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토플러, “지금은 혁명경제기”

“지금은 ‘혁명경제(revolutionary economy)’시기다. 작지만 스마트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small countries with smart economies)가 잘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저력은 작은 사이즈에서 찾을 수 있다.

6일 개막된 ‘산업혁신포럼 2005’ 참석차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작지만 스마트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로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를 꼽은 뒤 “산업 성장기에는 클수록 좋다는 가정이 통했지만 혁명경제기에는 혁신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약점으로는 소수 대기업과 대외 수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스마트한 경제구조는 이같은 한국 경제의 약점을 극복하는 길”이라면서 “중소기업 육성과 내수를 강화해 수출과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리스크를 감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혁신가(innovator)를 배출하는 게 우선과제라고 지적했다.

토플러는 “혁명경제기에 부(富)를 창출할 원동력은 교육이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시스템은 근로자들을 생산하기 위한 ‘공장’과 같은 역할에 불과하다”면서 “미래 경제는 공장 근로자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혁신가가 끌어가기 때문에 혁신·창조성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또 지나친 수출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면 젊고 혁신적인 기업인들에게 더 많은 자금과 기회를 제공해 새로운 업종과 서비스 분야를 늘려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전통적인 제조상품 외에 서비스와 지식 수출에 집중할 것도 당부했다.

그는 “한국이 디지털뿐 아니라 바이오테크 쪽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시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 할리우드에서도 한국영화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으며 그 존재감을 점점 느껴가고 있다”며 영화 수출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회견 내내 ‘과잉 복잡성’(surplus of complexity)에 대한 소비자의 반감에 대해서도 주안점을 뒀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서 “내게는 글을 쓰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되는데도 의지와 무관하게 엑셀이나 다른 복잡한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구매해야 한다”면서 “개별 소비자의 필요에 맞는 ‘고객 맞춤형 제품’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복잡한 기술 중 개별 소비자의 필요에 맞는 것을 뽑아내는 게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세계화가 대세’라는 것도 매우 의문스럽고 위험한 가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세계화의 역풍, 즉 디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열린 산업혁신포럼 미래산업전략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미래경제의 4가지 키워드로 ▲스피드 ▲개인맞춤형 생산 ▲과잉 복잡성 ▲경계붕괴를 꼽았다.

(경향신문 / 박경은 기자 2005-9-6)

<인터뷰>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미국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잠재력은 작은 사이즈에서 찾을 수 있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6일 개막된 산업혁신포럼 참석차 방한한 토플러는 5일 오후 신라호텔 영빈관 정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경제와 산업의 주요 자산과 약점'을 묻는 질문에 "유럽 25개국 가운데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가 규모가 큰 프랑스, 독일, 영국보다 훨씬 더 경제적으로 잘 하고 있다"면서 "작은 국가이나 똑똑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들이 향후 잘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국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소강국(小强國)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로 들린다.

간담회장까지 휄체어를 타고 이동한 부인 하이디 토플러 여사와 함께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좌, 우파의 `낡은 잣대'를 내세워 산업혁명기를 거친 지금의 혁명경제기의 각종 문제를 해석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론을 전개하며 한국과 세계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하는 것으로 40분여간의 간담회에 응했다.

그는 최근 자신이 산 자동차에 딸린 계기판이 49개, 매뉴얼 책자가 700쪽 이상이었다는 사례를 들면서 이를 `잉여복잡성' 또는 `초복잡성'으로 개념화한 뒤 "이는 모든 분야의 현상으로 머지않아 소비자들이 이에 저항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지금 한국의 대기업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이 사실을 미디어의 `헤드라인'으로 뽑아도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는 복잡한 기술과 기능 가운데 개별 소비자 `필요'에 맞는 고객 맞춤형 기술과 제품의 등장 필연성을 부각시켰다.

이어 그는 경제와 기업 등 시장 영역과 정부 사이드의 속도차가 향후 경제사회 발전에 딜레마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기업과 경제가 1시간에 100마일씩 움직인다면 정부는 10마일 밖에 움직이지 않기에 괴리가 생기는 것으로 정부는 모든 과정에서 느리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이것이 경제 디맨드(Demand)의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또한 세계화의 역설에 언급, "월 스트리트나 서울이나 미국, 유럽 등의 많은 분들이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이는 굉장히 단순한 가정으로 역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며 디글로벌라이제이션(de-globalization:탈세계화) 개념을 조명했다.

토플러는 그 예로 20세기 초 격하게 일었던 세계화 움직임과 1914년 제1차 세계전쟁 이후의 역방향 움직임을 거론한 뒤 "지금 한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세계경제들이 지속적인 통합에 너무 많은 것을 두고있는데 그것은 좀 위험한 가정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플러는 한국경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진단과 고언도 내놓았다.

그는 과거 자신이 한국의 일본모델 따라잡기 문제점에 대해 조언했으나 한국은 그 길로 걸었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한국은 일본의 산업정책을 많이 쫓아간 것 같고 어떤 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버블 경제라는 부작용을 일본처럼 겪고 있다"면서 소수 대기업에 대한 의존 심화 등을 지적하고 중소기업 육성과 혁신가(家) 지원, 획일성 보다는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교육, 사회공헌 활동 등을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이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깨끗한 물' 생산의 예를 들어 "(전통적인) 제조품 외에 서비스와 지식 수출을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하고 "디지털에 이어 바이오테크도 선구자적 견해를 갖고 굉장히 빠르게 앞서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는 친근감어린 미소를 띤 채 "영화를 더 많이 수출하라(Export more movies)"면서 "지금 할리우드 안방에서도 한국영화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주류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존재감을 느껴가고 있다"고 첨언했다.

한편 토플러는 초복잡성에 대한 소비자 저항 극복을 위해 기업 등이 대응할 방법을 언급해 달라는 질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예로 들어 복잡한 기능이 많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쓰는 기능은 한두가지뿐이라면서 개별 수요 맞춤 필요성을 강조하고, 배석한 부인은 정부가 기업의 속도를 못쫓아간다는 대목에서 남편 토플러에 `뉴올리언즈 태풍 피해사태가 적절한 예'라고 거들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 고형규 기자 200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