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중국서 부활하는 공자사상

봉건잔재서 국가이념으로 '명예회복'

유학이 중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이 중국 대륙을 휩쓸면서 ‘타도해야 할 봉건 잔재’로 여겨졌던 유학이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를 이끄는 최고지도자들은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고, 공자 탄생 2556주년을 맞아 중국 전역에서는 공자 기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서울을 시작으로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설치해온 해외문화원의 이름을 ‘공자학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에 ‘분서(焚書)의 시대’는 가고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가 열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학에 최근 국학원이 들어섰다. 유학을 중심으로 고전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공산주의 혁명이 한창이던 1937년 세워진 인민대학은 공산주의 이념을 학문적으로 떠받쳐온 곳이다. 중국 공산주의 이론의 메카라고 할 만하다. 이런 인민대학에 고전연구 전문기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외부에선 이를 두고 ‘잠든 중국의 전통문화가 깨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지 27년째. 중국에는 전체 기업의 40% 정도를 민영기업이 차지하게 됐다. 중국인의 의식도 ‘내 것’을 따지는 자본주의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생각이 흔들리면 모든 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만은 고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학을 비롯한 전통사상과 외부 세계의 종교가 중국을 파고들 여지는 적었다. 이 같은 상황을 중국 스스로 깨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 베이징에서는 200명이 넘는 중국 지도자와 학자 화교들이 모인 가운데 유학 연구 대토론회가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학자들은 “유학에서 사회 충돌을 피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열린 2005년 양안 기업 고위경영인 세미나에서 류창웨(劉長樂) 봉황(鳳凰)TV 사장은 “유학을 널리 부흥시켜 사회 화합을 이루는 이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학 부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이처럼 터져 나오기는 드문 일이다. 인민대학도 지난 6월 국학을 번영시키기 위한 대토론회를 벌였다.

런지위(任繼愈) 전 국가도서관장은 이에 대해 “유학이 2000여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내용을 끊임없이 흡수했기 때문”이라며 “중국 전통문화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올해부터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중국과 외교관계가 있는 나라에 여는 문화원에 ‘공자학교’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베이징 외교 관계자는 “20년 전이었다면 ‘마오쩌둥(毛澤東)학교’라는 이름을 붙여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토록 비난했던 공자의 이름이 붙었다”며 “중국이 이념을 다루는 모습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는 베이징 공묘(孔廟)에 중국 대학입시 수석 합격자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우자는 계획이 만들어져 논란이 빚어진 적도 있다. 베이징시 행정조직인 안딩먼(安定門)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동사무소급)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이 같은 계획을 추진했던것.

공묘에는 현재 원·명·청대 과거에 합격한 진사(進士) 5만여명의 이름을 새긴 198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대학입시를 과거와 동일시하고 공묘에 이름을 새겨 장원의 영예를 기리는 전통을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비난의 목소리에 밀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봉건사상’으로 비난을 받아 온 전통문화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뜻한다.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9월 초 제21회 스승의 날 기념행사에서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발분하지 않으면 계도하지 않고, 답답해 하지 않으면 일러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不發)”는 말을 인용해 교육 방법론을 이야기했다. 원 총리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독립적인 사고와 창조적인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마침내 공자의 말을 빌려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은 28일 공자 탄신 2556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공자문화제를 대대적으로 열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왜 이처럼 유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유학이 ‘질서의 철학’인 만큼 이를 통해 중국에 새로운 질서를 심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중국의 과거 전통과 사회주의 이데올리기가 어우러지는 신 중국의 모습은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에서도 나타난다. 명·청 시대에 세워진 톈안먼에는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 만세’라는 구호와 함께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려 있다.

아편전쟁 이후150년간 홀대

서구침략·문화혁명 거치며과거 전통사상 대부분 말살

중국은 유학에 관한 한 황무지나 다름 없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개시를 알리는 아편전쟁(1840∼46) 이후 150여년 동안 중국에서 유학(儒學)은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하버드대학 옌칭(燕京)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두웨이밍(杜維明·65) 저장(浙江)대 인문대학장은 중국 남방일보(南方日報)와의 인터뷰에서 “이 기간 중국은 사실상 전통문화와 단절된 역사의 길을 걸어 왔다”고 말했다. 서구 열강의 침략에 시달린 데 이어 일본의 침략과 공산주의 혁명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국에서는 유학자의 씨가 말라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중국공산당 집권 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동안 과거 전통사상은 말살되다시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 때문에 두 학장은 “유학적인 전통을 이해하자면 한국 일본 베트남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며 “유학을 통해 중국을 바라보는 것은 단편을 보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최근 유학의 전통이 강하게 살아남은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자 탄신 2556주년을 맞는 28일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4시간 동안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의 공묘(孔廟)에서 열리는 공자제사 현장을 생중계할 예정이다.

이때 한국과 일본 등 공묘가 있는 세계 주요 도시를 연결해 생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특히 한국 성균관에서 진행될 석전대제 내용이 중계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획은 따지고 보면 유학의 전통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세계일보 / 강호원 특파원 200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