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진해 해군 제9잠수함 전단(戰團)

내달 '10년 무사고' 대기록
미(美) 핵航母도 가상훈련서 명중

"출항 준비, 출항 준비!"

23일 오후 진해 해군 제9 잠수함 전단(戰團)사령부 내 부두. 출항 명령이 떨어지자 잠수함 ‘이순신함’의 승조원들이 부두에 묶인 로프를 풀어내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부하 장수였던 이순신(李純信) 장군 이름을 딴 이 잠수함은 총 9척인 해군의 장보고급(級) 잠수함 중 7번째로 건조된 뒤 1999년 취역한 최신예 함정이다. 독일 HDW사가 만든 209형(型) 잠수함을 국내에서 조립한 것이다. 어뢰 외에 하푼 잠대함(潛對艦) 미사일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9전단 기지에는 이순신함 등 모두 ○척의 장보고급 잠수함들이 정박해 있었다. 은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잠수함은 어느 나라든 특급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비밀 무기다. 잠수함기지 부두 외곽엔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10m가 넘는 높은 차단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9전단은 1995년 창설된 이래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주변국의 3000~7000t급 공격용 잠수함에 비해 몸집이 매우 작다. 북한군 주력 잠수함 로미오급(1700t급)보다는 약간 작다. 디젤·전지로 추진되는 재래식 잠수함으로 수중 배수량은 1285t, 길이는 56m에 불과하다.

약 40명의 승조원들이 길게는 한 달 가량 생활해야 하는 함내(艦內)는 길이 40m, 폭 2m 내외의 좁은 공간이다. 침대는 수상 함정의 경우보다 작아 키 큰 사람은 다리를 구부리고 잠을 자야 한다.

첨단 장비들이 밀집된 밀폐 공간에 있다 보니 화재 위험 때문에 불을 사용해 튀기거나 구운 음식을 먹기 힘들다. 스테이크도 찐 것을 먹는다. 햇빛을 장기간 쬐지 못해 생기는 비타민D 부족현상을 막기 위해 식단에 야채류를 많이 포함시키는 등 잠수함 전용 식단을 만들어 영양을 보충한다.

잠수함 생활은 물 사용이 제한돼 샤워도 매일 하지 못한다. 며칠 동안 ‘머리 감지 않기 훈련’을 하기도 한다. 바다 속에서의 비밀 작전이 주임무이다보니 스트레스 해소나 운동 수단도 마땅치 않다. 고려 말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박위(朴?) 장군의 이름을 딴 박위함의 이재민 상사(잠수함 경력 13년)는 “VTR 시청과 독서, 음악 감상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데 이 또한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

9전단은 오는 10월 ‘잠수함 10년 무사고 운용’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일본 등 잠수함 선진국들은 예외없이 잠수함 운용을 시작한 지 8년 이내에 침몰 등 대형 사고를 경험했다.

그렇다고 우리 해군이 잠수함을 소극적으로 운용했던 것은 아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1997년 이후 8000여㎞ 떨어진 하와이 근해까지 나가 림팩(RIMPAC) 등 연합 훈련에 참가, 가상 교전에서 미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격침시켜 미군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7월 림팩훈련에선 장보고함이 미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배수량 9만7000t급)와 이지스함, 일본 구축함 등 35척의 함정에 40발의 가상 어뢰를 명중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대잠(對潛)작전 능력을 갖고 있는 미군들로부터 “유령에 홀린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황군(黃軍) 소속이었던 장보고함은 상대방인 청군(靑軍) 수상 함정들을 전멸(全滅)시켰으나 미국의 체면 손상과 중국·일본의 여론 자극을 우려해 한동안 이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조선일보 / 유용원 군사전문 기자 200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