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지원금 반강제 할당 물의

정부가 미국 태풍 피해 복구 지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지원금을 기업들과 사전 충분한 협의없이 사실상 반강제로 할당한 것으로 확인돼 물의를 빚고 있다.

정부와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4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카트리나 피해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민관 합동으로 3000만달러(약 300억원) 규모의 대미 지원안을 마련하고, 하루 뒤인 5일 경제5단체 상근 부회장과 금융단체 관계자를 불러 전체 지원금 중 2000만달러를 경제계가 부담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5일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12일 “그날 회의에서 정부 측은 예비비 500만달러와 종교계를 비롯한 국민 성금 500만달러 이외의 나머지 부분(2000만달러)을 재계에서 알아서 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면서 “4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전체 지원 규모를 3000만달러로 확정한 부분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감사 인사까지 받은 만큼 액수를 (하향) 조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 인사는 “협의를 위한 회의였지만 사실상 강제 할당과 다름없었다”면서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총리를 모셔놓고 하는 회의인데 다른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정부가 전날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규모를 정해놓고 경제5단체 부회장들을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8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서는 미국이 우리 기업들의 주요 수출 대상 국가이고 국제 사회의 위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다소 많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수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으나 국내 경기 등을 감안할 때 200억원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인사는 “미국 수출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아니라면 인도적 차원의 대미 지원 여부는 민간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른 길”이라며 “총리가 나서 지원금을 3000만달러로 올려놓고 경제계에 N분의 1로 할당한 셈인데 대미관계 개선 효과가 있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자체 조율을 통해 전경련 1100만달러, 금융계 500만달러, 무역협회 200만달러, 대한상의 200만달러로 분담액을 정하고 각자 소속 회원사를 대상으로 모금 작업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정부의 해외 재난지원금은 저개발국 원조기금인 ODA(정부개발원조) 기금을 이용했으나 선진국인 미국에는 이 돈을 사용할 수 없어 이번에는 기업체에 지원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기업체 부담금액은 경제계와 협의를 거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미 지원금 3000만달러는 석유 부국인 쿠웨이트(4억달러)와 아랍에미리트연합(1억달러), 카타르(〃)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다.

(세계일보 / 민병오·조남규 기자 2005-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