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국發 석유전쟁 총성 울렸다

세계가 고유가 시대에 돌입했다. 석유 자원의 가치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 “역사는 잉크 대신 석유로 쓰여진다”는 말은 세계 석유시장의 추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석유시장 확보를 위한 쟁투는 거의 전쟁 수준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차이가 없다. 유가는 왜 오르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석유 몇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세계의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쟁탈전, 우리나라의 해외유전개발 그리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차드에서 벌어지는 유전확보전 등을 통해 세계 석유시장의 흐름을 파악해본다. 〈편집자〉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9월 1일 배럴당 59.08달러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말 예상한 35~40달러를 훨씬 웃도는 가격이다. 20개월째 유가 급상승은 계속되고 있다.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가격은 멕시코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8월 3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WTI 가격은 전날에 비해 배럴당 4달러 이상 폭등한 70.90달러에서 결정됐다.

왜 이런 고유가현상이 지속되는 것일까. 석유와 관련된 정치적 불안은 이라크 전쟁 이후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다. 이라크 주둔 미군 공격, 베네수엘라 및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 알카에다의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공격 시사…. 이라크 및 사우디 등 중동정세 악화,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등 추가적인 유가 인상 요인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전에는 충격적인 악재도 결코 장기적인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현상들보다 더 중요한 계기나 조건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우선 중국과 미국의 고도성장이 그 이유로 꼽힌다. 미국·중국의 석유 수요에 산유국의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분석이다. 조용호 석유공사 석유정보처장은 “미국·중국의 경기가 좋아서 올해 세계 석유소비량이 지난해에 비해 2%나 늘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OPEC(석유수출국기구) 잉여생산량 150만 배럴을 상회하는 규모다. 2005년 상반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9.5%, 미국은 3.4%다. 특히 미국은 전 세계 석유의 25%를 소비하는 나라다. 조용호 처장은 “미국 정유공장의 정제 가동률은 95%선”이라면서 “이는 정유공장의 정제시설을 검점해야 할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로 미국 경기가 좋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OPEC이 원유생산시설을 확충하지 못한 것도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잉여생산량 부족으로 ‘유가밴드제(oil price band mechanism)’가 작동되지 않은 게 단적인 예. OPEC은 배럴당 22~28달러라는 밴드를 설정해놓고 유가가 22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생산량을 줄여왔고, 28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유량을 늘려왔다. 이게 바로 ‘유가밴드제’다.

반면 250만 배럴을 유지해오던 OPEC의 잉여생산량은 최근 150만 배럴 수준으로 줄었다. 구조적인 요인이 수급 불안정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얘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보경 연구위원은 “수요급증이 예상되어 온 중국보다는 미국의 경기활황이 더 중요한 원인”이라면서 “고유가에 내성을 갖춘 미국의 경기가 둔화조짐을 보이지 않고 계속 성장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만 놓고 볼 때 석유가는 최고점에 온 것 같다”면서 “미국 경제가 고유가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부연설명이다.

하지만 많은 석유 전문가들은 상당기간 고유가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해외 전문기관들은 배럴당 80달러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석유담당 이코노미스트인 필립 벌러거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대가가 바로 유가 오름세”라면서 “유가가 앞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예측했다.

이런 고유가 시대 속에서 각국의 석유 확보는 절대절명의 국가과업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석유메이저가 지배해온 석유시장 질서가 위협받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만큼 석유시장의 가변성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석유 확보에 혈안이 된 중국이 있다.

미국·중국 석유수요 세계 산유량 초과

미국과 중국 간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작지만 의미있는 사건이 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올해 미국 9위의 정유회사 유노컬 인수를 추진한 것이다. 중국은 이 과정에서 경합을 벌인 미국 쉐브론사보다 15억 달러를 더 지불(총액 182억 달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 재앙론’을 들고 나온 미국 정·재계의 방해를 헤쳐나가지 못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인준 과정에서 미국 의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인준 거부 의견을 개진했다. 백악관도 “경제적 안보를 판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의회 입장에 동의했다. 무디스와 스탠더드&푸어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도 일제히 나섰다. 이들 회사는 “유노컬을 인수하면 CNOOC는 재정적인 곤란에 처할 것”이라며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시사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이 이 회사의 인수계약을 포기한 이후 유노컬이 멕시코만 심해에 묻힌 150억 배럴에 대한 유노컬의 유정시추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자 미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150억 배럴은 중국의 6년치 석유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다. 비록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중국의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은 대단한 충격에 빠졌다. 미국 언론들이 “중국의 미국 상륙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석유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이같은 공세는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중국석유화공(SINOPEC), CNOOC 등 국영기업들을 앞세워 해외석유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CNOOC의 미국 유노컬 인수추진에 이어 SINOPEC은 카자흐스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캐나다 석유회사 페트로카자흐스탄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25억 달러(약 2조7000억 원). 이로써 중국은 카자흐스탄에 거점을 구축, 자원이 풍부한 카리브해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에너지부에 따르면 카스피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이른바 ‘카스피안 4국’에는 자그마치 27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전 세계 매장량의 5분의 1이나 된다. 그 길목에 아프가니스탄이 있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것도 자원수송통로 확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미국 역시 카리브해 유전개발을 위해 수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정치학)는 “미국의 카리브 연안국 원조는 중앙·서아시아의 포위전략”이라면서 “사실상 원조 대가로 군사기지를 만들어 석유와 가스를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원유기지 역할을 했던 캐나다와 남미에도 중국의 손이 미치고 있다. 원유 매장량이 24억 배럴에 불과한 남미의 소국 에콰도르에서 국영석유기업 현대화사업 및 석유업체 지분인수를 했다. 이밖에도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앙골라·적도기니·수단 등에서도 유전기지 확보를 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 지역에서 50여 개의 유전을 사들였다.

중국은 또 지난 7월 국내 석유회사 30여 개가 모여 자산규모 50억~100억 위안(약 6000억 원~1조2000억 원)의 최대 민영석유회사 ‘장롄(長聯)’을 출범시켰다. 이 회사는 앞으로 민영 석유사들의 해외 유전 탐사와 국내 공급 보충을 지원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석유 확보를 위한 시장교란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같은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중국의 노력은 고도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중국이 올 상반기 석유소비 증가율은 10%. 2004년 중국 원유수입량은 1억2000만t으로 2003년보다 34.8% 증가했다. 수입 원유가 국내 소비의 40%를 차지한다. OECD국가의 소비증가율(평균 1%)과 비교하면 중국의 석유수요가 얼마나 크게 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국은 ‘에너지의 블랙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IMF는 “2030년에 중국의 석유소비량은 미국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가 배럴당 100달러 넘을 가능성도

중국을 자극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 석유메이저들이 거의 모든 중국 내 유전지역의 소유권을 사들였다. 1990년대 개방화 바람을 타고 석유매장지역을 석유메이저들이 차지한 것이다. 물론 중국은 이들 지역의 유전개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석유수입 의존도가 50%가 넘는 미국은 이런 중국의 태도에 긴장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공략 중인 국가에 핵개발 가능성 및 무장단체 지원, 인권 유린 등을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아온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란·수단·베네수엘라·시리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박보경 연구위원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동산 원유의존도를 낮추려는 게 중국의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석유재벌들은 그동안 고유가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알래스카 유전개발, 중동의 투자확대 등을 요구해왔다”고 전제한 뒤 “중국의 공세로 이들의 태도가 달라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맞대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총성없는 석유확보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원 이경태 원장도 “원유확보 문제가 곧 국가전략이 되는 시대가 됐다”고 전제하면서 “미국은 중동지역안보와 자국의 에너지 안보 위협에 적극적 방어에 나설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외국어대학교 장건 교수(경제학)도 “미국이 저유가정책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지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중국의 고도성장이 시작되면서 저유가 정책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됨에 따라 급기야 석유전쟁을 위한 선전포고 단계에 이르게 된 것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인도와 핵협정을 통해 평화적 핵사용에 대해 인정한 것도 그러한 대응전략의 일환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보유국 인도에 대해 민간용 핵에너지 개발을 허용키로 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시하며 핵개발을 해온 인도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제재도 풀어주고, 민간 핵에너지 개발권까지 제공한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세웠던 NPT 합의사항을 파기한 것이다. 장건 교수는 “중국 견제용”이라고 규정하고 “인도와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만을 상대로 자원확보 경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서해와 중국 동중국해도 뇌관지역이다. 우리와 중국의 양국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뇌관이 서해 앞바다에 숨어 있다. 서해 대륙붕 개발 문제가 그것이다. 한국이 지난해 7월 군산에서 200여㎞ 떨어진 ‘서해 2광구’ 일대에서 해상물리탐사 활동을 벌인 데 항의, 중국 군함이 출동했다. 대륙붕 개발 저지를 위한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다. 중국이 서해에 석유매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조호용 처장은 “양국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대륙붕 공동개발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남미 등에도 중국의 손 미쳐

중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동중국해의 영해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석유자원 때문.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지역 부근에 77억 배럴 규모에 이르는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 잠수함으로 보이는 선박이 오키나와현 사키시마섬 주변 영해에 출현한 것도 일본의 석유탐사 때문이었다.

국제 원유시장에 중국발 오일쇼크만 있는 게 아니다. 인도도 중국 못지않게 석유자원 확보를 위한 각축전에 참여할 태세다. 인도 역시 석유 먹는 거대한 코끼리다. 인도와 함께 이란 경계령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박보경 연구위원은 “이슬람 강경 보수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란의 석유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취임 일성으로 “석유산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국내 기업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석유주권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매장량의 10%를 차지하고 있고 있다. 원유 생산은 세계 4위를 자랑하고 있다.

전 세계 석유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원활용을 위해 동시베리아 송유관 매설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바이칼호 서부에서 시작해 타이세트-스코브로디노-페레보즈나를 잇는 4200㎞ 길이의 동시베리아 송유관은 이미 매설되어 있는 상태다. 중국은 동시베리아 송유관을 중국의 최대 석유산업도시인 다칭(大慶)으로 연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밀월’도 결국 이 문제와 관련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다칭시로 방향선회를 간곡히 부탁했다. 조용호 처장은 “동시베리아에 30개 이상의 유전개발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이 나서자 일본이 송유관을 페레보즈나에서 일본 나홋카로 바로 잇는 대가로 공사비(110억~200억 달러 추정) 가운데 10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직 송유관 노선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

세계 석유시장에서 유가 상승이 석유 확보를 부채질하고 이는 다시 유가를 상승시키는 양상을 빚고 있다. 당연히 산유국은 자국의 이익전략을 우선시하고 있다. 즉 고유가시대에서 에너지 확보가 곧 국가전력 및 안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양보도 타협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3차 오일쇼크’가 올 것이는 우려조차 제기되고 있다.

(뉴스메이커 / 김경은 기자 200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