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 韓·中 우호의 그늘 ‘고구려史’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했을 때다. 한류(韓流)와 한풍(漢風)이 주요 화제로 떠올랐다.

문의장은 “중국에 유학 온 한국 유학생이 4만5천명인데, 그 중에는 제 딸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3만개인데, 제 동생이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한국에서는 요즘 한집 건너 한집마다 중국어를 배우고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은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서 큰 인기”라면서 “시간이 없어 매일 드라마를 보지는 못한다”고 화답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더욱이 최근 끝난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을 놓고 서로가 상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후주석은 특히 “오는 11월 예정된 방한을 계기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의장 일행이 같은 날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부 상무(수석) 부부장을 찾았을 때였다. 아주 좋은 분위기여서 꺼내기가 뭐했지만 미리 준비했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거론했다. 후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역사 문제에 대한 중국 측의 확실한 태도 표명이 있었으면 한다는 주문이었다.

분위기는 금세 차갑게 식었다. 다이빙궈 부부장을 비롯해 중국 측 참석자들의 얼굴이 굳어진 것이다. 중국 측은 “고구려사 문제는 지난해 8월 양국 정부가 재발 방지 등을 담은 5개항의 구두양해사항 합의로 일단락됐다”면서 “더이상 꺼내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그것은 한·중 우호의 빛속에 가려진 그늘이었다. 한·중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말하지만, 한·중 관계의 앞날에는 이렇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경향신문 / 홍인표 특파원 2005-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