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군 “이번엔 세계챔피언이 꿈”

대광고, 종교자유 1인시위, 삭발, 퇴학, 서울대 법대 입학, 국토대장정…. 이쯤 되면 ‘아하’ 누군지 대번 알아챈다. 강의석(19).

그는 지난해 우리 사회에 ‘학내 종교자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시끌벅적하게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리곤 한달 만에 돌연 휴학계를 내고 잠적했다. ‘유명인사’가 남긴 자리는 무성한 소문이 자라는 법. 실연을 당했다느니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 했다느니 온갖 루머가 나돌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그가 복싱 글러브를 끼고 나타났다. 지난 13일 한국권투위원회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복서의 길을 선언했다. “3년 후 73㎏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이 되고 말 거예요.”

챔피언의 꿈은 고3을 맞이하는 2003년 2월에 잉태됐다. 복싱은 가슴속에 들끓는 ‘정직한 분노’를 표출하기에 적절한 스포츠. 집 근처 체육관을 포스트로 삼았지만 수험생에겐 아무래도 무리였다.

대학 입학 후 학교생활, 종교자유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힘에 부쳤다. 5시간만 자고, 하루 3권씩 책을 읽고, 청량리에서 서울대까지 자전거로 통학하던 숨가쁜 일상에 쉼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그는 판단했다. 한달 만에 단호하게 탈출했다. 그리곤 숨겨놓았던 복서의 꿈을 다시 꺼냈다. 6개월 만에 프로 자격증을 따내고 오는 연말엔 신인왕전에 나간다.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벌어놓은 파이트 머니로 1년간 세계 여행을 할 거다. 스페인어, 아프리카어를 배우고 있는 것도 그날을 위해서다.

강씨는 복싱으로 몸을 만들고 사유로 정신을 무장했다. 휴학은 지친 몸을 충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종교자유 캠페인에 전념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운 사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쉬는 동안 강씨는 사고하는 시간을 만끽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상적인 법은 존재하나. 문인 톨스토이가 됐다가 법학자 엘리네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곤 답을 찾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너의 길을 가라’(단테의 신곡에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서막을 장식하는 이 글귀는 앞으로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삶의 방향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자 여유가 찾아왔다. 대학생활을 즐기면서도 종교자유 캠페인, 취미생활 등이 동시에 가능할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1년 만에 학내 종교자유를 위한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복학도 했다. 지난달 28일에는 ‘미션스쿨 종교자유 카페’ 회원들과 함께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동시접속해 ‘종교자유’를 인기 검색순위에 올려놓으며 자신의 컴백을 알렸다. 얼마 전엔 교복을 다시 꺼내 입고 카페 회원들과 함께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강의석은 고3이던 지난해 메시아니즘이 발동, 학생들 권익향상을 목표로 학생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 학생회 간부 자격이 없고, 음악시험을 찬송가로 불러야 하는 학칙의 부당함을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다 깨달은 바로 다음날 1인시위에 들어갔다.

강씨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남다르다. 과거 집창촌인 ‘청량리’ 인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쁜 누나’들이 왜 TV에 안 나가고 저기에 있을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까?’ 천성이 곧은 사람은 주변 환경에 잘 휩쓸리지 않는다.

강씨는 비도덕적 사회의 틀을 깨기 위해 정치가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면서 “우선 ‘법(法)’을 제대로 쓰는 법부터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될 땐 과감하게 그만둘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인 ‘서울대 법대’. 이도 그의 길이 아니라면 미련없이 버리겠다고 했다. 강의석. 참 특별한 구석이 많은 청년이었다.

(경향신문 / 심희정· 서성일 기자 2005-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