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옥죄기'에 재계 당혹

"그럼 삼성전자 경영권이라도 내놓으라는 말이냐."

"소유주식의결권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삼성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의 잇단 옥죄기에 대해 재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당사자인 삼성은 겉으로 정면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과 관련해 '삼성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전해지자 그룹 주변에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결국 계열 금융사가 갖고 있는 5% 이상의 지분을 처분하라는 것인데 이는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물론 금산법 개정이 곧 삼성전자 경영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순환출자 고리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삼성카드 지분(25.64%)이나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 지분(7.26%)에 대한 의결권을 5%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금산법 개정안 가운데 보다 강경한 안이 통과되면 5% 초과 보유분에 대한 매각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때문에 삼성그룹의 기존 지배구조에 상당한 혼란이 생기는 것은 물론 삼성전자와 같은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마저 위태 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삼성을 짓누르고 있다.

삼성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 비판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데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아예 뜯어 고치려는 규제 입법이 잇따르고 있다. 반 삼성 진영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 속앓이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반발도 못하고 있다. 삼성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 '법대로 ' 논리를 내세우며 강경 대응하다 역효과만 불러올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격앙된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은 "기업지배구조는 주주들이 동의하고 시장에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정부당국이 특정 지배구조 모델을 정해놓고 이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시장원리에 맡기지 않고 인위적으로 기업 지배구조와 소유구조를 뜯어고치려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재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4대 그룹의 K전무는 "X파일 수사나 금산법 개정문제는 기존의 법체계와 원칙을 따르는 기업에 지나친 벌을 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벌 개혁의 취지는 좋다 하더라도 소급 입법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이는 예측가능한 기업 환경을 만드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다른 대기업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삼성이 유독 비판 의 표적이 되는 것은 삼성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1~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이 라고 분석했다. 이 상무는 "삼성의 독주체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삼성에 대한 견제심리로 이어지고 있다"며 "잘하는 기업을 끌어내리기보다는 제2, 제3 의 삼성을 만들어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광선 중앙대 교수는 "보험사가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 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수신기능이 없어 대주주가 고객 돈 을 이용해 지배력을 확대할 우려가 없는 카드사 보유주식의 의결권까지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삼성이 장기적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써야 할 재원을 경영권 방어에 쓴다면 전반적인 기업 투자부진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600대 기업 투자액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이 투자를 줄이면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의 성장률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상황에서 성장의 주역인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더욱 경제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다.

특히 일본 소니가 삼성에 뺏긴 '전자왕국'의 권좌를 되찾기 위해 공세를 펴는 등 글로벌 기업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국내 정치권의 압박은 삼성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매일경제 / 장경덕 기자 2005-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