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비스마르크식 아시아정책 버려야”

오히려 미국 위상 축소·각국 민족주의 자극

난항을 겪고 있는 북핵 6자회담과 중국·대만의 마찰,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등으로 아시아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잘못된 아시아 정책이 이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외교협회 연구원 에릭 헤긴보탐과 미해군대학원의 크리스토퍼 투메이는 ‘현대역사(Current History)’ 2005년 9월호에 발표한 글을 통해 “미국은 힘의 외교에 집착하면서 스스로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지역의 갈등을 조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안보중심의 양자간 관계에 치중하면서 발생한 외교적 문제점을 해소하려면 미 국무부의 위상을 강화하여 문화, 경제, 인적 교류 등 비군사적 외교를 촉진하고 역내기구의 창설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19세기식 관점 빨리 버려야 = ‘힘의 균형유지’라는 냉전시대의 틀을 유지해오던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 최근에는 오히려 19세기 독일의 비스마르크식 외교정책을 닮아가고 있다. 즉 다자간 기구는 미국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인식 아래,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양자간 안보협약에 치중하고 있다.

이처럼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할 경우 단기성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자간 기구의 효용을 의심하고 기피하는 태도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힘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은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아시아 안보환경 구축에 있어서 미국의 리더십을 퇴조시킬 것이며, 둘째 민족주의를 야기시킴으로써 역내 갈등을 고조시킬 것이다.

부시 행정부내에는 아시아를 ‘19세기의 유럽과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이 만연해 있다.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군사적 수단에 의한 힘의 정치를 펼치려는 경향이 심화되는 이유다. 하지만 19세기 독일도 이런 정책을 취하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1차대전을 촉발시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포크 형태’의 양자간 안보체제는 9.11이후 더욱 강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2005년2월 체결한 새로운 미일안보협약과 싱가포르 및 인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이 그 좋은 사례다.

◆ 국제기구 등한시도 문제 = 또 이른바 ‘의지의 동맹’이라는 새로운 패턴의 외교관계 역시 국제관계를 기구화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6자회담을 북핵문제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체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수없이 제기되었지만 미국정부는 애써 이를 외면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역시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활동만 있고 공식적인 조직은 없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2004년 말 인도양 쓰나미 이후 미국은 ‘핵심지원국가 그룹’을 결성하여 구조활동에 나섰으나 곧 유엔에 그 기능을 물려주고 빠져 나왔다.

그나마 미국이 주도하던 다자간 국제기구인 WTO와 APEC에서조차 지지를 잃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도 미국이 지나치게 안보문제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 아시아서 미국 퇴조, 중국 부상 = 유연성과 힘을 강조하는 미국의 비스마르크식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북핵문제와 중국-대만문제도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군사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사이에 아시아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파악하지 못하여 스스로 영향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그 힘의 공백에 중국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들어왔다.

또 미국이 지역내 다자구도를 외면하는 사이 아시아는 아세안(ASEAN), ASEAN+3, 아세안지역포럼, 동아시아정상회담 등 다양한 기구를 통해 역내 경제통합뿐만 아니라 안보문제와 회원국 국내정치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군사위주 외교정책은 국가의 명성마저 실추시켜 외국인들이 기피하는 나라가 되었다. 심지어 호주 외무장관 알렉산더 다우너조차 “대만해협의 갈등으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경우 호주가 미국을 지지하는데 반대한다”고 공언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해 군사적 역량이 사용되어야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정치-경제적 역량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이 다자간 협력을 통해 역내 국가의 통합과 단결을 도모하지 않은 결과 국가간 갈등이 증폭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아시아 정치가들은 민족주의 감정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군사 활동이 활발해 질수록 이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길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중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한국, 일본, 대만에서도 같은 현상이 10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그리고 독도와 센가쿠열도 등 도서분쟁은 민족주의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어 전쟁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민족주의 문제 역시 미국의 외교노선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의 국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군사력 의존 일변도 탈피 시급 = 이처럼 군사력에 의존한 외교정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

첫째, 역내 국제기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시아의 발칸반도’라고 불리던 동남아시아가 이처럼 안정을 찾은 것은 ASEAN의 역할 때문이라는 사실을 미국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나 안보협약을 맺더라도 국가별 협약보다는 전체 회원국과의 협약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민주화 촉진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비민주국가의 경우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자유선거를 도와야 하며, 민주국가의 경우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따라서 독도분쟁이나 역사왜곡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를 계속 외면할 경우 일본의 배타적 애국주의를 묵인 혹은 지원한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국무부의 위상을 국방부만큼 올려서 경제개방, 문화교류 등 비군사적 외교활동을 강화해야 하며, 외교예산에 있어서도 15 대 1에 이르는 국방 대 비국방의 예산불균형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

(내일신문 / 김광호 리포터 200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