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온돌방

막걸리는 우리나라 술,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 짚신은 우리 나라 신발이듯이 온돌은 우리나라 방이다. 그 온돌방 유적이 연해주 러시아 땅에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발견은 고구려 생활문화를 계승해 고구려 유민이 건국한 발해가 문화 측면에서도 고구려를 계승, 동일성을 유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계승되는 데는 문화가 심지처럼 꿰여 흘러야 하는 것이며, 이는 중국이 한국사로부터 고구려와 발해를 단절시키려는 역사공작의 반증이기도 하다.

문헌상 온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서기 500년 초에 기술된 ‘수경주(水經注)’로 포구수(鮑丘水)란 강물의 수원을 적은 글에 그 인근에 있는 관계사(觀鷄寺)라는 절방이 방바닥을 돌로 고이고 돌 위를 흙칠하여 갱(坑)을 만들어 불을 지펴 방을 덥힌다 했다. 이 지방은 별나게 추워 출가한 스님들이 붙어나지 않고 시주하러 오는 이도 드물어 고안된 별난 난방이라 했다. 보편적인 난방구조는 아니었던 것 같으나 그 절이 있던 지역은 지금 베이징의 동남쪽으로 온돌문화의 서쪽한계(西限)를 말해준다. 온돌에 대한 최초의 정사(正史)기록은 ‘구당서(舊唐書)’로 고구려 사람들은 산곡(山谷)을 의지해서 집을 짓고 지붕은 띠풀로 이었으며 기다란 구들을 만들고 그 구들에 불을 지펴 방을 덥혔다 했다. 온돌은 고구려 고유의 주거문화로 인근에 번져나갔던 고구려의 동일성(同一性)이며 이번 연해주에서의 온돌유적 발견은 그 승계(承繼)국이 고구려 문화권의 동쪽한계(東限)를 넓힌 셈이다. 온돌의 남하한계는 한반도로 제주도까지 건너가지 못했으며 따라서 온돌은 한국에만 있는 고유문화요 그 온돌이 있고 없고로 그 나라가 한국에 속하는 한국문화권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동일성인 김치와 더불어 온돌은 옥스퍼드사전에 ‘ondol’로 등재되어세계적으로 문화특허권을 누린 셈이며 유럽 알프스나 북유럽, 캐나다 등 고위도 지방에서 ‘공간 위주의 난방시대에서 인간 위주의 난방시대’로의 추이에 영합, 그 보급이 가속되고 있는 세계성의 한국문화다.

(조선일보 / 이규태 200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