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년 전 신석기시대 배

경남 창녕 비봉리 고분에서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배(木舟)가 출토됐다. 발굴팀은 고고학적 퇴적층위로 미뤄 이 배의 제작 연대를 8천여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출토된 선사시대의 배로는 최고(最古)연대다. 원 안에 가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불에 그을린 흔적이 보인다.

(연합뉴스 2005-9-5)

선사시대 상식 전복시킨 신석기시대 배

경남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초창기 나무배는 선사시대에 대한 기존 상식을 일거에 전복시켰다.

선사시대라고 하면, 더구나 주된 도구라고는 금속기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고 나무나 석기를 주된 도구로 사용한 신석기시대라고 하면, 막연히 우리는 그 시대를 원시적이며 미개적이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성과는 이런 우리 선사시대에 대한 상식이 그야말로 피상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고학이 말해주는 선사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을 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극명한 보기가 국립김해박물관이 지난해에 이어 계속 발굴 중인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 출토 통나무 배이다.

선사시대에 대한 가장 큰 궁금증은 도대체 그들은 어떤 식으로 돌이나 나무 등을 가공해 사냥이나 토목공사 등지에 사용했느냐 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비봉리 출토 신석기시대 통나무 배는 현재 남아 있는 실물 기준으로 길이 3m10㎝, 최대폭 60㎝에 두께 2.0-5.0㎝, 깊이 약 20㎝가 된다. 재료는 소나무로 밝혀졌다.

이처럼 큰 소나무를 전기톱은 물론이요 재래식 쇠톱도 없던 그 시절에 도대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벌채하고 가공했을까?그 비밀의 일단은 불에 있었다. 가공하려는 부분을 불로 태운 다음, 돌자귀 같은 날카로운 석기를 이용해 목재를 다듬었던 것이다. 그러한 가공 과정은 현재도 이 목재 선박에서 불에 태운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통나무는 자연적으로 말라 죽은 것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거의 같은 목재 가공방식은 동양대박물관(관장 이한상)이 최근 경북 안동시 저전리에서 확인한 기원전 8세기 무렵 청동기시대 인공 저수지에서도 확인됐다.

저수지 바닥에서 지름 20㎝ 가량 되는 통나무가 발견됐는데, 그 밑둥치에서는 불에 태운 흔적이 확인됐다. 참나무로 생각되는 이런 통나무를 당시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불에 태우는 방식으로 절단하거나, 그런 과정을 거쳐 석기 등의 다른 도구를 이용해 목재를 가공했던 것이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그래서 ''실험 고고학''을 강조한다.

그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라면 우습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웃기는 소리"고 단언하면서 "그 시대가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원시사회였는지는 돌로 연장을 만들어 사용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말로 그 시대 상(像)을 좀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대로 돌아가 돌이나 나무로 연장을 만들어 사용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아울러 그런 ''실험 고고학''을 통해 드러나는 선사시대는 원시사회가 아니라는 뜻이다.

동양대박물관이 저전리에서 청동기시대 저수지를 찾았다고 발표했을 때 학계 일부에서는 그럴 수 있을까라고 반신반의했다. 그 가장 주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상식, 즉, 청동기시대에는 저수지를 만들 수 없다는 실로 막연한 상식에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름 20㎝ 이상이 되는 참나무를 이미 가공할 수 있었던 사회가 기원전 8세기 무렵 청동기시대 사회였다. 불과 석기만으로도 소나무를 가공해 통나무 배를 만들 수 있었던 신석기시대 사회였다.

비봉리 유적 목재 선박은 바야흐로 선사시대에 대한 루이의 상식을 재정립케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