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에 위협당하는 ‘아시아의 밥상’

몇 년 전 백두산에 올랐다가 중국 선양(瀋陽)에 잠시 머물렀을 때 액자에 들어 있는 잔털 무성한 산삼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영검함이 마치 그린 듯하였으나 보기가 너무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액자에 넣어져 있어서였을까, 그 산삼이 과연 약효까지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서울에서 거래되는 시세와 비교해 턱없이 싼 것은 아마 돈의 가치가 서로 다른 까닭이었으리라. 다만 우리네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면 잔뿌리까지 흙에 싸서 깊이 두는 것과는 어딘지 들이는 공이 다르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고구려 일로 북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얼마 전 다시 선양에 갔다. 그네들을 기다리면서 한때 독일 조차지였던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알려진 지 오래된 중국 맥주를 마셨다. 묵은 누룩 냄새가 풍기는 걸 보고 내남없이 남다른 맛이라고들 칭찬했다. 그게 ‘암 생기는 술’이란 사실을 일러 준 건 뒤늦게 도착한 북녘 사람들이었다. 방금까지 마신 술맛이 아깝다기보다는 ‘밥상의 평화’에 대한 아쉬움과 중국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감으로 못내 서글펐다.

오래도록 한자(漢字) 문화권의 종주국으로 ‘군림’했고 다양한 학문 사상 제도 등을 주변국에 전파했던 ‘큰 나라’ 중국의 이미지가 어느새 중금속 발암물질 살충제 등으로 범벅된 ‘불량식품 생산국’으로 변질되고 있다. 중국산 장어에 이어 잉어와 붕어에서 발암 의심물질이 잇따라 검출되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중국산 장뇌에서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농약이 검출됐다. 1일에는 바다에서 양식되는 중국산 활(活) 홍민어에서도 발암 의심물질이 검출됐다는 정부 발표가 흘러나왔다.

중국 사회 전반이 빠르게 시장주의로 치달으면서 불가피하게 파생되고 있는 ‘시장적 천민성’이 중국산 먹을거리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물론 여러 아시아 국가의 밥상을 위협하기에 이른 것이다. 납이 든 조기와 병어, 타르를 칠한 참깨와 찐쌀 등의 듣기 불쾌한 소식들은 중국에 대한 오랜 믿음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양의 농어업 생산물을 공급하는 중국은 아시아의 밥상에 대한 안전과 평화를 지킬 일차적 책임을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 오늘날 아시아의 밥상은 하나다. 이번 기회에 ‘밥상의 평화’는 당장의 이익이나 어떤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인식하고 제도화하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정부 당국은 검역과 관리를 강화하는 등 국내에 유통되는 외국산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한편 관련국에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이를 협상으로 이끌어 내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나아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를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동북아 평화를 위한 문화적 정서적 밑받침이 되어 줄 것이다.

소싯적에 모친은 밥이 귀함을 한자로 깨우쳐 주었다. 쌀 미(米)자는 씨앗을 뿌려서 거두어 말리고 방아를 찧고 쌀밥이 되어 입에 들어올 때까지 사람 손이 여든여덟 번이나 간다는 뜻이라는 것이었다. 여든여덟 번의 손길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의 입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그러한 사실이야말로 중국 당국과 중국 현지의 생산자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자세요,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밥상은 늘 거룩해야 한다. 중국에서 생산된 농어업 생산물이 아시아의 밥상을 위협할 때 그 불신의 몫은 고스란히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살충제와 발암물질의 자리를 새로운 가치로 채우려는 노력은 아시아의 밥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이자, 중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오랫동안 아시아의 사상과 문화, 제도의 생산지였던 중국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 중국 선양에서 잠시나마 맛보았던 잊지 못할 그 맥주 맛을 위해서라도….

서해성 소설가·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외래교수

(동아일보 200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