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중국산 뒤엔 싸구려 찾는 ‘한국’

지난 8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청양시장. ‘소작방’(샤오쭤팡)이라 불리는 가내 소규모 식품공장에서 만들어낸 각종 절인 음식들이 즐비하다. 녹슨 탁자와 바닥에 흐르는 질펀한 오물들은 이곳에서 가공되는 식품들의 위생관리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런 공장들은 물론 수출허가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으로 보내는 식품에는 이런 공장에서 만든 것들도 섞여 든다는 게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식품은 얼마든지 가격을 맞출 수 있는 상품이다!” 칭다오에서 만난 한 한국인 식품 유통업자 ㄱ아무개(42)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같은 조기로 한 접에 40만원짜리도, 5만원짜리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잔치 단골음식인 잡채의 재료로 쓰이는 당면을 예로 들어보자.

“정품이라면 100%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톤당 700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그러나 500달러짜리를 만들어 달라면 방법이 없다. 옥수수 가루를 섞는 수밖에. 고구마 전분과 옥수수 가루는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어렵다.”

수산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기는 상등품이 톤당 2000달러쯤 하지만 1600달러에도 맞출 수 있다. 물을 먹이면 된다.” ‘물을 먹인다’는 말은 냉동 수산품의 표면 건조를 막기 위해 얼음피막을 입히는 ‘그레이징’의 비율을 높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8% 정도의 그레이징이 허용되지만, ‘가격’을 맞추기 위해 업자들은 15%까지도 높인다고 한다. 비싼 달러 들여서 ‘물’을 수입하는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상품은 일본, 중·하품은 한국 = 또다른 한국 식품 유통업자 ㄴ아무개(37)씨는 “한국의 중국산 농수산품 시장은 저가 시장만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산=저급품’ 인식은 사실은 한국의 식품유통 체계가 빚어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산이라도 1급은 품질관리도 잘 되고 우수하다. 내가 다루는 미역, 표고버섯, 멸치, 조기 등을 예로 들면 1급은 정말 품질이 좋다. 그러나 중국 업자들은 1급은 당연히 일본으로 보내고, 한국으로 보낼 것은 중·저급품 가운데서 챙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식품 제조업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업자들은 먼저 품질 기준을 제시한 뒤 가격 흥정을 한다. 한국 업자들은 먼저 가격을 제시하고 거기에 물건을 ‘맞춰 달라’고 한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칭다오의 한 유통업자는 중국산 김치의 한국 수입 실상을 이렇게 전했다. “일본 유통업자들은 공장을 방문해 김치의 위생상태 등을 점검하지만, 한국 업자들은 일본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하며 여기에 김치를 ‘맞춰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산둥성에 당국 허가를 받은 김치공장은 30여 곳이지만, 가내공장인 ‘소작방’은 180여 곳이다. 소작방 김치가 허가받은 김치공장의 제품으로 둔갑해 컨테이너에 실리는 것이다.” 그는 직접 김치를 담그지 않는 한국 식당에 납품되는 김치는 거의 100%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산으로 둔갑도 = 한국과 일본의 거래관행은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일본은 중국산 농수산물의 최대 고객이다.

올 상반기 중국이 수출한 130억달러어치 농산물 가운데 일본으로 간 것은 약 30%인 39억달러어치다. 일본은 이토추 등 식품 관련 대기업들이 대부분 중국에 진출해 있다.

유통업자들은 특히 일본기업들은 예외 없이 중국 현지에 기술자를 파견해 식품공장의 품질관리 상태와 제품의 상태를 점검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부두까지 나가 자신이 점검한 상품이 제대로 컨테이너에 실리는지 확인한 뒤 봉인작업까지 마쳐 일본으로 보낸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이렇게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중국산을 다루지 않는다.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일도 벌어진다. 중국산 황도는 현재 반가공 상태로 한국에 들어간다. 이걸 녹여서 통조림을 만들면 ‘한국산’이 된다. 현지에서 만들면 더 신선하고 품질관리가 쉽지만 ‘중국산’을 수입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당국의 검사 강화 시급 = 중국 당국도 불량식품 문제가 잇따르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산둥성은 올해 초부터 낙지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업자들이 낙지에 너무 많은 물을 먹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값’에 물건을 맞춰달라는 요구를 계속하는 한 저급 중국산은 근절하기 어렵다고 현지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중국산 농수산품에 문제가 있는 제품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왜곡된 한국의 소비시장에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칭다오에서 식품업에 종사하는 한 동포는 “정상적으로 품질관리를 거친 중국산 농수산품을 수입해도 한국산보다는 싸게 팔 수 있다”며 “영세한 유통업자들의 난립과 과잉 경쟁으로 한국이 중국의 저질상품 소비시장으로 떨어진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선 중국산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엄격한 검사만이 유통업자들의 저질식품 수입 경쟁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특파원 200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