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1] 10년 후, 한국산업 ‥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인터뷰 -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성장은 고사하고 후발 경쟁국에 밀릴 우려가 큽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의 표정에는 위기의식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 주춤하기 시작, 급기야 지난 2분기에는 실질성장률 0%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은 커녕 ‘오늘 같은 내일’ 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 포럼은 위기돌파를 위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이장관은 설명했다. 불확실한 한국경제의 현황과 국제경제의 변화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그려 적절히 대응하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포럼을 준비하느라 바쁜 이장관의 일정 관계로 서면인터뷰와 ‘산업혁신포럼 2005’를 하루 앞둔 9월5일 열린 기자단 공동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됐다.

‘산업혁신포럼 2005’를 개최한 배경을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외 학자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국내 전문가들은 압축성장과 외환위기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와 최근의 경기부진, 중국의 부상 등을 들어 한국경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높습니다. 반면 해외에선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세계 4위에 이르고 수출성장이 안정적이며 조선, 반도체, 자동차, 디지털가전 등 주력산업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어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내다봅니다.

이번 포럼은 한국경제가 당면한 도전과 기회요인을 분석해 향후 10년의 발전전략을 세워 재도약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미래 예측은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없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된 산자부의 ‘2015 산업발전전략’의 핵심과 기존 전략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1% 성장으로 2015년 1인당 GDP 3만5,000달러 달성’입니다. 환율, 물가, 유가 등 많은 변수가 있지만 혁신역량 확충, 기존 관념에서 탈피한 역발상, 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높여 2015년에는 GDP 기준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되자는 제안입니다.

정부 차원에 한정됐던 기존의 전략에 비해 분석수준을 산업과 기업으로 확대하고 이분법적인 발상에서 탈피한 역발상 전략, 세계 분업구조 속에서의 한국산업의 역할 등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번 포럼에 초청된 세계 석학들 역시 이 전략은 분석의 범위가 넓고 입체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매우 야심차며 인상적인 전략이라는 설명이었다). 잠재성장률을 1%포인트 높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요. 어떤 묘안을 가지고 계신지요.

시장의 특성을 반영,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이를 위해 신기술 융합산업 및 첨단제조업, 주력제조업, 인프라성 서비스 산업, 소프트 서비스 산업 등 4대 산업군을 선정하고 각기 다른 발전전략을 마련했습니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2015년께는 2,7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입니다.

정부의 희망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주요 거시지표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지난해 GDP 세계 11위, 수출 12위를 달성했고 물가와 금리는 안정적이며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반의 양극화, 신용불량자 문제, 부동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적으로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경쟁력 약화, 주력산업의 성장지체와 공급과잉 등도 걱정거리입니다.

그러나 혁신역량을 확보해 기술순응자(fast follower)가 아니라 기술선도자(rule creator)로 면모를 일신하고 발상을 전환해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포럼의 직접적인 목적도 이에 대한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산자부의 전략은 결국 미래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텐데요. 미래 경쟁 환경을 전망해 주십시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WTO 체제의 출범으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됐으며 중국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부상으로 국제분업구조에 일대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국가가 부흥한 반면 이스라엘, 대만, 아르헨티나는 성장이 지체되는 등 각국의 위상에도 부침이 심했습니다.

향후 10년의 변화는 지난 10년의 그것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속할 것입니다. FTA 확산으로 지역주의가 확산되고 동아시아의 경우 국가보다는 도시를 거점으로 한 광역집적지역이 국제경제의 축으로 대두될 것입니다. 에너지와 자원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고령화의 진전으로 노동시장의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또 중국 등 신흥개도국의 성장은 국제분업구조를 개편할 것입니다. 기술은 더욱 빠르게 혁신되고 산업간 융합 역시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경쟁법칙은 무너지고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겠죠. 제품, 서비스, 생산, 사업모델, 기업, 산업은 유례없는 변화에 직면할 것입니다.

산자부는 2015년 한국산업의 역할을 ‘세계 분업구조의 보완자’(Global Industry Integrator)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현실화될 수 있는 목표인지에 대한 의문도 없지 않습니다.

국내산업의 구조적인 특징을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국내산업은 단순조립에서 첨단업종까지 대단히 광범위한 산업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죠. 기술적으로도 각광받는 신기술에서 중급기술을 고루 갖추고 있죠. 여기에 그동안 축적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국제분업구조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산업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했습니다. 우선 선진국 시장에서 동등한 수준으로 경쟁하기 위해 차별화된 영역에서 확고한 브랜드 역량을 확보할 방침입니다. 또 개도국 시장에서는 신흥공업국과 최소한 2~3년의 기술격차를 유지하면서 시장수요에 부응하는 중급기술을 중심으로 부품소재 및 인프라성 서비스를 공급해야죠. 저개발국 시장에선 미래 잠재시장 확보 차원에서 현지관계를 다져나갈 예정입니다.

과거에 발표된 정부의 산업발전 전략과 달리 이번에는 기업의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기업의 발전방향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기업은 혁신의 주체입니다. 국내산업이 혁신역량을 확충하고 성장능력을 배가하는 데는 무엇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종전처럼 단순히 변화를 빨리 읽고 순응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스스로 변화를 창출하고 새로운 영역을 선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나가야 합니다. 비즈니스 전분야를 재정립해 무경쟁시장인 블루오션을 선점해야 합니다.

미래 글로벌산업의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선 정부의 혁신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존의 칸막이식 사고를 버리고 법령, 제도, 관행,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정부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선 지속가능한 산업의 발전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산업발전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리스크를 줄이고 경제부문간 양극화 해소와 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입니다. 또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산업자금 지원을 통한 신기업가정신 고양, 수요지향적 인적자원 공급체계 구축과 생산적 노사협력 확산을 통한 창조적 인적자원 육성, 산학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R&D체제 확산을 통한 지식인프라를 구축해 기업의 혁신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향후 10년을 정확하게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경의 변화가 전에 없이 빠르고 크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전략의 수정도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해 두셨는지요.

이번에 발표된 전략은 300여명의 전문가들과 산자부, 노동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여러 관련부처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환경의 변화에 따라 1년 단위로 전략을 수정, 보완해 기업이 미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약력: 1949년생. 67년 서울대 사범대부속고 졸업. 7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73년 서울대 행정학 석사. 87년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72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81년 대통령비서실 서기관. 83년 상공자원부 정보기기과장. 87년 수출과장. 91년 총무과장. 93년 전자정보공업국장. 94년 주유럽연합대표부 상무관. 97년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99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0년 차관. 2002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2003년 서울산업대 총장. 2003년 산자부 장관(현)

(한경비즈니스 2005-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