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 61대손 고붕씨 국내 대학서 석사과정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된장찌개에 질색했는데 이제는 청국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됐어요.”

고구려 장수왕의 후손이 한국에서 4년째 유학생활 중이다. 10년 전인 1995년 2월 장수왕을 시조로 기록한 요양 고씨의 족보 ‘고씨가보(高氏家寶)’를 들고 한국을 찾아 화제가 됐던 고지겸(高之謙·의사) 씨의 맏손자인 고붕(高朋·28·사진) 씨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에 살던 고 씨는 1999년 70세로 별세한 할아버지가 “두 손자(쌍둥이) 중 한 명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면 좋겠다”고 한 유언에 따라 2001년 한국에 왔다. 연세대어학당을 거쳐 강남대 무역학과 3학년에 편입한 그는 현재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이다.

‘고씨가보’에 따르면 고 씨는 장수왕의 61대손. 1686년 작성돼 중국 학계에서 검증을 받은 이 족보에는 가문의 시조가 장수왕 고련(高璉)으로 기재돼 있다. 할아버지 고지겸 씨는 1989년 ‘고씨가보’를 들고 중국의 헤이룽장신문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한족이 아니라 장수왕의 후손이라고 밝혔고, 아버지 고흥(高興·57) 씨도 조선족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만큼 고구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는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랴오닝(遼寧) 성 크기 정도의 나라인 줄 알았는데 영토가 그 몇 배는 됐다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고구려 역사를 자세히 배우면서 예전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구려 사랑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고 씨는 고구려 왕실의 후손인 횡성 고씨 종친회와 고구려연구회의 후원으로 장학금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편의점 종업원과 맥줏집 웨이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 왔다.

고구려의 역사 귀속을 두고 한중 간 다툼을 벌이는 것에 대해 그는 “싸움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한족이냐 조선족이냐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그냥 고구려인으로 살고 싶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조선족은 아무래도 소수민족이다 보니 중국 내 공직 진출 등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민감한 시기엔….”

내년 2월 대학원 졸업 후 가능하면 한국에 남아 한중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더하고 싶지만 취직이 여의치 않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한국과 중국을 비교해 달라는 말에 “한국인의 국산품 애용에 놀랐다. 중국인들에 비해 애국심이 대단하다”면서 “반면 중국인들은 포용력이 보다 넓다”고 말했다.

고 씨는 경기 구리시에 세워진 광개토대왕 동상의 얼굴에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얼굴에 대한 조사도 반영됐다는 비화를 소개하며 “할아버지, 아버지보다는 외탁을 많이 한 얼굴”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동아일보 / 권재현 기자 2005-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