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사동에 ‘한국’은 없다

매주 4만여명, 1년이면 2백만명의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기 위해 찾는 서울 인사동. 이 ‘전통문화 1번지’에서 전통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골동품은 사라져가고 있고, 기념품 가게엔 중국제품이 넘쳐나고 있다. 하회탈이나 신랑각시인형 등 한국 고유의 문화가 담겨야 할 기념품마저 외국산이지만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손놓고 있다.

◇ 국적 불명의 관광기념품 = 6일 서울 인사동 거리의 한 기념품 좌판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찍힌 효자손·죽비·부채 등 다양한 기념품이 전시돼 있었다. 한글이 적힌 티셔츠, 하회탈 조각, 돌하르방 인형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가 붙어 있다. 원산지 표기가 없는 보자기 주머니, 천가방, 팔찌, 반지, 젓가락 등도 눈에 띄었다.

한 상인은 “국적 표기가 없는 것은 대부분 중국산”이라며 “효자손이나 죽비는 모두 중국제품이고 신랑각시인형, 머그컵, 컬러믹스로 만든 인형처럼 값싼 기념품은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들여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수입된 제품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조각보로 만든 컵받침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값싼 제품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며 “2만5천원짜리 컵받침은 국산이지만, 똑같이 생긴 8,000원짜리 제품은 중국산”이라고 말했다. 동남아풍의 젓가락세트, 나무로 깎은 여인상, 중국풍 달마상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중국산 판쳐 =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기념품가게에서 판매되는 물건의 30~40%가 중국산”이라고 밝혔다.

보존회에 따르면 인사동 상가 중 약 60%가 물건을 자체제작해 판매하는 공방이고, 40%가량이 기념품가게다.

기념품가게들은 대형 도매시장에서 값싼 중국산 기념품을 공급받아 판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느끼는 중국산 제품의 유통률은 이보다 높다.

표구상을 운영하는 최모씨(57)는 “오리지널 중국산은 30% 정도지만, 우리 업체가 중국에서 생산해 들여오는 중국 OEM 제품까지 합치면 90%가 중국산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관광기념품의 난립은 국산보다 압도적으로 싼 가격 때문이다.

최씨는 “중국산 가격은 국산의 3분의 1~4분의 1 수준”이라며 “원자재와 인건비가 훨씬 싸기 때문에 영세상인들도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OEM 방식으로 제품을 들여온다”고 말했다.

부채를 파는 한 상인은 “중국산 부채는 1,000~3,000원, 국산은 7,000~8,000원선”이라며 “관광객들이 2,000~3,000원의 값싼 기념품을 찾기 때문에 중국산을 갖다놓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인사동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캐시는 “값싼 기념품들이 중국산인지 몰랐다”며 “한국적 특성이 있는 기념품을 사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장재창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중국산 기념품의 난립은 인사동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민속촌, 안동하회마을, 남대문시장 할 것 없이 모두 값싼 기념품이 판치고 있다”고 한탄했다. 장회장은 “인사동만의 특색을 살린 관광기념품 개발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경향신문 / 최명애 기자 200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