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제' 모르는 특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특별위원회’ 제3차 회의가 열린 지난 8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실은 썰렁했다. 의원석은 거의 비어있었고 30명의 특위 위원 중 참석자는 잠깐 얼굴을 비친 사람까지 포함해도 열 명을 넘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전망과 대책에 관한 공청회’로 열렸지만, 관련 학자와 공무원 등 5명의 발표가 끝나자 위원들은 자리를 빠져나갔다. 끝까지 참석한 것은 위원장인 정의화(한나라당) 의원과 신학용·김태년(열린우리당) 의원 세 명뿐이었다.

‘고구려 특위’는 지난해 8월 중국의 역사왜곡이 물의를 빚을 당시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 8개월을 허송세월하다 지난 4월에야 가까스로 위원장을 선출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공식화된 지 3년 반이 지나 열린 이번 공청회는 지금까지 언론과 학계에서 수없이 지적됐던 내용들을 위원들에게 재교육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교육부가 준비한 ‘대책’에는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엉뚱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위원들의 질의도 초점을 잃기 일쑤였다. 이제 막 발굴을 마친 발해 온돌 유적에 대해 “왜 이런 걸 학문적으로 정리하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문화재의 조사와 보존을 맡고 있는 문화재연구소장에게 “전설도 역사로 만드는 중국처럼 우리도 역사 기념물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위원도 있었다.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가 불거지면 국회는 그때마다 ‘특위’를 만든다. 하지만 출범할 때의 요란한 모습에 비해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를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 역시 발의된 지 1년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태다. 중국 당국은 이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조선일보 / 유석재·문화부 기자 200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