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신돈', 백제 '서동요'… 역사드라마 무대 넓어진다

한국 사극의 공간이 날로 넓어지고 있다.

KBS가 통일신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해신’을 선보인 데 이어 MBC는 ‘제5공화국’ 후속으로 24일 첫 방영되는 ‘신돈’(연출 김진민 극본 정하연)을 통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고려시대 사극에 도전한다. 또 SBS는 백제의 찬연했던 과학기술 문명과 삼국의 쟁투를 그린 이병훈 PD의 ‘서동요’를 방송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MBC는 2006년 초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통일과정을 그린 ‘삼한지’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는 KBS가 1992년 ‘삼국기’를 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삼국 통일 과정을 그리게 되는 사극. ‘욘사마’ 배용준이 주인공 역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는 김종학프로덕션의 ‘태왕사신기’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리게 된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서 벗어난 사극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더 이상 조선에서 신선한 소재를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돈’ 제작을 맡은 MBC 정운현 책임 프로듀서는 “기존의 사극들이 거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해왔기 때문에 했던 이야기를 재탕하거나 궁중 암투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고려와 삼국 시대로 공간의 확장을 꾀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시대가 강요하는 상상력의 한계도 사극 제작진들의 눈을 고려와 삼국시대로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유교 이데올로기를 유일한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왕조의 경직성과, 명ㆍ청과 왜를 제외한 주변 국가와는 변변한 교류조차 없었던 폐쇄성 등이 사극의 진화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청률 30%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던 KBS 2TV ‘해신’의 경우 여권이 남성 못지않던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장보고(최수종)를 견제하는 여걸 자미부인(채시라)의 경쟁 관계를 보여줬다. 또 멀리 서역까지 교역 대상으로 삼았던 청해진의 상거래를 통해 세계화 시대에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실을 투영할 수 있었다.

원나라에 대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을 글린 ‘신돈’과 오늘날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박사(장인)들이 존중 받던 백제의 모습을 그린 ‘서동요’도 기존 사극의 굴레에서 보다 자유롭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점도 사극의 공간 확장을 부추기고 있다. 용인 세트장 건설에만 110억원의 제작비가 든 ‘신돈’이나 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될 예정인 ‘태왕사신기’에서 보듯 막대한 물량 투자는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화려한 고ㆍ중세 시대의 사극 제작을 가능케 하고 있다

(한국일보 / 김대성 기자 2005-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