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9.18 국치 기억하고 단결하자"

1992년 <중국인구연감(中國人口年鑒)>에 따르면 만주족은 984만 명으로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555만 명의 장족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분포를 보인다. 이들은 주로 동베이3성(랴오닝, 지린, 헤이롱장성)에 살고 있어서 ‘동베이런(東北人)’으로 불린다.

사회주의 시절 동베이런은 “살아있는 레이펑(雷鋒, 인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의 대명사)”으로 통했으나 개혁개방 이후 ‘헤이셔훼이(黑社會)’라 불리는 깡패조직에 동베이출신이 많아 동베이런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 물론 그 중에는 조선족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동베이 특산품은 깡패가 아니다(東北特産不是黑社會)” 라는 대중가요가 회자될 정도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쓰여왔던 ‘만주’나 ‘관동’ 이라는 지명 대신 왜 ‘동베이’ 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일까?
현재 많은 중국인들은 만주는 ‘만주국’의 부끄럽고 아픈 역사에서 기인한다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도 만주는 ‘Manchuria’로 통용되고 있는데 중국인들 스스로만 이 말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역대 중국의 한족 왕조들은 이민족 콤플렉스가 있었다. 자신들을 제외한 주변을 모두 오랑캐라 칭하며 이들이 언제 자신들의 문화를 덮칠지 몰라 늘 불안해 하였다. 그 히스테리컬한 전제 군주의 반응은 만리장성이 잘 보여주고 있다.

만주는 빼앗기고 분쟁의 상처 · 얼룩 서려있는 땅

한족의 마지막 왕조인 명나라를 무너뜨린 것이 만주족이었고 일본은 만주사변으로 중화민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 놓기도 하였다. 소련과의 국경분쟁으로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했던 지역도 만주였다. 또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는 곳도 이곳이다. 어쩌면 고구려 문화유산을 서둘러 세계문화유산에 신청 등재한 것도 중국인이 갖는 만주 콤플렉스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빼앗기고 분쟁의 상처와 얼룩이 서려 있는 땅, 이민족의 문화 유적들이 그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땅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갖는 경계와 불안이 만주 콤플렉스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31년 9월 18일에 일어난 ‘만주사변’도 중국인들은 만주는 빼고 ‘9.18사변’으로 부른다. 9.18 만주사변 74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인들은 ‘국치를 잊지 말자(勿忘國恥)’, ‘지난 날을 잊지 않는 것으로 미래의 스승을 삼자(前事不忘 後事之師)’, ‘편안함에 거하며 위태로움을 생각하자(居安思危)’고 외친다. 올해는 특히 추석과 겹쳐서 이런 문구들이 새겨진 월병이 등장하기도 하고 국치일이라고 결혼과 연회가 미뤄지기도 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한 중국 대학생은 bbs논단에 남긴 글에서 “오늘날 우리가 평화스런 시대 행복한 중추절을 맞는 것은 항일 혁명열사들의 피로 이룩된 것이다. 중추절의 달을 보며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모든 중국인이 오늘(9.18)의 국치를 기억하고 단결하자” 고 외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거행되는 9.18사변 관련 행사들은 물론 일본의 침략을 지탄하고 반일정서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통해 만주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또 내부의 결속을 가지자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난입니다.

(국정브리핑 / 김대오 국정넷포터 2005-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