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한국의 중년 남자들…문득 문득 왜 이리 허전할까

《대기업 간부로 일하다 얼마 전 퇴직한 김대원(가명·49·서울 강동구) 씨는 요즘 아침만 챙겨 먹은 뒤 무작정 집을 나서는 날이 많다. 집으로 찾아오는 아내 친구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한동안은 아내 친구들이 찾아와도 안방에서 책을 보거나 TV를 봤다. 그러나 어느 날 목이 말라 부엌에 잠깐 나갔다가 “제발 안방에서 나오지 말라니까”라며 언짢아하는 아내 얘기를 듣고 생활 패턴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릴없이 동네를 걷거나 게임방에서 고스톱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점심 때 돌아오면 ‘전자레인지에 밥 있다’는 쪽지가 김 씨를 맞는다. 전자레인지에 밥과 국을 데우고 밑반찬을 꺼내 먹다가 문득 ‘따로 사시는 노모가 보면 얼마나 안쓰러워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핑 돈다.

현직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다 이혼한 친구의 고충을 듣는 것도 지겹지만, 겉보기에 멀쩡한 친구들도 “그동안 뭘 위해 뛰어 왔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한다. “내 자신의 건강이나 즐거움을 위해선 단 한 푼의 돈이나 1초의 시간도 쓴 적 없이 오로지 가족과 직장을 위해 살아 왔다고 자부했는데….”

우리 사회 중장년 남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경고성 지표들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 남성이 직장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극심함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뿐만 아니라 가정생활, 친구 관계 등 삶의 전방위적 측면에서 스트레스와 소외감에 시달리는 남성이 급격히 늘고 있다.

남성을 위한 상담 기관인 ‘남성의 전화’는 올해 상반기(1∼6월)에만 1479명과 상담했다. 40, 50대가 대부분인 상담자들이 털어놓은 고민은 경제력 상실이나 부인의 외도에 따른 불화, 가정 내 소외감 등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남성이 실직자 등 특별한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겉으론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남성들 가운데도 고용 및 노후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가족 해체 현상 앞에서 ‘정신적 공황’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04년 출생 사망 통계’에 따르면 50대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에 비해 2.98배나 높다. 40대는 2.77배, 60대는 2.55배, 30대는 2.12배 높았다.

40대 남성 자살자는 2001년 1039명에서 2002년 1308명, 2003년 1681명으로 늘었다. 50대 남성 자살자도 2001년 842명에서 2003년 1241명으로 많아졌다.

남성의 전화 이옥이(李玉伊) 소장은 “가부장적 가치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남성들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닥쳐 온 변화 앞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물론 남녀 불평등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받는 불이익에 비해 남성들의 고통이 작을 수도 있겠지만 위기와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이 여성보다 훨씬 떨어져 고통이 배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구, 김상훈 기자

[울고 싶은 남자들]<1> 가정의 외딴섬, 家長

《대기업 부장 안모(46) 씨에게 올해 8월은 유난히 힘들었다. 해외투자와 인수합병 등 회사 업무가 과중한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집에서 생겼다. 업무와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 있던 어느 날, 식탁에서 중3짜리 외동딸에게 꾸중을 했다가 집안에서의 자신의 위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에게 화난 일 있어? 왜 밥상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니. 그리고 어른들 앉아 계신데 저만 밥 다 먹었다고 혼자 일어나기야?” 딸은 대답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이어지는 아내의 말이 안 씨의 가슴을 후려쳤다. “당신, 그렇게 말해 봤자 권위 안 서요.”

아내는 작심한 듯 불만을 쏟아 냈다. 가장 스스로 가족에게 시간을 안 내주면서 딸 버릇 가르치려 하느냐, 쟤가 아빠 얼굴이나 보면서 큰 애냐, 당신은 밥상에서 분위기 띄운 적 있느냐, 쟤도 내년부터는 고등학생이라 올해가 가족과의 마지막 휴가여행일 텐데 당신은 휴가 계획도 못 세우고 있지 않느냐, 당신이 돈 버는 것 말고 가족한테 해준 게 뭐냐….

“깜짝 놀랐죠.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달려 왔는데, 가족들도 일에 대한 저의 헌신이 오로지 가족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 성적표는 단지 ‘돈 벌어주는 아빠’란 한 과목에서만 과락을 면했더군요. 저는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족들은 저와 다른 집 가장을 여러 면에서 비교하고 있더군요. 주말마다 함께 여행 가는 아빠, 방학 때마다 해외연수 보내 주는 아빠, 퇴근 후 함께 산책하는 남편….”

그러나 안 씨는 이제 와서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 컴퓨터와 영어 실력으로 무장한 후배들이 밀고 올라오는 가운데 ‘시간과 노력을 100% 바치는 것’ 외에는 일터의 경쟁에서 당해 낼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몸 바쳐 돈을 버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쌓인 가족의 불만 앞에서 당황하는 안 씨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가장들이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밤낮없이 일하며 젊음을 다 보내 버린 가장들은 이제 ‘빵점 가장’으로 낙인찍힌 자신을 발견하고는 망연자실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G사의 최모(53) 부장은 “젊음과 건강, 저 자신의 행복은 포기한 채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일했는데 그런 ‘희생’이 가족들에겐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행복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 허망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중년 남성들이 자랄 때 아버지란 생계를 책임지고 집안의 큰일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존재였죠. 지금의 가장들은 자기가 보고 자란 역할 모델을 충실히 따랐지만, 가족과 세상은 여기에 덧붙여 ‘시간을 내주는 아빠’ ‘대화하는 아빠’ 등 다양한 역할을 원하고 있습니다.”(강학중·姜호中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생계 해결’이 최우선 과제였던 1960, 70년대를 지나 자녀교육, 재테크, 참살이(웰빙) 문화 등이 가정의 우선순위 과제가 되면서 소득 활동이라는 ‘가정의 기본 업무’를 담당해 온 가장의 결정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많은 남성은 ‘Something(대단한 무엇)’에서 ‘nothing(별것 아닌 것)’으로 오그라든 자신의 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채 문화적 충격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

건축공무원 김모(46) 씨는 수년 전부터 집안에서 주눅 든 채 생활하고 있다. 서울 강북의 아파트에 살았던 2000년 초에 부인은 “빚을 내서라도 강남의 대치동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는 ‘건축 규제가 어떻고, 건설 동향이 어떻고’ 하며 부인의 말을 무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대치동 아파트 시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뒤 자연스럽게 집안의 모든 결정권은 부인에게 넘어갔다.

“저도 건축 관련 업무를 해 왔지만, 일에 쫓기다 보면 실제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젬병이기 십상입니다. 아이들 학부모회나 주부들 입소문을 통해 전파된 ‘아줌마 정보’가 훨씬 현실적이고 미래를 내다봤던 거죠.”

은행원인 장모(47) 씨는 최근 경기 구리시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이동 발령을 받았다.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느라 매일 두 시간 이상씩 길에서 허비합니다. 아내가 구리시의 집 근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데, 공부하는 아이들 신경 쓰며 일까지 하려면 제가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영등포구로 이사하자는 제안도 해보았지만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을 전학시키려고 하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가정에서의 소외감 때문에 일탈하는 남성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회사원 한모(42) 씨는 최근 직장 동료와 바람피우면서 여관비 등을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휴대전화 통화 기록도 지우지 않았다. 당연히 부인에게 들켰다.

한 씨를 심리상담 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뒤늦게 경제활동에 나선 부인의 수입이 남편보다 많았으며 빨래나 식사 준비 등을 주로 남편이 했는데, 부인이 가끔 남편에게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했다”며 “한 씨가 바람피운 동기엔 부인에게 ‘한 방 먹이려는 심리’가 컸고 그래서 차라리 ‘사고를 친 게’ 발각됐으면 하는 심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채기(鄭菜基) 한국남성학연구회장은 “남성의 소외 현상은 한국 사회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며, 현대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역할이 전체적으로 변하는 물결의 일환”이라며 “가장을 비롯한 가족들이 고립된 벽에 갇히지 말고 서로의 고민과 불만, 집안일까지 적극적으로 털어놓고 나누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윤종 기자 2005-8-29

[울고 싶은 남자들]<2> 자식, 등 돌린 애물단지

《S병원 홍보팀장인 박모(47) 씨는 3년 전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1억2000만 원을 받았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적금 등 재테크를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둘째 유학 보냅시다.” 아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박 씨를 쳐다봤다. 결국 2003년 12월 초등학교 4학년짜리 둘째와 아내를 캐나다 토론토로 보냈다.》

그때부터 시작된 ‘기러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큰딸(현재 고2)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애 딸린 홀아비’의 고충을 이해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둘째 조기유학에 퇴직금의 절반인 6000만 원을 썼다. 나머지 6000만 원도 큰딸의 대학 입학 후 해외연수를 약속했기 때문에 사실상 ‘저당’ 잡힌 상태.

“3년 전 아내와 아이들의 시선이 잊혀지지 않아요.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의 편안한 노후를 위해 자식의 미래는 망쳐도 개의치 않는 아빠가 아니냐’고 따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노후보장 적금이 가당하기나 합니까?”

우리 사회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평생 애프터서비스’ 제도가 있다. 자식에 대한 무제한의 뒷바라지 의무가 그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챙길라치면 ‘이기적인 아빠’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게 이 나라 ‘보통 아빠’들의 현주소다.

최근 ‘비동거 가족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란 박사논문을 발표한 연세대 대학원 최양숙(崔亮淑) 씨는 “한국 사회엔 성장한 자녀가 독립하는 시스템이 결여돼 있다”며 “가장에게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주어지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가족문화”라고 설명했다.

자녀가 고교만 졸업하면 자립하는 게 당연시되는 서구의 기준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 어른이 된 자식 뒷바라지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다.

택시운전사 이모(48) 씨는 대학 1년을 휴학하고 군복무 중인 아들을 얼마 전 면회하고 온 뒤 걱정이 늘었다. 이제 한시름 놨나 싶었는데 아들 녀석이 10월에 제대하면 전공을 바꾸기 위해 대학입시를 다시 보겠다고 ‘통보’한 것. 게다가 고3인 딸은 “대학에 들어간 뒤 1년간 해외연수를 시켜주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일단 “그렇게 하자”고 말했지만 그 비용을 어떻게 댈지 막막하기만 하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禹鍾敏) 교수는 “심리적으로 가장과 자식이 상호의존적인 상태에서 가장의 재정적 뒷바라지를 서로가 ‘애정의 증표’로 착각하곤 한다”며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자식이 성장한 뒤에도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걸 당연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대다수 아버지는 그 같은 무제한의 애프터서비스를 ‘행복한 희생’이라고 여기며 기꺼이 감수하는 분위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들을 정작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식 뒷바라지에 휘는 등뼈가 아니다. 최근 들어 가족간의 끈이 급격히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자녀들은 갈수록 아버지에게 냉랭하고 계산적으로 되고 있다.

재정적으론 아버지에게 계속 의존하면서도 그 밖의 문제에선 자신의 영역에 아버지가 끼어들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는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들은 자식에 대한 헌신의 대가로 그래도 밀접한 부자·부녀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중년 남성들에겐 헌신만 요구될 뿐이다.

1남 1녀를 둔 최모(58) 씨는 요즘 자식들에게서 ‘왕따’ 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 ‘1년만 같이 살다 독립하면 어떻겠느냐’고 운을 떼려다 씨도 먹히지 않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해달라는 건 다해 주며 키운 아들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학연수에 대학원까지 보내줬는데…. 최 씨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빚을 얻어 아들의 신혼살림집 전세금과 혼수를 마련해 줬다. 하지만 같은 서울에 사는 아들 부부는 특별히 부모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데도 두세 달에 한 번밖에 얼굴을 안 보여 준다. 2세 출산 계획에 대해 충고하려다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며느리의 얼굴에 ‘다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쓰여 있는 듯해 입을 다물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 들면서 자기 주장이 세진 아내와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지자 딸은 엄마가 안쓰러운지 아빠에겐 아예 말도 걸지 않는다. 요즘 최 씨는 이미 여러 세대 전부터 수많은 아버지가 했던 의미 없는 푸념을 되풀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품 안의 자식이지, 다 필요 없어….”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曺恩) 교수는 “한국 가족은 외형만 근대적이지 실제로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선 정립된 가치가 없는 상태”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자라나는 세대에 자립심을 키워주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權俊壽) 교수도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자립심을 키워줘서 성인이 되면 홀로 서도록 해야 한다”며 “아버지가 무한 책임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때 아내 및 자녀들과 민주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땅의 상당수 아버지는 ‘다 필요 없다’는 그 자식을 위한 메아리 없는 희생을 계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썰렁한 집안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가족은 같이 살아야죠. 기러기 생활을 했다가는 금세 가족이 공중분해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홍보대행사 임원인 김모(44) 씨는 요즘 기러기 아빠가 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내가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두 딸의 조기 유학 얘기를 꺼낸 것은 지난해. 김 씨가 계산해 본 결과 매년 1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돈도 돈이지만 기러기 생활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김 씨는 머잖아 자신이 뜻을 굽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유학 비용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계획이다. “자식 이기는 아버지 있습니까?”

김상훈 기자 2005-8-30

[울고 싶은 남자들]<3> 3번아 찾지마라 6번은 간다

《“예전에 탑골공원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면 ‘왜들 저러고 계신가. 친구들이라도 만나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머지않아 나도 저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3년 전 은퇴한 김모(57·서울 종로구 창신동) 씨는 함께 소일할 친구가 없는 게 요즘처럼 아쉬울 때가 또 있었나 싶다. 막상 퇴직하니 마땅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처음엔 북한산으로, 대중사우나로, 골프연습장으로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한다며 혼자 돌아다녔지만 수입도 없는 처지에 그 생활도 오래할 건 못 됐다.》

“친구들 대부분은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어요. 직장 생활하는 동안 친구 챙기기가 쉽습니까? 직장, 가족, 경조사, 고향 부모, 친척 챙기느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를 넘기기 일쑤였죠.”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다 보니 친구들과도 시나브로 연락이 끊기더라는 것. 요즘은 옛 직장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북한산에 다니지만, 그렇다고 더 자주 만날 사이는 아니다. 현직에 있거나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주말에 가끔 모여 골프를 치는 것 같은데 끼어들기 어렵다. 우동 국물에 말아 먹을 맨밥을 싸가지고 구립 도서관에 가서 소설책을 읽는 게 요즘 그나마 낙이다.

한국 남자들의 은퇴 후 생활은 그다지 장밋빛이 아니다. 직장 떨어지고 돈 떨어진 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친구들도 떨어져 나가 있기 때문이다.

S그룹에서 명예퇴직한 뒤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모(53) 씨 역시 요즘 주말이면 쓸쓸하기 그지없다. 기업 간부 시절 즐겼던 골프는 이제 같이 치자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럴 경제적 여유도 안 된다. 아내 따라 교회에 가봤지만 적응이 안 돼 대학생인 딸을 따라 스포츠센터에 가곤 했다. 딸이 반기지 않는 눈치인 줄 알면서도 아빠의 권위로 밀어붙여 따라다녔지만 운동이 끝나면 항상 혼자 돌아와야 했다. 샤워 후 함께 쇼핑도 가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지만 딸은 샤워실에 들어가면서 친구들 만나러 갈 거라며 “아빠 먼저 가”라고 말한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그러다 얼마 전부터 취미 붙인 게 같은 상가의 비슷한 연배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거다. 예전엔 토,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카페를 보면 ‘도대체 누가 주말에 술을 마신다고 문을 열까?’ 싶었는데 바로 자신 같은 손님들 때문에 문을 연다는 걸 깨닫게 됐다.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김경호(金京浩) 교수는 “지금 40, 50대 남자들이 노후의 경제적인 문제엔 나름대로 대비를 하지만 친구나 대인관계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며 “적금을 들고 노후를 준비하듯이 평상시에도 친구나 주변사람들, 동호회나 동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친구도 돈도 직장도 다 잃고 늙은 몸만 남았을 때 함께 있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며 “대개 일, 가족, 친지 순으로 우선순위를 배정하는데, 힘들더라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이나 여행 등 젊었을 때 만나던 패턴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한국 남자들의 저물녘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더더욱 쓸쓸해진다. 취재팀은 지난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여러 차례 찾아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온다는 이모(67) 씨는 “공원에 나오는 건 굳이 따지자면 가야할 곳을 만들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할 일은 없지만 그냥 마음이 편해, 다들 같은 처지니까….”

이 씨는 30년 동안 일해 서울 강북에 25평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고, 네 딸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딸들이 보란 듯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결혼식장에서도 뿌듯하기는 마찬가지였지.”

그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출가한 네 딸은 이젠 명절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어렵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몸과 딸들이 가끔 주는 용돈, 명절 때 가끔 보는 손자 손녀들이다. 남들은 ‘딸 집을 돌아다니며 손자들 보면서 놀다 오라’고 말하지만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눈치가 보여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노인들이 요즘 떠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상처(喪妻)한 뒤 서울의 아들 집에 살게 된 노인이 우연히 아들 부부가 자기들끼리 식구들의 순번을 붙여 “1번 학원 갔니?” 식으로 부르는 걸 엿들었다는 것.

우선순위 1번은 아이(손자)였고, 2번은 며느리, 3번은 아들, 4번은 아이 봐주는 가정부였다. 그런데 노인은 5번도 아니었다. 5번은 애완견이었던 것. 며칠 후 노인은 “3번아 찾지 마라, 6번은 간다”는 쪽지를 남겨 놓고 시골집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설마 실제 이야기겠어. 웃자고 만든 거겠지.”

한 2년 전부터 이곳에 나온다는 강모(66) 씨는 “은퇴하니까 집에만 있던 아내가 오히려 더 신세가 좋아 보이더라”고 말했다.

“10년이 넘게 한동네서 살았으니 아내는 이웃들을 잘 알지. 친구도 유지되고. 자기들끼리 놀러도 가고. 그런데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매일 아침 회사 가서 밤늦게 들어왔는데….”

퇴직 전 중소기업에 다녔다는 한모(69) 씨는 “아내가 친구들하고 놀러가는 걸 막으면 ‘좀팽이’ 남편이 되지만 남자들이야 어디 그럴 수 있나. 당장 난리가 난다. 30년 동안 친구들하고 여행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푸념했다.

전남대 심리학과 윤가현(尹嘉鉉·한국노년학회 부회장) 교수는 “‘노후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한 채 노년을 맞은 노인들에겐 각종 노인 관련 강좌, 노인대학, 건강교실, 레크리에이션 등에 참가할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며 “보통 ‘에이 그런데 가서 어떻게 즐기고 사람을 만나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자각을 주는 강의를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경제적 상태는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심리적인 상태가 변하면 좀 더 긍정적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성원 기자 2005-8-31

[울고 싶은 남자들]<4> 목멘 ‘홀로 아리랑’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이 있었지요. 30대 땐 친구들과 그런 농담하며 낄낄거리곤 했는데…. 막상 현실로 닥쳐 봐요.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안 겪어 보곤 상상조차 못합니다.”》

3년 전 부인과 사별한 안모(57·자영업) 씨. 펜팔로 만난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노후를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 왔다. 그런데 이제 발 좀 뻗고 살 만하다 싶었더니 부인이 폐암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아들은 지난해 결혼했고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엔 컴퓨터도 배우고 주말에 몰두할게 필요해 바다낚시도 쫓아다니고 했는데 이젠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집에 오면 꼼짝도 안 해요. 그냥 멍하니 있죠.”

실제로 안 씨 아파트(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베란다 창엔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아래서 보면 우리 창문이 제일 깨끗하다고 그랬는데….”

밥하고 청소하는 등의 살림은 대충 적응을 했고 낮에는 일에 몰두하지만, 퇴근 후 텅 빈 방에 불을 켰을 때 눈에 들어오는 사진틀을 보면 꾹꾹 담아둔 한탄이 튀어나온다.

“이 사람아, 일 나갔다 왔는데 말도 없나. 만날 말도 없이 쳐다보기만 하고….”

안 씨는 “영화나 소설에서 죽은 배우자의 사진을 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장면이 나오면 너무 작위적이라며 비웃곤 했다”며 “닥쳐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사회에서 사별, 이혼 등의 사유로 1인 가구주로 등록된 40∼59세 남자는 24만9000명이다(통계청 2000년 인구센서스). 여기에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배우자 없이 자녀나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를 포함할 경우 40, 50대 외기러기 남자는 1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혼자 살게 된 사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갑작스레 닥친 독신생활에 심각한 부적응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가부장적 문화에서 자란 탓에 일상생활에서 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데다 사회적으로도 독신 중장년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

지난해 ‘중년 남성의 배우자 사별 경험’이라는 석사 논문을 쓴 박경복(朴景福) 한양대 임상간호정보대학원 호스피스 연구원은 “부인이 짧은 기간의 투병 끝에 사별한 남성들의 정신적 고통이 특히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별 뒤 여성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반면 남성들은 의식주는 물론 자녀 교육 등 전반적인 문제에 걸쳐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많은 중년남자는 자녀 교육을 비롯한 가정 대소사의 부담을 부인에게 떠넘겨 왔으며, 직장을 제외하곤 가족 이외에 특별한 대인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아왔다.

사별의 정신적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난 남성들은 부인이 수행하던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제2의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에서마저 은퇴하면 심신이 크게 상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4년 전 부인과 사별한 박모(48) 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는데 막상 쉽지 않아요. 특히 애들이 내 맘대로 안돼요. 집사람 있을 땐 내가 악역 하고 아내가 중재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대화가 끊겼어요”라고 하소연했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도 가부장적 생활에 젖어온 중·노년 남자들을 울상 짓게 만들고 있다.

6월 통계청이 발표한 ‘1970년 이후 혼인·이혼 주요 특성 변동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 10쌍 중 2쌍이 황혼 이혼이었다. 특히 황혼 이혼 청구자의 80%가 여성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曺瓊愛) 상담위원은 “황혼 이혼 문제로 상담하는 비율은 여성이 7 대 3으로 많지만 남성이 점차 늘고 있다”며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는다’ ‘아이들이 엄마와만 친하게 지낸다’는 등 주로 소외감을 호소하는 남성이 많다”고 밝혔다.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한 박모(48) 씨의 경우 아내의 이혼 요구에 벼랑까지 몰린 처지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핑계로 다소 방탕한 생활을 했던 그는 요즘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파탄은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버티고 있다. 남은 돈도 없고 이혼을 해도 당장 나가 살 곳이 없다는 것이 속사정이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누군가를 사귀는 눈치지만 그렇다고 따지고 들기도 무섭다. 얼마 전에는 이혼 문제로 다투다 아내가 가슴을 할퀴는 바람에 상처를 입었지만 할 말이 없었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고, 폭력을 쓰다 이혼 사유가 될까 겁이 났기 때문. 그나마 아내가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홀아비 생활을 택한 기러기 아빠들의 하루하루도 회색빛이긴 마찬가지다. 한해 5000만 원 이상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보내고 있는 김모(43) 씨는 “힘들어 죽겠다며 왜 빨리 돈을 보내지 않느냐는 아내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듣다 보면 아내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두려워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기러기 생활 3년 만에 등산 조깅 서예 등 경험하지 않은 취미활동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가족이 곁에 없다는 공허함을 메울 수가 없어요. 더욱이 이 생활의 끝이 안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해집니다. 아직 한창 나이에 참아야 하는 성적인 고통도 큽니다. 창피한 말이지만 스스로 발정 난 동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내가 택한 일이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해답이 없는 것 같아요.”

1984년부터 호스피스로 활동해 온 한양대 김분한(金芬漢) 교수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갑자기 혼자된 중·노년을 위한 정신 상담을 법으로 정하고 있고, 교회와 각종 사회단체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도 홀로 사는 남성을 돕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함께 어려서부터 시대에 어울리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역할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2005-9-1

[울고 싶은 남자들]<5> 이모만 있고 고모는 없다

《“외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나는 왜 꼭 친할머니냐.”

강모(42·서울 양천구 신정동) 씨는 최근 어머니 생신 모임에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다섯 살 난 막내아들에게 강 씨의 어머니가 “엄마 아빠 다음에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었다. 아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서슴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이모랑 쏘나타 삼촌(쏘나타를 몰고 다니는 막내외삼촌)”이라고 대답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는 이어 “음… 그리고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라고 덧붙였다. 첫 번째로 꼽힌 줄 알고 흐뭇해하던 어머니는 처음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외가 쪽을 뜻한다는 걸 알아채고 안색이 변했다. 사실 아이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부를 땐 꼭 ‘친’자를 붙이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렀다. 평소엔 그냥 귀엽다는 듯 듣고 넘기던 부모님이지만 이번엔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외갓집 식구들과 훨씬 친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강 씨는 착잡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는 육아를 장모에게 의탁해 왔다. 그래서 집도 처가(목동) 근처로 옮겼다. 경기 구리시에 있는 본가 방문은 두서너 달에 한 번씩인 ‘특별 행사’가 됐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이모들을 엄마만큼 편하게 따르고 이종사촌과도 친형제처럼 논다. 하지만 고모 쪽은 왠지 서먹해한다. 막내는 때론 고모란 호칭도 잊어먹곤 한다.

“애들이 외갓집 식구들을 더 좋아하고 따르는 게 섭섭하진 않아요. 하지만 ‘빼앗긴 아들’ 취급하며 섭섭해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더 자주 찾아뵙고 싶지만 집사람도 일에 치여서….”

사실 강 씨 가족처럼 본가보다는 처가 쪽으로 추(錘)가 기우는 것은 요즘 드문 사례가 아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육아 부담을 친정 부모가 지는 ‘외가 위탁형 육아’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처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

지난해 여성부가 양가 부모가 생존한 1755명의 기혼 남녀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부모 세대 중 어느 쪽에서 도움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아내의 부모에게서 도움을 받았다는 대답이 18.1%로 남편 쪽(11.1%)보다 높게 나타났다. ‘어려울 때 정서적 지원을 주는 부모가 누구냐’는 질문에서도 남편의 부모(3.7%)보다 아내의 부모(12.1%)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본가 쪽으로 기울었던 ‘봉건적인 시댁 중심 문화’가 위축되면서 균형을 잡아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상당수 여성은 상존하는 부계 중심의 전통에 묻혀 허리가 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 추세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과도기를 살고 있는 중년 남자들로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새우처럼 난감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한모(43·경기 성남시) 씨는 명절만 다가오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신혼 초부터 ‘시댁에 가는 일이 큰 스트레스’라며 입이 붓곤 하던 아내가 요즘도 명절이면 일찌감치 아침 차례만 끝나면 자신과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나오려 하기 때문. 명절 전날의 차례 준비를 포함해 연휴의 반을 본가에서 보냈으니 나머지 반을 처가에서 보내는 게 형평에 맞는 일 같기는 하지만, “지금 가려고? 그래, 처갓집에도 잘해야지”라며 등을 두드려 주는 아버지의 눈에 담긴 섭섭함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혼잣말처럼 “못난 놈이…”라며 못마땅해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 자기 나이 때, 병드신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던 기억을 하면 자괴감과 죄책감이 가슴을 후려친다.

“예전에 시댁이란 여성에게 ‘면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죽하면 ‘죽더라도 시댁 귀신이 돼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여성은 ‘아이들이 내 편’이라는 자신감에 덧붙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까지 갖추게 됐습니다.” 남성의 전화 이옥이(李玉伊) 소장의 설명이다.

양측 부모에 대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동등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아내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아들 가진 노부모의 마음은 또 다르다. 그 사이에서 남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형님상을 당한 성모(46) 씨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한창 나이의 형을 잃은 슬픔을 채 수습하기도 전인데 형수가 ‘우리 집에는 이제 남자도 없으니 아버님 제사는 삼촌네가 모시라’고 통고한 것. 그러자 성 씨의 아내는 “제사를 집을 옮겨 가며 모시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일축했다. 장모도 “무슨 소리냐. 죽었어도 장남집이지”라며 아내의 역성을 들고 나섰다.

성 씨는 “이제 곧 아버지 제사가 돌아오는데, 안 그래도 형님 일 때문에 몸져누우신 어머니께는 말씀도 못 드렸다”며 난감해했다.

이의수(李義壽)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은 “독립된 가정을 이룰 때부터 양가 부모와의 관계, 재정 지원 등에서 일정한 원칙을 세우고 그 범위 내에서 양가 부모를 배려하도록 약속해 두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특히 아내들이 친정 부모들과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반면 남편들은 아내는 물론 자기 부모와도 일상적인 만남과 대화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가든 처가든 원활한 의사소통과 일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갈등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조언했다.

벼랑 같은 일터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고, 가정에선 외딴섬처럼 고립돼 버린 이 시대의 중년 남자들. 그들은 일, 가정, 효도, 친구관계 등 어느 것 하나 떳떳이 내세울 게 없다는 패배감 속에 지쳐 가고 있다.

그 원인이 가혹한 경쟁 때문이든, 그 자신도 물들어 있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든, 경륜과 관록으로 사회와 가족을 이끌어 가는 그런 안정감 있고 자신감 넘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게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유윤종 기자 2005-9-2

[울고싶은 남자들]<6·끝> 당신에게 그런 아픔이…

《가을의 문턱, 이 사회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중장년 남성들의 자화상을 담은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를 읽으며 문득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나이 많은 ‘할머니’ 웨이트리스들이 빵과 수프를 날라 주던 그 식당 풍경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뉴욕에는 혼자 사는 중년 남자가 많다 보니 이렇게 가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할머니들이 일하는 식당이 의외로 인기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장의 책임을 홀로 짊어진 채 힘들게 현대 사회를 살아온 중장년 남성들은 어느 정도씩 서로를 닮은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어느 사회에서든, 전통 가치에 안주해 새로운 가치관을 채 준비하지 못한 남성들은 그저 넋을 잃고 그 혼란함을 따갑게 직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중장년 남성들 대부분은 가부장적 가치관 아래 성장한 세대다. 이들은 가부장적 가치의 안락과 혜택을 더 누리지 못하고 변화된 가족 형태 사이에 끼여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이라든가 여성 차별에 대한 수많은 논의는 일단 접어 두자. 이번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 속에 나타난 우리 사회 중년 남성의 쓸쓸한 모습들은 때로는 안쓰러웠고, 그들이 그렇게나 외롭고 허전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웠다.

일찍이 그들이 꿈꾸었던 남성상은 힘과 권위와 성취였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들을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나약한 돈벌이 노동자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은 가장으로서 아내를 거느리고, 자신의 대를 이어갈 자식을 위해 일을 하며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을 보람으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허탈감과 소외감에 빠져 있다.

티베트 고원의 사내들은 이런 중년의 나이가 되면 아내와 자식에게서 벗어나 비로소 한 인간으로 출가를 단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장년은 생물학적 나이의 성인(成人)뿐만 아니라, 진실로 정신의 어른이 되어 가는 나이라는 것이다.

시리즈를 읽고 나서 우리 사회 중장년 남성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남성은 강하다’라는 생각에서 과감히 해방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이건 아내건 독립 개체라는 것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스스로도 당당하게 늙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는 진정한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가령 친가 쪽 중심의 가족관계가 처가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을 보더라도 건강한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라고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원래 가정(familia)이란 말의 뜻은 우리들이 이상으로 삼는 행복의 쉼터를 지칭하는 뜻이 아니었다고 한다. 결혼한 부부와 자녀들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가내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파밀리아’란 한 남성에게 속한 노예들의 총수를 의미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정을 이런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가정의 뜻과 의미, 형태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이 복잡한 시대에 옛날 형태의 가정만을 행복의 이상 형태라 믿는 것은 무리다. 가장의 권위 아래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순종과 위계로 효를 실천하는 형태가 아닌, 다른 가치와 다른 형태의 행복을 새로 창출해야 하지 않을까.

어른을 귀하게 모시고 서로 화합하는 풍습은 이어 가야 하지만, 너무 혈연을 강조하고 또 자식에게 독립심을 길러 주지 못한 채 끝없는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며 이를 애정의 증표로 착각하는 일은 단연 없어져야 할 것이다.

남녀는 대립과 적대의 관계가 아니며 가족도 상하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남성과 아버지가 행복해야 여성도 가족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장년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시대에 맞는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가치 정립, 그리고 서로 간에 진정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혀야겠다는 것도 절감했다.

힘과 관계에만 몰두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보면 의외로 가슴속에 넓은 초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 아직 늠름하게 한 사나이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중장년의 나이란 물리적인 힘으로 외적 세계에 개입하는 나이가 아니라, 내적인 정취나 희열로도 성취가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 나이다.

<문정희 시인>

▼ 정신과 전문의가 본 ‘위기의 중년’ ▼

‘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국의 남자들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정말 한국의 남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요즘 남자들은 맘 놓고 쉴 곳, 맘 놓고 위로받을 곳이 없다. 회사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자리가 없다. 어디에서도 우군을 찾기 힘들다.

남자들이 원해서 지금의 처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다수의 남자는 묵묵히 가정을 지키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 “왜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가?”라고 한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단순함’이 부메랑이 돼 남자에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필자는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는데 상당수 환자가 중년 남성이다.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서 치여 소위 ‘화병’을 얻은 사람도 많다. 면담을 해 보면 대부분 회사 생활을 성실하게 했고 가정에도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병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환자 중 상당수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회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그에 따라 더욱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식의 한탄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 같은 한탄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남자들이 ‘대접’을 받으려면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대접’이란 과거의 권위주의적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우선 ‘모름지기 남자란…’으로 시작하는 낡은 문구부터 버려야 한다. 그 문구가 남자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다 잊어버리자.

남자들도 아줌마들의 수다를 배워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봐도 수다와 유머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결책이다. 수다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남자들이여, 이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자.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도 된다.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가장(家長)은 늘 꼿꼿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남편과 아빠를 바라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자. 요컨대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과 배려도 필요하다. 남자들의 한숨에 “자업자득”이라고 차갑게 쏘아붙이고 싶은 아내, 자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내뱉을지라도 차가운 눈빛, 닫아 버린 마음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자기 아버지의, 자기 남편의 휴지처럼 구겨진 어깨를 보며 쓰라림을 느끼지 않을 아내와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했던 과거를 가진 가장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그들의 헌신마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가족의 작은 배려, 친근한 말 한마디에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소리 없이 웃는 사람들, 그게 남자다.

남성이 ‘대장’으로 군림하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의 리더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조화로운 남성상을 새로 만들어가는 데도 사회 전체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동아일보 2005-9-3)

 

'울고 싶은 남자들'에게 해법이 없는 이유

한국 사회에서 나이 먹는다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시장과 사회생활로부터 '추방'돼 '잉여인간'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째깍째깍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OECD국가 중 '노인자살율 1위'라는 통계는 우리 사회의 '노령화-저출산 현상'과 함께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삶의 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몇 단계를 거쳐 "혼자는 외로워요"로 바뀐 요즈음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유년ㆍ청년기를 지나 중년에 접어드는 통과의례를 겪고 있다"는 말도 꼭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세계통과의례 페스티벌 2005'(9월17~19일)의 사전행사로 6일 서울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열린 '중ㆍ노년의 삶과 통과의례' 토론회에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의 저자 최재천 서울대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앞만 보고 달려오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지금 무엇을 찾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다잉 코리아(Dying Korea)가 될 때

-지금 '통과의례'가 화두가 되는 이유는?
  
"한국은 2020년경이면 5000만 인구를 정점으로 인구가 줄기 시작하고 65세 이상 노인수가 15세 이하 아이들보다 많게 된다. 2002년 월드컵의 '다이나믹 코리아'는 먼 옛날의 추억이 되고 '다잉 코리아', 즉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노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생물학자 입장에서 생물의 가장 큰 통과의례는 '번식'이다. 지구 생명체 중 번식기를 넘기고도 안 죽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고 이 시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번식기를 50년으로 보면 삶은 번식기와 번식후기로 나뉘는데 이 번식후기에 대한 그림 없이 '번식기 관성'으로 삶을 밀어붙이겠다는 건 점점 불가능해진다. 돈도 돈이지만 심심해서 못 견딘다. 자식이 둥지를 떠나면 이모작의 시작이고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왜 안 죽고 잉여인생을 살고 있나' 하는 자책을 않으려면 예전과는 다른 삶의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가정사에 남성 개입 허용 않는 시스템으론 해법 없어"
  
-일에만 헌신해 온 한국 중년 남자들의 문화적 상실감, 아노미 상태에 대한 얘기들이 많다. '울고 싶은 남자들'에 대한 해법은 없나?

 
"강고한 남성 중심적인 한국이라지만 사실 대한민국 남자처럼 불쌍한 남자들이 없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를 보면, 모든 나라에서 남녀 사망률이 초반에는 비슷하다 20~30대에서 남성이 훨씬 높다가 40대로 접어들면 비슷해진다. 이는 전형적인 포유류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40~50대로 들어서면 남성 사망률이 치솟는다. 지나친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압박감 때문에 자기가 인식하지 못한 구조 속에서 그냥 희생되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혹은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착각 속에….
  
대한민국 남성들은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살면서 자식 기르는 재미나 권리를 박탈당하는 줄도 모르고 산다. 보통 우리 추석 명절에 모여봐도 다 어머니 옆에 모여 놀지, 아버지 옆에는 안 모인다. 그 재미도 없는 씨름 프로그램 보면서 귀는 다 저쪽에 가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나. 아버지가 오면 판 깨진다고 도망가니 갈 수도 없고. 자식하고 얘기를 해봤어야 나이 들어도 할 줄 안다.
  
가정사에 남성이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지 않아 자식으로부터 소외된 결과다. 아빠가 자식 기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제가 제일 우습다고 생각하는 게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표현하는 거다. 자기는 집에서 안 사나? 남자들이 집에서 함께 하는 게 없는 것은 결국 '소외감'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어쩔 수 없더라도 다음 세대부터는 꼭 부부가 같이 양육할 수 있는 토양이 돼야 한다."
  
"개인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국가 무책임' 사회선 해법 없다"
  
-50세를 기준으로 제1인생이 살아남기 위해, 번식(자녀양육)을 위해 투쟁하는 시기라면, 제2인생은 사회봉사 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년에 대한 준비와 '이모작'은 여유있는 계층만 가능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여유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엔 이미 명퇴, 실직 등으로 이모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2인생으로의 전환이 부드러운 사람도 있고 힘겨운 사람도 있겠지만 이모작을 할 수 없다면 불행이다. 특히 대한민국 남성들은 그동안 앞만 보고 뛰어 왔는데 멈춰서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결국 사회가 그분들로 하여금 또다른 인생을 개척해갈 수 있는 교육이나 사회활동의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개인 혼자선 너무 힘든 일이다.
  
이들을 방치한다면 일방적으로 먹여살리는 것은 결국 국가적인 부담이다. 교육 등으로 이들에게 활동의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제2인생의 기회조차 돈에 따라 달라진다면 정말 망조가 든 것이다. 자녀도 사교육, 부모도 사교육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제2인생 준비하는 대학이 활성화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한국만큼 교육시장이 큰 나라가 어딨나."
  
"환경적 관점서 보면 '이민'을 통한 '인구이동' 필요"
  
-토론회에서 "출산율 위기는 재앙이지만, 사실 환경을 생각하면 세계의 인구는 줄어야 하고, 실제로 한국인 혈통만 고집하지 않고 이민을 받아들이면 별 문제 없다"고 하셨다. 국민이나 노동자의 개념이 재구성돼야 한다는 건가?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사실 한국에서는 굉장히 인기 없는 말이다. 그러나 선진국 중에 고령화 문제로 고생 안하고 출생률이 2.0대로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이유는 이민에 있다.
  
사실 지구적으로 보면 인구가 과다한 곳에서 적은 곳으로의 '인구이동'이 맞다. 다만, 국가적ㆍ민족주의적으로 보면 안된다고 해서 모든 국가가 출생률 높이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이다. 사실 생물학자 입장에서 지구적 환경으로 보면 넘치는 데서 부족한 곳으로의 '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최서영 기자 200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