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미국을 아십니까?

조금씩 다른 시각과 경험 가진 미국 전문가 3인의 이야기
백인 주류의 정교한 시스템, 그 사회의 작동원리가 재앙을 부른다

사회 =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었는데도 카트리나의 재앙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면서 놀랐다. 미국 사회의 감춰졌던 문제와 모순들이 일시에 툭 튀어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어떠셨는지.

이영돈(이하 이영) = 주검들이 즐비한 모습을 보는 순간 미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한된 지역에서 일어났던 9·11과 비교해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피폐화된 이번 일은 미국에 사는 백인들에게도 낯설었을 것이다. 미국이 막나가는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봤던 미국 사회에 그런 재앙의 암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백인 중심의 사회 속에 그런 모순들을 감추고 운영을 잘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은주(이하 이은) = 미디어들이 그려온 미국의 이미지가 언제나 워싱턴과 뉴욕 등 대도시 중심의 최첨단 부국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심했을 것이다. 예전에 뉴올리언스를 방문했을 때도 아름다운 재즈와 풍취 있는 건물 뒤편으로 흑인들의 피폐한 삶의 모습이 해안선쪽으로 펼쳐져 있는 식의 양면성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은 늘 그런 부분이 은폐된 채 세계 강국으로서의 정체성만 강조됐기 때문에 카트리나를 통해 환상과 현실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미국의 브라질화’

김동춘(이하 김) =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던 ‘미국의 브라질화’를 떠올렸다. 미국은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처럼 보이면서 어떤 부분은 완전히 버려져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이야기다. 이번 카트리나 재앙을 통해 브라질화가 하나의 외적 충격, 자연재해에 의해서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 = 이번 일을 두고 소수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서 인종과 빈부격차 문제 등을 해결하려고 했던 게 결국 터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이번 재앙은 언제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있다.

이영 = 미국 사회는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는 철저한 작동원리가 있다. 예를 들어 슈퍼 점원은 다른 일은 절대 안 한다. 돈 받으며 바코드를 찍고 잔돈을 거슬러주는 일만 한다. 계층에 따라 주어진 일이 있다. 전체 5% 정도의 엘리트가 사회 전체를 운영하고, 잘 짜인 하부 구조에 흑인, 아시아인 등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은 = 수면에 잠겼다 다시 올라오는 뉴올리언스 모습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참한지 모르겠다. 그 실체를 목격한 것으로 미국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불평등, 빈민 문제가 구체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내가 뉴저지에 살았을 때 학교 근처에서 저녁마다 2~3건의 강간이 이뤄지고, 밤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사회 = 약탈이 문제가 됐다는 점도 충격이다.

= 리영희 선생이 중국 탕산 시민들과 미국 시민의 태도를 비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지진으로 인해 정전사태가 일어났을 때 탕산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처한 반면, 미국은 완전히 범죄의 도가니였다. 미국 사회 전체가 그렇다고 속단하긴 어렵지만, 통합성이 약하고 파편화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권력이 이완되면 노골적으로 본성을 드러내는 현상 말이다. 이번 뉴올리언스 사태는 미국의 사회·경제적 소수자들이 어떻게 배제돼왔는지를 보여준다. 돈의 논리로만 통합을 이뤘지, 사회적 규범으로 이들을 통합해내지 못했다는 치부가 드러난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주류 사회는 자원봉사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어느 정도의 통합성이 있다. 그러나 주류의 바깥, 즉 주류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는 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통합성이 한계를 지닌다.

이은 = 우연찮게 미국의 진보적 그룹의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례적으로 한 흑인이 와서 같이 논의를 하니까 민중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흑인 한 사람이 온 걸 가지고 대단히 큰 성과처럼 이야기를 하더라. 그때가 1990년대 말이었다. 참 놀라웠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조차도 흑인과 뭔가를 같이 해나가는 것이 ‘도전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인가 싶었다. 결국 진보주의든 인도주의든 백인 중심의 통합이었다.

이영 = 9·11 때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뉴욕의 빌딩 아래 보석방이나 고급 의류점 등 역시 많이 약탈당했다. 그리고 약탈자의 대다수는 백인이었다. 이 사실은 보도되지 않더라. 사실 백인의 심성 자체는 착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약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즉, 법이 없어지면 그 약한 측면이 야수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뉴욕에서 차가 막힐 때, 백인들이 스트레스 받는 걸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경찰이 있을 땐 신호를 잘 지키다가도 없으면 막 지나가버리더라. 만약 뉴올리언스 같은 사태가 뉴욕에서 벌어졌다면 백인들의 그런 ‘야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소송 만능주의와 야성, 동전의 양면

사회 = 인간의 본성으로 파고들어가면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다.

이영 = 취재를 하면서 백인들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조급하고 화를 잘 내고 참지 못하는 성격상의 결함에서 오는 심장병이지 않을까 싶다. 백인 안에 그런 조급함과 화를 잘 내는 성격이 내재돼 있다는 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지 않은가.

= 이런 이야기도 이미 19세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자신과 이질적인 사람에 대한 과도한 공포, 두려움, 본능적 적대감 등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하나의 측면은 미국이 ‘소송 만능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 소송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관계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법 안에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고, 그게 흔들리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래서 규정이나 법이 무너지는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본능이 폭발하게 된다.

이은 = 미국에 처음 간 사람들은 벌금을 내면서 미국 사회에 대한 수업료를 치른다. 소리 지르고 침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려도 벌금이 200~300달러다. 어른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다녀도 구속 사유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방식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주류와 법을 만든 사람들, 즉 지배적인 계급이 만든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탈 문제를 보자. 텔레비전에서 보니 뉴올리언스에서 한 흑인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온다. 하지만 이건 약탈이 아니다. 우유 몇개와 빵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먹을 게 없으니까. 당장 뉴올리언스를 빠져나갈 교통수단도 현금도 없고, 그렇다고 음식을 파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인데, 이게 미국 언론에선 초점으로 부각된다. 9·11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극한 상황이라면 전세계에서 이런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그걸 약탈로 보는 게 인종 편견이다.

사회 = 미국 사회의 시스템이 정교하다고들 말한다. 이 정교함이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뉴올리언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 연방제와 삼권분립, 각종 소송 절차들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각종 사회적 제도를 만들면서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이 체제를 뒤엎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들이다. 미국에선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풀게 한다. 민주주의 형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를 은폐하고 주변화하는 꼴이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2003년 남부 흑인 지역에서는 주 예산이 삭감돼서, 이를테면 공익변호를 받아야 할 흑인들이 가해자가 아닌데도 가해자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제도들은 19세기부터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장점이 부각됐고 진보적이어서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이 일종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면서, 내부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여러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건 아닐까.

제국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법 체계’

이영 = 정교한 법 체계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기능을 한다. 시민들은 잘 지키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킨다. 나도 신호위반으로 280달러까지 벌금을 내봤는데, 그 뒤부터는 60~70마일 이상으로는 절대 달리고 싶지 않다.

사회 = 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위기 상황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관료주의를 볼 수 있다. 연방비상관리청은 피난민 구호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 구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들만 겨우 만났다고 한다. 이들은 주·연방 정부가 뭘 하는지 분통을 터트렸다. 미국에 갔을 때 막연히 시장 중심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상당히 관료적이라서 놀랐다. 관료들은 자기가 주어진 것 외에는 절대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할당된 임무와 절차 아니면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서 한국인들이 질려 한다. 이번도 그렇다. 응급재난에서의 시스템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부의 관료주의로 인해 융통성 있게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느낀 문제가 그게 아닐까. “예산 책정이 안 됐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가만히 있는 관료들, 개인적으로도 이런 관료주의적인 모습을 많이 경험했다.

이은 = 답답한 사회다. 우리가 ‘중·장년 사회’라고 한다면 미국은 ‘청년 사회’라고 해야 하나? 일 처리에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데, 그런 장점이 융통성과 신속성을 대체할 만한 차원은 아니다. 9·11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이고 백인, 뉴욕, 연방정부와 가깝지만 뉴올리언스는 빈민층, 흑인, 변방을 표상한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큰일이 터졌을 때의 수습 대처 능력이 많이 뒤떨어진다. 구조적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빈 공간이 있고, 미국이 이라크전과 같은 미국 외적인 부분에 지지 기반을 얻으려고 하니, 국내에 그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인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부 모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혼모·흑인·가족·아동 등 복지 부문에서 주정부 예산이 많이 삭감됐고, 이런 사태는 자연 재해뿐만 아니라 어떤 사태가 오더라도 복구할 수 없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단 사나흘 동안을 살 수 없는 극빈층을 양산한 건, 부시 행정부 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김동 =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구 목욕탕 폭발 사건도 비슷하게 봤다. 이 사건은 소방안전 점검을 게을리한 행정 당국의 책임이 먼저다.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남겨야 하기 때문에 안전시설을 안 갖추고 돈을 벌려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행정 당국에서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 대구 가스폭발 사건이나 지하철 사고도 마찬가지인데, 1990년 이후 ‘작은 정부론’이 나오면서 민원 행정 인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그리고 업무가 과중됐다. 시장만능주의 결과다. 대구가 연상된 건, 대구는 40년간 한 당이 지배한, 한번도 정권이 교체되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도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이다. 지역사회에서 사회운동의 견제력이 없고, 흑인 사회는 게토화됐다. 1960~70년대만 해도 인권운동이 활발했는데, 결국 각개격파되고 동력을 잃었다. 그런 게 결합해서 정부에 복지 예산 확보를 요구하는 내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사회 = 백인 경찰들이 약탈하는 흑인을 제지하는 것이 생방송으로 반복 중계된다. 사람들이 재난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인 흑인을 가해자로 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김동 = 흑백 문제는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겹쳐 있다. 냉전 이후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코드다. 미국은 겉으론 풍요롭고 풍족하고 정교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처럼 보이지만, 이를 지탱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한 사회다.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이 벌인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가난한 집의 자식들이자 흑인이다. 이걸 ‘애국주의’로 포장해서 지금까지 버텨왔다. 이번 재난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희생됐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미국 사회를 설득하고 그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버텨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노동 운동에 의해 모순이 폭발하는데, 미국은 그것이 폭발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시스템적으로 감춘다. 단지 범죄의 형태로 폭발한다. 외적 환경이 이런 식으로 억압하니까 집단적 범죄로 나타나는 것이다.

흑인 게토화 정책, 백인들의 미디어

이은 = 흑인들은 복지 예산 삭감에 반대하고 세력화할 만큼 성장돼 있지 않다. 법적으로 주거지나 학교, 음식점이 흑백으로 분리되지 않지만, 흑인들은 아직 그 테두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돈 있는 학교 못 보내고,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돈도 없고…. 법적 차이가 아니라 빈부 차이에 의해 흑백이 차별된다. 흑인들은 차별에 저항할 만한 힘을 상실했고, 역사적 계기마다 이런 어두운 측면이 나타난다. 이런 문제는 흑인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게 피해를 준다. 부시도 이런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면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된다. 서로에게 악영향을 준다. 흑인을 게토화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미국은 자기붕괴하는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사회 =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 언론에서 뉴올리언스의 재난보다 수치스러운 것은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는데.

= 빈부 차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예전에 빨갱이를 악마화했다면, 미국은 테러를 악마화하고 있다. 마치 미국 사회 내부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외부 문제를 들먹인다.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게 결국은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며 내부 사회의 문제를 감춘다. 그러면서 내부 사회의 통합을 위한 비용과 노력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영 = 유대인 위주의 백인과 백인 엘리트들이 경찰국가 형태로 미국을 다스린다. 결코 현 상태에서는 흑인 빈민층이 세력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미디어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텔레비전 방송도 다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로 뉴올리언스 사태를 보여주며 봉합할 것이다. 한두달 내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쉽게 잊혀지겠지. 시카고 경찰 매뉴얼에는 ‘벤츠320’ 타고 다니는 흑인이나 ‘렉서스400’을 타고 다니는 히스패닉은 반드시 검문하라고 나와 있다고 한다. 흑인을 다루는 백인 세력을 보면, 정말로 교묘하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 어려운 문제다.

사회 = 9·11과 이라크전, 뉴올리언스 사태의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무엇이 있는가.

이은 = 부시의 테러 전쟁은 결국 미국 내부의 무능한 경영을 낳았다. 테러전쟁에 대한 반응이 9·11이다. 9·11 수습은 애국주의에 기댔다. 테러에 대한 반격으로서 이라크전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뉴올리언스 사태는 그런 연장선 속에서 뚫린 ‘구멍’을 수습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난 현상 아닐까.

김동 = 부시 행정부를 이끄는 네오콘과 우파들은 절제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한다. 부르주아 안의 한 분파인 민주당은 이익을 추구하되 어느 정도 나눠가며 하자는 것이고. 부시 정부 들어와서 민주당은 ‘적당히 먹어라’는 식으로 비판할 뿐이다.

사회 = 이번 사태는 그동안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번을 계기로 좀 달라질까?

이영 = 미국에 대한 환상은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됐다. 미국 사람들을 생활 속에서 들여다보면 친절하고 인도주의적이고 그런 측면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미국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미국 사람들은 만나서 섬뜩할 때가 언제냐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정상 얼굴로 돌아올 때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변할 수 있을까. 반면 흑인들과 만날 때는 좀 다르다. 한국 사람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

사회 = 미국 안의 1·2·3세계의 단면들이 다 보이는 것 아닌가?

이은 = 미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제가 없는 나라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도했다가 의료계의 로비로 실행되지 못했다. 대다수 흑인들, 미혼모 등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이 사이가 벌어져도 이 사람들은 치과에 가질 않는다. 10% 이상이 의료보험 없이 살고 있다. 흑인들은 과거 노예제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다. 백인의 사망률은 낮지만 흑인은 높고, 흑인들의 학교 시설은 한국 학교보다 훨씬 못하다. 흑인이나 소수민족 차원에서 보면 미국은 매우 후진국이다.

사회 =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까? 미국에서 수입된 한국 규범은 글로벌 스탠더드 행세를 하고 있다.

김동 = 미국의 세계와 문명의 표준을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민주주의와 부패 방지 시스템 등 배울 것도 많다. 그런데 문명사적으로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게 소유권 만능주의다. 공유가 가능한 지적재산권마저 사유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화해 전세계에 강요한다. 미국 상품을 판매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그게 과연 문명의 진보인가?

사회 = 주지사가 경찰에게 약탈자를 사살하라고 지시하는 것에 황당했다. 개인 재산 보호가 소수자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우선시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은 = 미국은 나와 가족을 위한 보호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전면화된 사회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총기가 필요하다는 게 합리화된다. 그래서 총기 사살도 그리 놀랍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텔레비전을 비교해봐라. 미국 프로그램에는 야한 장면이 별로 없는데 폭력이 난무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굉장히 보수적이면서도 폭력 장면을 보여주는 데는 거리낌이 없다. 미국은 자신들이 벌이는 대내외적 폭력을 테러를 막는 수단으로서 합리화한다. 흑인 등 소수자에게는 폭력을 이용해 공권력이 직접 위해를 가한다. 부시든 아니든, 미국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흑인을 무력화·미개화해선 안 된다. 역설적으로 이 집단이 저항정신을 가지고 정치세력화되지 못했을 때 미국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동성애, 문화 등 다양화된 운동도 중요하지만 계급 중심적 차원에서 빈곤과 싸워나가는 저항이 있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대항세력도 없고, 지식인도 없다

김동 = 1990년대 이후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자기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미국의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시대다. 그래서 이건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든지 터질 수 있고, 터지고 있는 문제다. 미국이 물론 민주적으로 바뀌면 좋겠지. 미국이 민주화되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 물론 미국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대항세력도 없고, 지식인도 조직화돼 있지 않다. 이것이 단순히 ‘반미’에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 맹신에 대한 반성 말이다.

이영 = 뉴올리언스 사태를 맞은 백인으로 이뤄진 주류 사회는 또 다른 형태로 봉합하며 위기를 넘길 것이다. 이번 사태로 흑인들의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 주류가 이런 기회를 통해서 반성했으면 좋겠다.

▣ 사회 류이근 기자
▣ 정리 남종영 기자,하정민 인턴기자
▣ 사진 류우종 기자

(한겨레21 2005-9-20)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

카트리나로 국가 지배 질서가 흐트러지자 억압돼온 인종적 분노 잠시 폭발
뉴올리언스 사태의 핵심은 장기적 폭력과 단기적 폭력의 대립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남부 일대에 거대한 상처를 남겼다.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도 수백여명에 달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자연 재해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얼마 전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가 10만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 규모 면에서 이번 허리케인은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디 인간의 목숨을 숫자로 가늠하고 비교할 수 있는가?

쓰나미 때도 사람들은 협력했건만…

우리가 인간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진정 믿는다면 이번 카트리나는 분명 인류에 닥친 또 하나의 불행임이 틀림없지만, 그리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매일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은 3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제3세계의 어린이로 위생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혹는 기초적인 예방주사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가장 간단한 종류의 항생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 어린이들이다.

카트리나로 인한 결과가 우리에게 이토록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미국이라는 세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재앙이 아프리카에 닥쳤다면? 우리는 “정말 아프리카는 저주받은 대륙인 모양”이라고 한번 한숨을 내쉬고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 세계의 모델, 선진국의 대명사, 글로벌 스탠더드의 표준으로 불리던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발생하자, 놀라운 충격으로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미국의 인상은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수출한 드넓은 잔디 위에 지어진 그림 같은 집에서 집채만 한 차를 굴리며 사는 백인 중산층의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미국적 삶)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한국과 같이 대미 종속적인 나라에서 보수 언론과 매체가 전달해온 미국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과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과학 기술의 첨단을 개척해나가는 미국, 그뿐 아니라 자유와 부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미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카트리나로 인해 보여진 미국의 모습은 자연 재해의 충격에 노출된 아프리카 후진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평소 적대적이거나 또는 냉정하게 지내던 사람이지만 위기의 상황을 맞아 상부상조하는 일반적인 사회의 인지상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일본에서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여러 가지 무리한 근대화의 결과 현대 사회가 가지는 구조적 문제와 일본식 성장의 특수한 문제점들이 노출됐지만, 적어도 지역 사회는 결집력을 발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선진국의 경우라고 치자. 최근 동남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도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가 인류에 가한 충격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소의 갈등과 분쟁을 초월해 서로 돕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연출했다.

흑인들은 빨리 걸으면 안 된다?

그런데 세계의 중심을 자부하는 미국에서 자연재해가 닥치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우리에게,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의 눈에 허리케인이 충격적인 이유는 허리케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에서 마치 이러한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이 조직적인 약탈과 강도, 강간과 폭행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폭풍과 홍수로 무정부 상태에 돌입한 뉴올리언스에서 무장 집단들은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상점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컴퓨터와 스포츠 용품과 총기를 마음껏 가져갔다. 이 세 종류의 상품은 미국 사회와 세계화돼가는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는 정보화 사회의 상징이며, 스포츠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총기는 백인들의 지배를 상징하는 권력의 도구다. 결국 위기와 무정부 상태에서 표출되는 불만은 일상적인 지배 관계에서 누적된 불만의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남부는 미 합중국 역사의 근원과 상처를 동시에 안고 있다. 농업에 기초한 미국의 남부 사회는 북부에서 산업화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미국적 삶이 시작된 곳이다. 이 지역은 미국이 서부로 확대되는데도 여전히 농업과 개척 정신으로 연결됐다는 점에서 미국적 정신의 핵심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남부가 인류에 대한 미국의 빚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제도의 본고장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남부는 21세기까지도 이러한 미국적 정신과 미국의 상처를 모두 끌어안는 지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번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미국 사회를 좀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9·11과 카트리나의 다른 점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인종 차별이 벌어지는 사회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제도를 철폐한 대통령으로 후세에 알려졌다. 물론 노예제도의 철폐는 역사적으로 커다란 진보임이 틀림없지만 그 이후에도 남부의 흑인들은 1960년대까지 백인들과 같은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1960년대 시민 권리를 위한 운동의 결과 흑인들의 상황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흑인은 여전히 미국 사회 내에서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 흑백의 차별은 여전히 극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읽은 글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남부에서 흑인들은 천천히 걷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빨리 걸을 경우 도둑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인종 차별과는 별도로 가장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이기도 하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또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해안 지역에서 탈출했고, 안전한 곳에서 허리케인의 종결을 텔레비전을 통해 기다릴 수 있었다. 물론 집안에 남겨둔 가구가 물에 잠겨 썩어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애완동물의 생사가 궁금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을 것이다.

아직 뉴올리언스의 구체적인 피해 상황과 조사를 접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상상해보건대 탈출하지 못하고 재해를 당한 사람들은 가장 빈곤한 계층이었을 것이다. 허리케인이 닥치기 이틀 전 피난하라는 경고가 내려졌을 때, 가장 빨리 피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가용을 보유한 이들이었다. 내가 2002년 여름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앨라배마, 루이지애나를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로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한 광고다. 그것은 자동차를 담보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광고였는데, 이 빈곤한 남부에서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마지막 자금 동원 수단은 차를 포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폭력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폭력성은 위에서 지적한 인종 차별이나 사회의 불평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종 차별의 근원은 노예제에 있고, 이 제도의 근본적인 작동 양식은 폭력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 불평등 역시 다양하고 교묘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폭력이 불평등을 유지하는 기본 기제가 아닌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국가와 사회의 지배적 폭력이 잠시 철수하자, 억압됐던 인종적 또는 사회적 집단의 폭력이 폭발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 사회에서는 다시 강력한 군대와 경찰이 파견돼 무장세력에 대한 폭력적 탄압이 자행됐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장기적 폭력과 단기적 폭력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 폭력은 장기적 폭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카트리나는 9·11과 함께 미국 사회의 본질을 세계의 무대 위에 등장시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9·11을 살펴보자. 21세기는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시대로 시작하는 듯했지만 새 밀레니엄의 첫 햇살이 비치자마자 제국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9·11 테러 사건으로 이러한 지배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원하는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초강대국의 체면을 살리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직도 찬양할 준비가 돼 있는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의 내부적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9·11이 미국의 대외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면 카트리나는 내부적 환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현재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9·11과 카트리나를 비교하고 있다. 두 사건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9·11 사건은 미국 시민의 평등한 운명을 보여줬다고 한다. 세계무역센터에 일하던 단순 노동직과 최고의 학벌을 가진 부유한 엘리트가 똑같은 죽음의 운명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허리케인은 정반대로 부자와 빈자, 엘리트와 대중의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결국 폭풍을 얻어맞고 홍수에 침몰된 주민들의 대다수는 빈민이자 흑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에서 뛰어내린 사람 중에는 부자도 있었고 빈자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다. 그러나 카트리나가 앗아간 인명, 파괴한 재산의 선별적 부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 성급하게 많은 사람들이 미국 모델의 붕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구조 부대의 파견이 늦었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대응이 소극적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늦장에는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미국 연방과 주 정부의 상호 관계의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조금은 더 구조적인 설명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이 오면 역시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자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고 찬양할 준비가 돼 있다. 또 미국의 단점이 이러저러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자식들을 미국에서 원정 출산하거나 유학시킬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치부이자 콤플렉스인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카트리나의 비극은 우리가 꿈에서 깨어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든다.

▣ 조홍식/ 북경 외국어대 객원교수

(한겨레21 2005-9-20)

일방주의는 무시무시한 부메랑!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만난 부시의 미국
“안보 안보” 하면서도 국민들의 안전을 내팽개친 이 치명적인 역설이여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9·11 테러’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4년째가 되었다. 그러나 9·11 4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미국의 자화상은 우울하기만 하다. ‘제국의 문’이라고 일컬어지던 이라크 침공은 아랍연맹 전 사무총장의 표현처럼 ‘지옥의 문’을 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9·11 테러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인적·물적 피해와 함께 미국식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오고 있다. 이라크 전비를 포함해 국방비를 천문학적으로 늘리는 사이에 미국은 8조달러에 달하는 빚더미에 앉았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라며 제국의 종말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시가 이라크의 절반만 미국 국민들에게 신경썼다면 카트리나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울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9·11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카트리나 참사는 미국의 굴절된 안보관과 왜곡된 자원분배 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9·11 4주년, 미국의 신뢰는 바닥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오늘날 미국은 군사주의와 일방주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는 이라크 침공과 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될 카트리나는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이라크 침공은 부시의 일방주의와 그 실패를 상징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라크 침공을 주창해온 미국 네오콘들에게 부시의 당선과 9·11 테러는 자신들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됐다. 그리고 이라크 점령을 통해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장악하고 중동 전체를 친미 질서로 대체하면, ‘제국의 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알카에다와 후세인 정권 사이의 연계설도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더구나 2003년 5월1일 부시가 승리를 선언한 이후 오히려 전쟁이 본격화되고 전쟁 비용도 폭등하면서 미국 안팎의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당황한 부시 행정부는 미군 사망자가 2천명에 육박하고 연일 수십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며 이라크 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항전을 다짐하는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 여론은 싸늘해지고 있다. 침공 초기 70%를 넘나들던 부시에 대한 지지율은 40% 미만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특히 미국 내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군 철수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가 끊이지 않고 전쟁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빗나간 애국주의 열풍도 한풀 꺾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이라크의 민심이다. 후세인 정권의 주된 지지기반이었던 수니파는 물론이고, 침공 초기 미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시아파들도 미군 주둔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공언해온 것처럼 자유선거를 통해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수립될 경우, 새로운 정부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 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시아파가 주축이 될 이라크 정부가 이란과 연대할 경우 미국의 중동전략은 총체적인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카트리나 참사 역시 미국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준다. 굳이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교토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지구적 노력에서 이탈한 원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이번 참사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참사는 미국의 자원분배 체계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말해준다.

‘군사주의 드림팀’ 꾸려왔다

부시 행정부는 매년 전세계 군사비의 절반에 가까운 5천억달러를 군사비로 쓰고 있다. 이는 연방정부 총예산의 20%를 웃돈다. 2001년 취임 이후 군사비를 무려 41%나 늘린 부시 행정부는 정작 재난 방지 및 사회복지 예산은 엄청 줄였다. 특히 이번 참사의 가장 큰 피해 지역인 뉴올리언스의 콘크리트 제방을 보수하기 위해 주정부가 요청한 1억400만달러를 4천만달러로 깎았다. 참고로 부시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 실험을 한번 하는 데 약 1억달러가 소요된다. 또한 긴급 복구에 필요한 주 방위군의 30%와 장비의 절반이 이라크로 투입돼 신속한 대처와 복구를 어렵게 했다. 카트리나 참사를 인재라고 일컫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개의 키워드를 새겨둘 필요가 있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그것이다. 부시의 화법에서 잘 드러나듯이 오늘날 미국 정부는 세계를 철저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구조로 보면서, “악을 제거하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미국과 미국을 따르는 나라는 선이고, 나머지는 악이다라는 극단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미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부시의 기독교 원리주의는 역사상 가장 잘 준비된 군사주의와 만나게 되었다. 부시의 외교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인물들을 보면 ‘군사주의의 드림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부시 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군수산업체을 두루 거쳤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평가받는 딕 체니, MD 및 우주의 군사적 선점의 주창자이자 이라크 침공과 ‘테러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해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대표적인 네오콘 이론가이자 아버지 부시 때 국방부 차관을 지낸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1기 때 국방부 부장관), 협상보다는 군사력으로 북한과 이라크를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1기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으로 구성된 부시의 외교안보팀은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패권 강화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삼고 있다. 이들은 클린턴 행정부 때를 ‘잃어버린 8년’이라고 규정하고는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자신들이 꿈꿔온 군사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추진해왔다.

또 한 가지 최악의 만남은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의 만남이다. 우월주의와 예외주의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은 것으로, “미국은 우월하기 때문에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에 있어 다른 나라의 모범이자 다른 나라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이상이기 때문에 미국식 체제는 가장 우월하고, 이러한 미국을 보호하고 미국식 체제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규범에 미국이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제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주권의 제한’에 있다는 상식조차 오늘날 미국에서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군사전략엔 과도, 인간안보엔 무관심

부시는 안보를 전면에 내세워 두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미국이 안전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부시 행정부 말고는 없는 듯하다. 기실 9·11 테러도 부시가 말한 위협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MD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던 부시는 북한, 이란 등의 미사일 위협을 강조하다가, 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여객기에 당하고 말았다. MD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테러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또한 9·11 테러나 대량살상무기와도 관계가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 수천명의 미군과 수만명의 이라크인을 희생시켰고, 테러 위협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부의 문제를 외면하다가 카트리나의 피해를 키웠다. 부시의 미국으로 인해 국제 안보도, 미국의 안보도, 미국민의 안보도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유엔이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군사전략만 과도하게 개발하고 있으며 인간안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의 모순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로 나누어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빈곤과 차별, 환경오염과 질병 등 전 지구적 문제 해결에 소홀하면, 그 부메랑에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위협 인식과 대응 방식이다. 9·11 이후 미국은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 사용해왔다. 그러나 군사적 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군사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사이에 비군사적 위협에 취약성을 드러냈고,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소홀했다. 이를 반영하듯 유엔은 미국 하층민의 ‘인간안보’가 제3세계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안보 안보” 하면서도 미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전례 없는 위협에 봉착하고 있는 지독한 역설이 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다가, 한국도 반미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보다 3~4배의 군사비를 쓰고도, “아직도 우리가 약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독자적인 대북 억제력을 확보한다며,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군사비를 쓰고 있다.

노무현 정부 국방비 증액도 위험하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빈곤 문제와 군비 증강의 악순환이다. ‘빈곤층 700만 시대’가 말해주듯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절대빈곤과 소득의 양극화, 그리고 빈곤의 대물림이 결합된 일부 남미 국가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 그러나 ‘서민 대통령’ ‘국민 통합’을 내세우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 들어 빈곤 문제는 날로 악화되는 반면에 국방비는 매년 10% 안팎씩 증액되고 있고, 이러한 증가 추세는 국방개혁을 명분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국방비를 줄인다고 해서 빈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필요한 전력증강 사업을 줄이고 장교를 포함해 병력을 감축한다면 상당액의 국방비 절감은 가능하다. 가령 올해 국방비의 2%만 줄이면, 2006년 예산안 가운데 약 3조원을 사회복지비에 추가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3조원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와 같은 예산 전환과 다른 사회복지 대책이 조화를 이룬다면 빈곤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수백만의 국민들에게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고사에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말이 있다.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호(胡=오랑캐)가 아니라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胡亥)였다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에만 주목하다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군사 패권주의에 빠져 있는 부시 대통령과 ‘돈과 무기’로 자주국방을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 정욱식/ 한반도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21 2005-9-20)

英구호식량 수백만t 美관료주의로 소각될판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재민을 위해 영국이 보낸 구호식량 수백t이 미국 정부의 관료주의 장벽에 막혀 아무 쓸모없이 소각될 처지에 있다고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미러 인터넷판이 19일 보도했다.

영국이 보낸 구호식량은 이라크 주둔 영국군이 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군용식량이다. 하지만 미 식품의약국(FDA)은 광우병을 우려해 식용으로 먹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구호식량도 미국의 식품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식용 부적합' 판단을 받았기 때문에 억류 상태에 있고, 이스라엘이 보낸 수천 갤런의 배 주스도 `식용 부적합' 판단으로 폐기처분될 신세라고 이 신문은 말했다.

영국 국민이 수백만달러의 비용을 지불한 구호식량은 FDA의 리콜 조치로 아칸소주 리틀록의 거대한 창고에서 그냥 썩고 있으며, FDA 소각시설에서 불태워질 것이라고 미러는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영국의 구호활동가는 "만일 그들이 광우병을 이유로 들먹인다면 그것은 우습게도 케케묵은 이야기"라며 "과거 영국에 광우병 위험이 있었던 것보다 현재 미국에 광우병 위험이 더 있으며 최근 수년동안 영국의 육류는 안전했다"고 미국의 조치를 성토했다.

그는 FDA가 구호식량의 내용물로 육류가 들어 있으며 이것이 영국산 육류이기 때문에 파기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 구호식량은 영국군이 먹고 있는 완벽하게 훌륭한 나토 승인 군용식"이라며 "이재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역겨운 몰지각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영국 국방부는 18일 40만개의 군용식량 팩이 미국으로 우송됐다면서 "미 농무부가 육류 수출입과 관련된 규정에 따라 영국이 보낸 구호식량을 압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으며 지난 16일 마지막 회의에서 구호식량 배급과 관련해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미국인들은 무슨 문제가 더 있다고 확실히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고 구호식량을 도로 가져가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영국의 한 구호활동가는 "미국 남부의 굶주리는 이재민들은 FDA의 미친 관료주의 때문에 구호식량이 한 줌 연기로 변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며 "이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하고 있는 혼란스런 난장판 때문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5-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