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한반도 태풍 “커지고 세졌다”

2000년 이후 슈퍼급 태풍 급증… 해수면 온도 상승이 주범 ‘21세기 재앙의 핵’ 되나

21세기 들어 지구촌이 기상 이변으로 몸살중이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발생한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25만명이 사망해 충격을 줬다. 최근에는 재난에 잘 대처한다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허리케인이 강타하면서 공식집계는 안됐지만 무려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난은 기상이변보다는 도시 자체의 문제점이 더 크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역시 허리케인이다. 이쯤에서 과연 한반도는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이 잘 돼 있는지 점검이 필요한 때다. 특히 태풍의 피해가 2000년 이후 커지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태풍안전지대일까. 그리고 한반도에 슈퍼급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이는 계속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에 대한 재난 대비 시스템은 어느 수준일까. 이를 해부해본다. 〈편집자〉

한반도를 지나가는 태풍이 강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태풍으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상학자들의 경고도 줄을 잇는다.

한반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태풍은 보통 1년에 20~30여 개. 이중 초속 67m 속도의 슈퍼급 태풍(Super Typhoon)의 비율은 1970년대 말까지 전체 발생 건수의 10% 내외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슈퍼급 태풍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91년에는 절반을 넘어서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01년과 2004년에 슈퍼급 태풍이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기상청 이찬구 태풍예보담당관은 “그동안의 태풍 속도 데이터를 보면 태풍의 강도가 세지고 있음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 수석연구원도 “2003년 9월 한반도 남부지역을 강타한 태풍 매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바람 속도, 특히 최대순간풍속이 갈수록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미의 최대순간풍속(하루 중 바람이 순간적으로 가장 세게 불었던 때의 풍속)은 초속 60m로 기상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매미로 인해 부산 항만의 크레인이 쓰러질 정도였다.

스치기만 해도 ‘조’단위 피해

정 수석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76개 기상대·관측소의 최대순간풍속 최고치의 연도별 분포를 보면 99년 이후 비율이 전체의 63%(48개 지점)를 차지하고 있다. 최대순간풍속·최대풍속 톱5 분석에서도 최대순간풍속의 경우 1~4위가 모두 2000년 이후에 발생했으며, 최대풍속(하루 중 임의의 10분간 평균으로 가장 세게 불었던 풍속)을 측정한 1위, 2위, 4위가 2000년 이후 발생했다. 그는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태풍의 강도가 2000년 이후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상청 산하 기상연구소의 김백조 기상연구관도 “북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세기가 점점 강해지는 추세”라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도 역시 세지고 있다”고 밝혔다. 근거는 태풍의 중심기압이다. 중심기압이 낮으면 낮을수록 태풍의 강도가 세다는 것인데, 1980년대 이후 점차 중심기압이 낮아지고 있다. 예컨대 1980년대에는 평균 중심기압이 990헥토파스칼(hPa) 정도였으나 1990년대에는 980hPa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000년 들어서는 970hPa 수준까지 내려왔다. 이번에 일본을 강타한 태풍 나비도 한반도를 스쳐 지나갈 때 970hPa 정도였다. 기상청이 2001년에 펴낸 ‘태풍’이란 홍보책자에 보면 1987년 셀마가 약 50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는 약간 호들갑스런(?) 설명이 있다. 하지만 이 책자가 나온 이후인 태풍 루사(2002년)·매미(2003년)의 피해액 5조 원·4조7810억 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 불과하다. 비록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루사·매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인 셈이다. 최근 태풍의 강도가 세지면서 피해액도 커졌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 주변 바다가 제일 뜨겁다

이처럼 태풍의 강도가 세지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장 큰 이유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가 주범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태풍의 강도가 세지는 것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해수면도 따라서 상승하고 있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발도 많아져 태풍의 강도가 세지고 발생횟수도 많아지는 것이다. 서울대 전종갑 교수(지구환경과학)는 “지구온난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난 100년간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섭씨 0.6도 상승했다”면서 “태풍의 발생지역의 해수면 온도도 함께 올라가 태풍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반도 주변 해수면의 온도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낮은 지역까지 북상하면 세력이 약해진다. 수증기, 즉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간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가 섭씨 1.5도 상승했는데, 이는 지구 해수면 온도 상승률의 6배나 된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일본을 거쳐 북상하는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날 때는 크게 약화됐으나 최근에는 그다지 약해지지 않고 있는 추세다. 해수면 온도의 상승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받아서다. 전 교수는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옛날처럼 약해지지 않고, 태풍의 강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에 태풍의 공포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상이변으로 태풍이 21세기 재앙의 한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출생지’만 다른 한 형제

태풍은 적도 부근이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으면서 생기는 열적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유입,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품고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현상이다. 폭풍의 단계를 넘어서 태풍이 되려면 바람의 속도가 초속 33m 이상이 돼야 한다. 세계기상기구(WMA)는 초속 17~25m를 열대폭풍, 25~33m를 강한 열대폭풍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17m 이상이면 태풍이라고 부른다.

태풍(typhoon)은 북태평양 남서부에서 발생해 아시아 동부로 이동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허리케인(hurricane)은 북태평양 동부, 멕시코 앞바다, 북대서양 서부, 서인도제도 부근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1991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퍼펙트 스톰’(2000년)에서 참치잡이 어선이 맞닥뜨린 열대성 저기압이 바로 허리케인이다. 인도양과 호주 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이라 부른다. 호주 부근에서 발생하는 사이클론을 지역 주민은 윌리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7~10월에 주로 발생한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연간 80개 정도이다. 발생빈도가 가장 높은 것은 태풍이다.

 


‘태풍과 지진’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승자는?’ 이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만한 의문이다. 그렇다면 태풍과 지진의 파괴력은 어느 것이 더 셀까? 앞선 의문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를 계량적으로 살펴보자. 1995년 일본 고베를 급습한 지진은 규모 7.2였다. 이 지진은 1945년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3000여개의 위력을 나타냈다.

2003년 한반도 남부를 초토화시킨 매미는 슈퍼 태풍급으로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1만 개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즉 단순하게 위력만으로 놓고 보면 고베 지진보다 태풍 매미가 위력이 더 크다. 만약 태풍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 곳에 집중시킨다면 대륙 하나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매미는 한반도 상륙 당시 중심기압이 950hPa로 최고조일 때보다는 위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에너지 규모로 보면 고베 지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실제 피해는 어떻게 나왔을까. 고베 지진은 사망자 6310명, 피해액은 산출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매미는 한국에서만 119명이 사망했다. 피해액은 5조 원 가량이다. 다른 주변국가의 피해 규모를 합하더라도 고베 지진에 훨씬 못미친다. 지진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오는 데다 에너지가 태풍보다 더 집중되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큰 것이다. 즉, 태풍은 대비만 잘한다면 예고없이 찾아오는 지진보다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뉴스메이커 / 조완제 기자 2005-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