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19세기 말 서양의 기술문명이 바닷가로부터 밀려오자 조선의 유학자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응하였다.

위정이란 정학인 주자학을 지킨다는 뜻이고, 척사란 사악한 서양문명을 배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결국 지키지도 못하고 나라만 망하고 말았으니 남은 것은 불쌍한 백성들뿐이었다.

광복 후 한반도 남쪽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수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바다국가로 민족의 진로를 정하였다.

대륙으로 가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의 필연적 선택이었으나 이 선택은 역사상 유례가 드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한국 사회처럼 인색한 곳은 없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희극이다.

공맹(孔孟)의 정도(正道)가 아닌 서양 오랑캐의 방식으로 이룬 성공은 가치가 없다는 100년 전의 위정척사론이 오늘의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부활한 것인가? 북핵문제가 고비를 넘겼다고 하나, 21세기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풍운(風雲)은 한민족에게 추호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급박한 상황이다.

가히 "내정에 실패하면 국민이 가난하게 되지만 외교에 실패하면 국가가 망한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 실감나는 정세이다.

물론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는 두보의 시구처럼 유구한 산천이야 어디 가겠느냐마는 100년 후의 한민족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가는 현재의 선택에 달린 것 같기도 하다.

북핵문제도 아직 갈 길은 멀고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생소한 용어로 고구려와 한반도 북부를 중국 역사, 중국 땅이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공정(工程)이란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뜻인데 결국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기존의 동맹관계를 검토하여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균형을 취하여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예를 보면 해양국가가 참여하지 않은 대륙국가 간의 동맹은 성공한 예가 많지 않다.

오히려 강대국에 의하여 약소 동맹국이 흡수되는 결과만 가져 왔거나 1차대전 시 독오동맹처럼 공동의 파멸만 가져온 예가 많다.

가장 성공적인 동맹의 예는 해양국가와 대륙의 교두보국가와의 동맹이었다.

현대 독일의 모체인 18세기의 프로이센은 당시 유럽대륙 변방의 작고 궁벽한 나라였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자신보다 수십 배의 인구와 영토를 가진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대륙연합군을 상대로 '7년전쟁'에서 승리한다.

승리의 원인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천재적인 용병술도 있었지만 영국과의 동맹으로 바다를 통해 전쟁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건 무역이건 승패는 인구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기(士氣)와 물자의 확보에 달려있는 것이다.

축구경기에서도 열한 명의 선수의 기량이 문제이지 관중 수가 많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런데 세계의 바닷길과 자원은 해양국가가 확보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이 장래 세계의 공장이 된다는 예측이 있지만 중국은 인구와 영토에 비하여 자원과 물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공장이 많아 질수록 자원과 에너지 부족의 애로점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바다 로의 출구도 막혀있다.

사회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의 결합이라는 기묘한 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도 문제이다.

21 세기 초강대국 중국은 통계의 마술이 만들어낸 허상일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만 있었고 대등한 동맹관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 한 번 강요에 의해 억지로 형님 이 된 일이 있었는데 그 동생이 자기가 형님이 되겠다고 하여 전쟁까지 일어났다.

지금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들도 조선 말에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 고사(故事)에 그림 속의 미녀 에게 상사병이 나서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시골선비의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민족은 이런 '똑똑한 바보'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부산일보 200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