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범죄’ 이젠 고치자] 1, 걸리면 재수없다?

국민 4백22만명을 한꺼번에 사면하는 나라. 대한민국에는 그만큼 죄지은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모호한 법이 자리한다. 그 중 하나가 전국민을 전과자로 몰고 있는 경범죄처벌법이다. 2001년에는 한해 동안 7백72만명이 적발돼 성인 4명 중 1명꼴로 경범죄를 위반했다.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법을 위반하고도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법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단속도 들쭉날쭉해서 경범죄를 위반하면 “재수없이 걸렸다”고 둘러대고 만다. 정부로서는 대사면으로 생색내기에 앞서, 이처럼 불합리한 법의 정비부터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과 참여연대는 국민들의 일상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경범죄 처벌법의 문제점과 대안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 문제 = 다음 중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위는?

①술에 취해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②여름 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오디오의 음량을 다소 높였다. ③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아파트 쪽문의 전등을 껐다. ④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돼 중국집 및 피자가게 전단을 아파트 단지에 뿌렸다. ⑤지리산 등산 기념으로 산에 있는 돌멩이를 한 개 주워왔다.

정답은 1~5번, 모두다. 사법 경찰관이 마음만 먹으면 전부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①의 경우 경범죄처벌법 제1조 7항 ‘요부조자(要扶助者) 등 신고불이행’ 혐의로 처벌 받는다. ②는 제1조 26항의 인근소란 등의 혐의가 적용되고, ③처럼 아파트 단지 내 전등을 함부로 껐다가는 제1조 34항의 무단소등 조항에 저촉된다. ④의 경우도 엄격하게 보면 형사처벌의 대상이고(제1조 13항 광고물 무단첨부 등), ⑤도 엄연한 실정법 위법(제1조 20항 자연훼손)이다.

경범죄처벌법에 의하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도, 술에 취해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걸어도, 오물을 방치해도 범죄가 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했어도 경찰에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설령 경찰에 적발돼도 ‘마음씨 좋은’ 경찰관을 만나 그냥 넘어가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경범죄로 실제 처벌을 받게 된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일 뿐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씨(32)는 여자친구와 지난 주말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산책 도중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버리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걸려 벌금 2만원을 냈다. 여자친구 앞에서 사정할 수도 없었다는 그는 “운 나쁘게 걸렸다”며 투덜댔다.

단속 경찰관도 명확한 법 적용 기준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동대문경찰서 생활지도계 관계자는 “젊은 형사와 노형사의 기준이 다르고, 성격이 깐깐하냐 너그러우냐에 따라서도 다르며, 경범죄 위반자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부모뻘 되는 사람이 한 번만 봐달라고 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범죄처벌법이 ‘엿장수 맘대로’ 식의 법이 된 것은 무엇보다 경범죄처벌법 법 조문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1조 24항의 ‘불안감 조성’ 조항이다.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이 조항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 조항은 요즘 ‘1인 시위’ 등을 처벌하는 데 적용되고 있다.

지난 4월 계약보다 적게 지급된 임금을 달라며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인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39), 서울 종로에서 해골 마스크에 온몸을 붕대로 감은 미라 분장을 하고 레미콘 노조 설립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인 김모씨(38) 등의 경우 불안감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됐다.

경희대 법대 서보학 교수는 “경범죄처벌법이 사회 불안을 야기하지 않은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고, 법 조항도 모호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국민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며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창민·심희정 기자 2005-8-28

[‘경범죄’ 이젠 고치자] 2. 법 따로, 현실 따로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선인장을 자르면 징역형을 살고, 플로리다에서는 수영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하면 처벌을 받는다. 캔자스에서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위법이고, 미시간에서는 부인이 남편 허락 없이 머리를 자르면 안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외국의 ‘웃기는 법’ 이야기 한 토막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웃기는 법규’가 있다. 뱀을 팔기 위해 진열하면 안되고, 비밀리에 춤 교습을 해도 안된다. 전당포 장부에 이름 등을 허위 기재해도 안되고, 굴뚝을 방치해도 안된다. 이 모두는 경범죄처벌법에 엄연히 명문화돼 있는 내용이다.

경범죄처벌법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4월1일 제정됐다. 63년과 73년, 88년에 부분 개정 등이 이뤄졌지만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조항이 버젓이 남아 법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제1조 52호 ‘뱀 등 진열행위’는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뱀이나 끔찍한 벌레 등을 팔거나 또는 팔기 위하여 늘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을 처벌하도록 돼 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1년에 수십 건씩 적용이 됐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적용된 예가 거의 없다.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면서 장부에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직업 등을 거짓으로 써 넣은 사람을 처벌하도록 한 제1조 38호의 ‘전당품 장부 허위기재’ 조항도 전당포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지금에는 코미디일 뿐이다. ‘굴뚝 등 관리 소홀’(제1조 30호)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서도 “무허가 판자촌이 난립하고 주택이 개량되기 전인 1950~60년대에는 유용한 조항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 춤 교습 및 장소 제공’(제1조 46호)도 실소를 자아내게 할 조항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퇴폐문화 척결을 명분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단속 경찰관들조차도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 관계자는 “관내 무도장 2곳에서 노인들이 2,000원씩 내고 가서 즐기고 있는데 설령 비밀교습이 이뤄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르신들을 어떻게 처벌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과다노출’(제1조 41호) 조항도 한때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을 단속하는 근거가 됐지만 지금은 남성 변태 성욕자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근거 없이 신기하고 용한 약방문인 것처럼 내세우거나 그밖의 미신의 방법으로 병을 진찰·치료·예방한다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한 사람을 처벌하는 ‘미신요법’(제1조 39호) 조항도 1950~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 알림 = 8월26일자 1면 ‘경범죄’ 기사 중 2001년 한해 동안 경범죄 위반으로 단속된 7백72만명 가운데 지도장 발부자는 7백1만여명이고, 통고처분 및 즉심 청구자는 71만여명이라고 경찰청 생활지도과에서 알려왔습니다.

오창민·최명애기자 2005-8-28

[‘경범죄’ 이젠 고치자] 3. 잣대적용 ‘들쭉날쭉’

2002년 한·일 축구 월드컵을 앞둔 2001년 경찰은 경범죄 위반사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그해 1년 동안 오물투기 혐의로 적발된 인원은 3백32만여명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50% 이상 증가한 수치였다.

경찰의 강도 높은 단속은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02년 5월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경찰의 단속은 월드컵과 함께 끝났다. 그 이후부터는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2002년 오물투기 적발사범은 1백66만여명으로 전년도의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은 이유는 월드컵이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해 연말에는 공교롭게도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청의 한 고위간부는 “선거를 앞두고 경범죄 단속을 강하게 해서 (정권에) 득이 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경범죄처벌법의 권위가 떨어진 데는 이처럼 경찰 단속이 국가나 정권의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이뤄지거나 중지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작용했다. 특히 경범죄 단속은 캠페인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은 이른바 ‘기초질서 위반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92년 경범죄 위반으로 범칙금 통고처분을 받은 사람은 48만6천명.

그러나 93년에는 3백34만명으로 무려 7배나 늘었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공공장소에서 금연 운동이 진행되면서 ‘금연 장소에서의 흡연’ 단속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캠페인이 시들해지면 경찰의 강력한 단속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경찰 단속은 경찰 고위 간부의 개인적 소신에 따라 극심한 기복을 보이기도 한다.

호남 지역의 한 경찰청 생활질서과 관계자는 “지방청장이나 경찰서장 중에는 유독 특정 경범죄 사범에 대해 엄하게 단속하는 분이 있다”며 “이런 분들이 부임하면 지구대별로 단속 경쟁이 벌어져 갑자기 적발자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2002년 경범죄처벌법 법규별 즉심청구 현황을 보면 경찰 단속의 지역차를 확연히 읽을 수 있다. 그해 서울 지역에서는 ‘총포 등 조작장난’(제1조 50호) 혐의로 52명이 즉심에 회부됐다. 그러나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충남·전북·경북경찰청이 각각 1명을 즉심에 회부했을 뿐 다른 지역에서는 단 1건의 단속 실적도 없었다.

암표 매매 단속도 서울에서는 267명을 즉심에 회부했으나 강원, 충북, 경남, 제주 등지에서는 즉심회부 기록이 1건도 없었다. 공원이나 명승지 등에서 함부로 풀·꽃·나무 등을 꺾거나 자연을 해친 사람을 처벌하는 ‘자연훼손’ 조항은 역설적이게도 관광지가 밀집돼 있는 강원도나 제주도에서는 단속 기록이 없다. 그러나 경남지역은 즉심청구가 35건으로 대조됐다.

오창민·장관순기자 2005-8-30

[‘경범죄’ 이젠 고치자] 4. 형평성 없는 처벌법

“범칙금 내는 사람만 손해입니다. 안 내고 버티면 사실상 속수무책이죠.”

일선 경찰관들은 경범죄처벌법이 형평성을 상실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성실하게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범죄 사범 10명 가운데 4~5명은 범칙금을 내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3년이 지나면 시효가 종료돼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경범죄를 위반한 당사자들은 “악법에 대한 저항”이라는 입장이다. ‘재수’가 없어서 경찰에 걸렸고, 먹고 살기 바빠 범칙금 내는 일을 깜빡 잊었을 뿐인데 즉결심판에 출석하라는 것은 지나친 처분이라고 맞서고 있다.

경범죄처벌법 위반자를 경찰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담배 꽁초를 버리다 현장에서 적발된 경우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범행이 경미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은 계도 차원에서 지도장을 주고 끝내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3만원짜리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한다.

경범죄 사범이 정해진 기한(10일) 내에 범칙금을 납부하면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이다. 만약 1차 기한 내에 내지 못했다면 20% 할증된 금액(3만6천원)을 2차 기한(추가 연장 20일) 안에 내면 된다. 2차 기한까지도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경찰은 법원에 즉결심판을 청구하거나 매우 예외적으로 형사입건한다.

2002년에 관련 법이 바뀌어 즉심 직전까지 범칙금에 50%가 할증된 금액(4만5천원)을 내면 사건은 종결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단속에 반발해 범칙금을 내지 않고 있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범칙금 미납자들을 상대로 즉결심판 청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경찰의 즉심 청구를 받아주지 않는다. 경찰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경찰은 범칙금 미납자에게 즉심 출석을 종용할 수는 있지만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당사자가 출석을 거부하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한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은 경범죄 사범 10만9백여명에게 통고처분(범칙금 스티커 발부)을 내렸다. 이 가운데 1·2차 기한 내에 범칙금을 낸 사람은 5만7천9백여명에 불과했다. 범칙금 미납률이 무려 43%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미납률은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 1996년 22%에서 2000년에는 32%로 뛰었다. 4년마다 거의 10%포인트씩 오르고 있다.

서울시내 어느 일선경찰서의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요즘은 스티커를 받는 즉시 경찰관 앞에서 찢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며 “법의 권위가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범칙금 미납자 증가를 국민의 준법의식 해이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법이 잘못 만들어져 국민들의 저항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는 “범칙금 미납률이 5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은 경범죄처벌법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며 “법의 폐지나 전면 개정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오창민·황인찬기자 2005-8-30

[‘경범죄’이젠 고치자] 5. 법개정이냐 폐지냐

경범죄처벌법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경미한 범죄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어떤 행위가 경미한 범죄인지 기준이 모호하다.

또 그런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를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이 만들어지고 반세기가 지나다보니 사회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조문도 많다.

이 때문에 경범죄처벌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는 정부나 시민단체나 이견이 없다. 다만 개정이냐 폐지냐 하는 각론에서 의견이 갈릴 뿐이다.

◇ 경찰 ‘개정에는 찬성’ = 경찰은 경범죄처벌법이 폐지되면 사회가 ‘쓰레기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고, 고성방가를 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 치안망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빈집 등에의 잠복(제1조 1호), 흉기의 은닉휴대(2호), 폭행 등 예비(4호) 같은 조항은 범죄를 예방하는데 꼭 필요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도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조항의 폐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제1조 30호 굴뚝 등 관리소홀, 38호 전당품 장부 허위기재, 39호 미신요법, 46호 비밀 춤 교습 및 장소제공, 52호 뱀 등 진열행위 등은 최근 10년간 거의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해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법 개정시 오히려 강화해야 할 조항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 위반자에게 부과하는 범칙금 제도가 처벌조항이 취약해 범칙금을 내지 않아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납부하는 사람만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관계자는 “납부기간 내 범칙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 대해 법원에 즉결심판을 청구해도 당사자가 출석을 거부하면 달리 제재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 시민단체 ‘폐지해야’ = 반면 시민단체는 경범죄처벌법이 폐지되더라도 기존 법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참여연대 분석에 따르면 경범죄처벌법 54개 조항의 절반가량이 형법 등 다른 법과 겹친다.

불안감 조성(24호), 음주소란(25호), 인근소란(26호) 등의 조항도 삭제 대상 첫 순위에 꼽힌다.

이들 조항은 처벌 범위가 모호해 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에 어긋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경찰이 ‘인근소란’ 혐의를 적용, 처벌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층간 소음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 형태가 일반화된 대도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분쟁이다. 경찰 방침대로라면 아파트 거주자들은 언제라도 형사처벌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는 “경범죄처벌법 어디를 봐도 층간 소음을 처벌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층간 소음은 환경·건설관련 법을 통해 기준을 만들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광고물 무단첩부(13호) 등은 행정처분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새치기(48호) 등은 비난의 대상이지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다.

경원대 법학과 한영수 교수는 “경범죄처벌법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국민들을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며 “개정 수준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창민·최명애기자 2005-8-30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