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바다서 자란 태풍, 점점 세지고 길어진다

미국 MIT의 저명한 기상학자 케리 엠마누엘 교수는 1990년대 중반에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수퍼 허리케인(Super hurricane)이 출현할 것”을 예상했다. 엠마누엘 교수는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1930년 초반부터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75년 이후 지구의 해수면 온도가 급상승하는 추세를 보이며 태풍의 잠재강도와 지속시간 또한 해수면 온도의 상승과 비례하여 강해진다”고 했다.

태풍은 ‘뜨거운 수증기를 먹고 사는 기류’다. 찬 바다나 육지를 만나면 급격히 쇠퇴하지만 더운 바다에선 무섭게 성장한다. 엠마누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태풍의 지속시간은 60% 증가했고 최대풍속은 50% 증가했다. 이 수치는 해수면 온도말고도 태풍의 힘을 키워주는 다른 요인이 있음을 말해준다.

이론적으로 해수면 온도가 1°C 상승하면 태풍의 최대풍속은 5% 커진다. 해수면 온도가 평균 0.5°C 상승했으므로 최대풍속은 2~3% 증가하고 풍속의 세제곱에 비례하는 잠재강도는 6~9% 증가한다. 여기에 태풍의 지속시간이 더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실제 잠재강도는 8~12% 증가할 뿐이다.

실제로 태풍 파워를 더 높여주는 요인은 대기의 ‘연직온도분포’다. 연직구조(鉛直構造·지표면의 기울기와 상관없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배열된 대기의 구조. 지상-대류권-성층권-중간권-열권으로 나뉜다)까지 고려하면 최대풍속은 10% 커지고 잠재강도는 40%까지 증가한다. 결론적으로 태풍은 해수면 온도의 증가와 대기의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엠마누엘 교수는 “특히 해수면 온도의 급상승은 북대서양보다 북태평양 서부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북태평양 서부란 곧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은 괌, 마샬군도 등이 있는 북위 10도의 북태평양 서남부에서 태어난다. 태풍이 나고 자라기 위해선 해수면 온도가 27°C 이상 유지돼야 하는데 7~9월에는 태양 에너지가 집중되는 적도~북위 22.5도의 해수온이 높아진다. 북태평양 서부에는 7~10월 해수면 온도가 30°C 이상인 지역도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지역의 해수온이 급증한다면 동아시아로 오는 태풍은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태풍의 성장에 필요한 열과 수증기의 공급이 더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수온 30°C 넘기도

한반도 해역의 수온 상승도 강력한 태풍의 출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태풍은 원래 북쪽으로 갈수록 세력이 죽는다. 북쪽으로 갈수록 바닷물이 차갑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남해안의 8월 현재 해수면 온도는 적도와 동일한 27~28°C일 만큼 올랐다. 그로 인해 최근 태풍은 적도에서부터 우리나라까지 그 힘이 죽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서 온다. 그 결과가 바로 2000년대 들어 한반도를 강타한 프라피룬, 루사, 매미 같은 초대형 태풍이다.

태풍의 에너지원은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응결하여 구름을 생성하면서 방출하는 잠열(潛熱)이다. 수증기 1g이 물방울로 변할 때, 600칼로리의 잠열을 내놓는데 이 에너지는 수증기가 없는 공기 1g의 온도를 2500°C나 올릴 수 있을 만큼 크다. 태풍이 고위도로 이동하면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면서 수증기 증발이 적어져 더 이상 잠열을 방출하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고위도의 해수면 온도가 높게 유지되면 태풍이 조금도 약화되지 않은 채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상륙하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 증가율은 지구 해수면 온도 증가율의 6배에 달한다. 이는 앞으로 ‘수퍼 타이푼(Super Typhoon·초대형 태풍)’의 발생 가능성이 갈수록 커짐을 시사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진로 결정

태풍의 직접적인 피해는 태풍의 힘보다 진로에 따라 결정된다. 태풍이 아무리 강한들 대만이나 일본으로 가면 그쪽 국민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피해가 없다. 그래서 기상청에선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태풍은 적도 부근에서는 무역풍을 타고 북서쪽으로 이동하다가 북위 30도쯤의 중위도에 이르면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서 북동쪽으로 전향하게 된다. 중위도 편서풍대에 접근하면서 이동속도도 점차 빨라지는데 이때의 진로 예측이 가장 어렵다.

태풍의 진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위치 및 세력과 연관이 있다.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은 고기압 속으로 들어가면 죽기 때문에 북태평양 고기압을 오른쪽에 두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한다. 만약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하면 태풍은 그에 밀려서 중국이나 대만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면 그 가장자리를 끼고 한국이나 일본으로 방향을 바꾼다.

중위도에서 태풍의 이동속도는 여름보다 가을에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가을로 갈수록 편서풍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가을에 들어서면 한반도 주변의 기압 배치가 달라져 중국 대륙으로부터 고기압 세력이 강해진다. 이때 태풍은 대륙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의 기압골을 따라 이동하게 되며 두 고기압 세력에 따라 진로와 강도가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를 찾아 오는 대형 태풍은 7월 말~9월 말에 주로 나타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7~8월에는 남해안의 온도가 높게 유지되어 태풍이 약화되지 않고 들어올 수 있고 8월 말~9월에는 대륙성 고기압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저기압인 태풍과 사이에 기압경도력(기압 차이로 인한 바람의 힘)이 강해져 최대풍속이 강화될 수 있다.

복잡한 지형도 집중호우 유발

태풍은 강풍보다 그에 동반한 강수대나, 간접적으로 저기압의 영향에 의한 집중호우가 더 큰 피해를 안긴다. 태풍 속에는 나선형의 강수대가 발달하고 강한 상승운동에 의한 수증기 응결로 생긴 높은 대류형 구름대가 발달한다. 그 구름과 강수대가 지역적으로 집중호우를 유발하여 돌발 홍수를 일으킨다.

또 한반도의 복잡한 지형과 연관되어 태풍의 순환이 간접적으로 지형성 강우를 유발시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태풍 루사가 상륙하기 전에 영동지방에 발생한 호우가 대표적인 예다. 태풍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불러들인 남동풍과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불어온 북동풍이 엄청난 수분을 함유한 채 태백산맥 동쪽으로 밀려들어오다가 산등성이를 타고 급상승하면서 지형성 비구름을 형성시켜 ‘1일 877㎜’라는 기록적 강우를 쏟아부은 것이다.

지난 해 우리나라는 운좋게 태풍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일본에 무려 10개의 태풍이 내습했다. 태풍의 진로는 기압패턴이나 대기의 대규모 순환과 연관돼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과 위치, 편서풍대가 얼마나 남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요인이 약간만 변해도 일본으로 향하던 태풍이 한반도를 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은 대형화하고 있다. 루사와 매미는 역대 최강에 포함되는 초대형 태풍이다. 내년이나 내후년 아니면 올해, 더 큰 태풍이 내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10여년 태풍피해액 13조원

2004년 세계의 보험회사가 자연재해로 인해 지불했던 금액은 2003년에 비해 2배가 넘었다. 자연재해 피해액 중 가장 큰 원인이 태풍이다. 우리나라도 2002년까지 10년 동안의 재해손실액 13조원 중 태풍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인한 피해액이 8조원으로 61%를 차지했다. 2004년 태풍 매미에 의한 피해액 4조8000억원을 더하면 피해액은 더 커질 것이다.

태풍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재난이지만 풍속과 진로를 정확히 예측하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기상청에선 수치모형을 이용한 예보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는 태풍 발생 초기에 기상관측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기상 항공기 사업도 검토할 만한 시점에 왔다. 미국은 태풍이 먼 바다에 있을 때 항공기를 이용, 태풍 내부에 드롭존데라고 하는 관측기구를 떨어뜨려 태풍의 구조와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도 최근 국가사업으로 드롭존데 관측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상에서 쏘아올리는 라디오존데란 1회용 풍선관측기구에 의존하고 있어 태풍이 상륙하기 전에는 관측조차 불가능한 단계에 있다.

박선기 이화여대 환경공학부 교수

(주간조선 200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