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국’ 중국이 몰려온다

아시아의 인터넷 중심 국가는? ‘한국’이라고 대답하면 뭘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 정답은 ‘중국’이다.

미국 나스닥 시장은 올 여름 ‘바이(buy) 차이나닷컴’ 열풍에 휩싸여 있다. 중국의 검색 포털업체 바이두(百度, baidu.com)는 이달 초 나스닥에 상장되자마자 주가가 공모가(27달러)의 5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 주식을 산 사람은 하루 만에 수익률 400%의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바이두의 주가 총액은 40억달러(약 4조원).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 NHN(주가총액 2조원)의 두 배 규모다.

미국 야후는 최근 중국의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 alibaba.com)의 지분 40%(1조400억원 상당)를 인수했다. 미국 언론은 ‘야후가 중국 닷컴 쇼핑에 나섰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언론은 ‘알리바바가 야후차이나의 경영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어느 쪽이 맞는 얘기일까?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사장은 자사 지분 일부를 야후에 넘기는 대가로 야후차이나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알리바바와 야후차이나의 경영권을 모두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IT버블이 한창이던 2000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중국 인터넷 업체들은 미국과 한국 웹사이트를 모방하는 데 급급했다. 공산당 독재체제인 중국과 자유로운 정보유통 매체인 인터넷은 상식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중국이 아시아 인터넷의 중심이라는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비하면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의 지위는 갈수록 왜소해지는 형국이다. 중국 인터넷 시장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중국 인터넷의 진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수준이다. 포털 3인방(시나, 써우후, 왕이)이 중국 인터넷의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서로간에는 물론이고 무수한 신생업체들과도 매일 매일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중국어 사이트 쿠나르닷컴의 공동 창업자인 프리츠 데모풀로스는 ‘생존을 위한 변신’을 중국 인터넷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끊임없이 변신하는 중국 포털들

2년 전 중국의 1위 포털은 시나(新浪, sina.com)였다. 그러나 지금은 3위 업체였던 왕이(網易, 163.com)가 매출액 기준으로 1위에 등극했다. 왕이의 딩레이(丁磊) 사장은 지난해 중국 최고 부자로 꼽히기도 했다. 왕이는 두 차례 사활을 건 변신을 시도했다.

초창기 왕이는 미국 야후를 모방한 ‘짝퉁 사이트’였다. 왕이의 주가는 2000년 15.50달러까지 올랐다가 IT 버블이 꺼지자 2002년 1달러 이하로 폭락했다.

딩 사장은 당시 주변으로부터 강력한 매각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변신을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날씨·증권·뉴스 정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그러나 이익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다급해진 딩은 한국의 온라인게임에서 힌트를 얻어 온라인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온라인게임은 불법복제에 대한 우려없이 현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는 수익 모델을 갖고 있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3년 말 왕이의 주가는 저점에서부터 1만% 상승했다. 왕이의 올 2분기 매출액은 5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90% 늘어났다. 매출액의 80%가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나왔다. 순이익은 2930만달러를 기록했다.

시나는 중국의 온라인판 타임지로 불린다. 뉴스와 금융 정보 위주로 사이트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왕이와 달리 1위 포털이라는 지위에 안주한 결과 올해 2분기 순이익은 1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분기 매출액은 4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시나는 요즘 수익성이 낮은 무선 인터넷 부문을 축소하고 온라인 광고 분야에 집중하는 등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다.

써우후(搜狐, sohu.com)는 젊은이 취향의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특성화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찰스 장이 창업했다. 온라인 광고 수입이 전체 매출의 66%를 차지한다. 써우후는 올 2분기에 2600만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톰온라인(tom.com)은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중국의 유료 음악 서비스 시장의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불법 복제가 판을 쳐 아직까지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이 업체는 현재 휴대폰 벨소리나 컬러링 서비스 등에서 주로 수익을 얻고 있다.

온라인게임도 중화주의 물결

온라인게임 분야에도 중화주의의 물결이 거세다. 중국 토종업체들이 짝퉁 게임과 자체 개발 게임을 앞세워 한국 게임업체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 2000년 중국에서 유통되는 온라인게임의 90%는 한국산이었다. 한국이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2005년 중국 시장에서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점유율은 30%대로 추락했다. 반면 중국산 게임은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 한국 게임을 추월했다.

2003년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던 온라인게임은 한국 게임업체(웹젠)가 개발한 ‘뮤’였다. 뮤는 2004년 중국 업체(샨다)가 사들인 한국산 게임 ‘미르의 전설2’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올해엔 순수 중국산 게임 멍환시유(夢幻西遊)가 1위에 등극했다. 멍환시유의 서비스업체인 왕이는 동시 접속자 수가 110만명이라고 밝혔다. 110만명이 동시에 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최대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동시 접속자 수가 15만명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중국 PC방에서 국산 ‘메이플스토리’의 짝퉁 게임을 발견하고는 너무 감쪽 같은 모방 기술에 할 말을 잃어버렸죠. 게임이 조잡하기는커녕, 일부 그래픽은 중국 게이머의 취향에 맞춰 더 개선되기까지 했으니까요.”

카트라이더·메이플스토리를 개발한 게임업체 넥슨의 김정주 사장의 말이다. 그는 “개발팀에 짝퉁 게임을 참고하라고 보여주기까지 했다”며 “중국의 게임 개발 수준이 한국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평가했다. 넥슨은 이 짝퉁 게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했다가 이런 유사 게임이 4~5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했다고 한다.

중국 게임업체들은 한국 게임 베끼기를 통해 돈과 자신감을 얻은 뒤 아예 한국 게임업체 인수에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의 온라인게임 유통업체 샨다(盛大)는 지난해 말 국내 중견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를 1000억원에 인수했다. 샨다는 원래 액토즈소프트가 개발한 ‘미르의 전설2’를 중국에 배급하던 조그만 회사였다. 2001년 매출액은 6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르의 전설2’가 중국 최고의 인기게임으로 부상하면서 매출액이 2년 만에 800억원으로 늘었다. 130배 성장한 것. 샨다는 미국 나스닥에도 상장, 시가총액 3조원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 업체의 천톈차오(陳天橋) 사장은 개인 재산 2조원으로 중국 최대 갑부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개발사인 액토즈소프트는 샨다가 로열티 지급을 미루고 ‘미르의 전설2’와 유사한 게임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저작권 분쟁 끝에 샨다가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중국 인터넷의 힘

중국 인터넷 업체의 막강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마디로 내수 시장의 규모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는 현재 1억3000만명.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2007년에는 2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의 PC방 수는 35만개. 종주국인 한국의 PC방이 2만여곳에서 줄어드는 추세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잠재력은 더 크다. 중국의 전체 인구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10%에 불과하다. 이용자가 9배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 조사기관 니코 파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4억6780만달러(약 4700억원)였다. 오는 2009년에 이 시장은 20억달러(약 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터넷 육성책도 중국의 인터넷 대국화에 기여했다. 인도는 인구가 11억명으로 중국(13억명)에 뒤지지 않지만 인터넷 이용자 수는 중국의 4분의 1인 3000만명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초고속 통신망 등 인프라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5년간 통신망 구축에만 1400억달러(약 140조원)를 쏟아 부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산업 보호에 적극적이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온라인게임 엔진 개발 등을 국책 과제로 선정하고 정부 출자 회사 2곳을 새로 설립했다. 상하이시 정부는 소프트웨어·게임 업체들에 토지 매입과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 30여개의 자체 개발 온라인게임을 선정, 집중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상하이는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의 50%를 휩쓰는 게임 메카가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 대국’ 중국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공산당 집권에 위협이 될 만한 글이나 웹사이트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검열을 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인터넷 이용을 장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언론의 자유를 막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모순적인 정책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중국 네티즌의 정치적 욕구는 공산당 독재에 대한 저항 대신, 일본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해 과장된 우월의식으로 분출되고 있다. 인터넷은 대중의 중화주의를 증폭하는 매체로 활용된다. 조지 W 브라운스 뉴욕대 사회대학장은 최근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기고에서 “시장경제와 인터넷이 독재정권을 쓰러뜨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독재정권들은 오히려 이들을 정권유지에 이용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 / 김민구 기자 200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