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베를린 한국기업의 두 얼굴

서울의 남대문 격인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는 한국 기업의 대형 광고판으로 전면이 덮여 있다. 이 구조물을 개ㆍ보수해 주는 대가로 베를린 시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낸 때문이다. 공사비는 수십억원이 들었을 테지만 높이 20m, 길이 40m를 넘는 대형 관문의 8차선 도로엔 수많은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더구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 메인스타디움으로 가려면 여기를 통과해야만 한다. 광고 효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기업으로선 최고의 선택임이 분명했다. 효과가 금방 눈에 보이는 광고엔 탁월한 한국기업의 진면목을 보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효과가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 해외 한국문화 홍보엔 아직 인색하다. 지난주 베를린에서 열렸던 ‘아ㆍ태 주간’을 보면 더욱 그렇다. 독일에선 올해가 한국의 해이고 그래서 한국문화가 중점 소개되는데도 우리 기업들은 하나같이 후원을 외면했다.

고구려 고분전 행사를 준비했던 국내 관계자는 “후원을 요청하자 기업들이 중국 정부에 눈치가 보여 곤란하다고 하더라”면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을 통해서 간접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었을 텐데도 한국기업이 한국문화 홍보 행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점이 이해가 안 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래서인지 이번 행사는 다른 해, 다른 나라의 행사보다 초라했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이미 일본 기업의 후원으로 아ㆍ태 주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던 일본과 비교하면 낯뜨거운 수준이다.

한 베를린 시 관계자는 “독일기업들은 해외에 독일기업이라고 알리고 싶어 하는데 한국기업들은 오히려 다국적기업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4만유로(5000만원) 정도 부담하는 메인 스폰서마저 거부했던 한국기업들의 문화의식이 아쉽다.

(헤럴드경제 / 김만용 기자 2005-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