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

IMF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실패학’이 유행했다. 실패했다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뭔가 배우자는 것이다. 실패한 이유를 뒤집어 보면 성공의 길도 찾을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것. 과연 실패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황금가지 펴냄)는 30∼40대 정치·외교·사회분야 전문가들이 선진국의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우리나라가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단지 학문적인 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세훈 변호사를 비롯, 이영조·김호기·강원택·박철희·정종호·이남주·이재승 교수 등 유학시절 서로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전문가들이 나라별 교훈과 해법을 한자리에 쏟아냈다.

필자들은 영국·프랑스·독일·중국·라틴아메리카·네덜란드·아일랜드·핀란드 등 우리보다 앞서 국가적 성공을 이뤘던 나라들의 실패를 극복하고 재도약한 비결을 소개한다. 물론 이들 국가가 처한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수준에서 정체돼 있는 우리나라가 이들을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하다는 합의에서 출발한다. 선진국들은 왜 실패했고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가? 영국은 무능한 정치권과 노조의 무책임함 등으로 인해 1970년대 이른바 ‘영국병’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대처 총리의 집권으로 과감한 정치개혁이 이뤄지며 집단이기주의가 해소된다. 적시에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못한 일본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졌지만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개혁이 국민과 일체감을 형성, 빛을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사회당의 실패, 독일의 경제위기, 중국의 문화대혁명,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주의 실패, 아일랜드·네덜란드·핀란드의 성공 등을 통해 정치·사회적인 혼란과 경제위기 극복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을까? 필자들은 다른 나라의 위기극복 사례를 통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6가지로 요약한다. ▲경쟁의 활성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 ▲중견국으로서 당당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외 전략 ▲소프트파워의 개발 ▲생산적 복지의 도입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통일 대비 등이 그것이다.

필자들은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사구시’정신으로 장기적 국익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며, 리더보다는 국민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 변호사는 “젊은이들의 생각과 인생목표가 온통 안정된 직장과 아파트 평수 늘리기에 있는 나라에 희망은 없다.”면서 “우리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조국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역설한다. 도태와 재도약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 1만 5000원.

(서울신문 / 김미경 기자 2005-8-27)

[데스크 진단 2002] 존경받는 사람이 없는 나라

요즘 장상 총리서리가 시쳇말로 혼쭐이 나고 있다. 총리서리에 임명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대학가의 거목으로 많은 존경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존경할 만한 인물이 누가인가?" 한결같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 그 다음부터는 이율곡, 김구, 유관순 등 여러 사람이 거론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리스트는 매우 짧다. 고조선에서 시작해 통일 신라,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5000년 역사의 우리 땅에 왜 이리 인물이 없다는 말인가.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답변이 더욱 군색해진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 대통령이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는 경우 가 있지만 유신독재 등의 이유로 전혀 상반된 견해도 많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도 존경받는 인물 리스트에 등재되는 것과 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모 전 대통령이 골프장에 나왔는데 아무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더라' '누구 누구식 영어' 등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행적을 뜯어보면 과실 못지않게 공로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우선주의가 없었으면 오늘날의 한국경제가 있었을까. 막강한 군부세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전두환 대통령은 최소한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는 않고 신의를 지켰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Nordic Policy)은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을 위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시대를 공식적으로 연 주인공이다.

현직 대통령이 한국만큼 무시당하는 나라도 찾기 힘들다. 민주, 공화 양당정치가 뿌리박힌 미국의 경우 치열한 정치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대통령이 중대사안에 대해 국회에서 연설하면 여야 의원들의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는다.

또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미국 의회를 방문할 때도 기립박수와 함께 대단한 환대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축하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부터는 냉소적인 응대를 받았다.

국가원수가 이처럼 대우받다 보니 장ㆍ차관인들 오죽하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공직자가 덤으로 부패권력의 장본인처럼 매도되기 일쑤다. 훌륭한 야당 지도자도 많지만 선진 외국과 같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주변엔 형편없는 지도자들만 있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치풍토가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존경받는 인물이 없는 국가'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기편 자기당이 아니면 모두 형편 없는 인물로 비하한다.

우리 정치권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선량한 국민을 양분시키고 상호 간 불신과 대결구도를 조장해 가며 이를 잘 이용해 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부처와 개별기업은 물론 전국민이 출신지역에 따라 내편 네편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바람에 기업인, 금융인도 존경받는 인물이 없다. 모두가 감옥을 오락가락 하거나 전과자가 되다 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오르는 훌륭한 사업가가 없다. '모두가 도둑놈'같은 사회풍토여서 선생님인들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겠는가.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매맞는 선생님의 눈물을 우리는 남의 일처럼 지켜만 본다.

유엔아동구호기금(유니세프) 아태지역사무소가 작년 초에 한국을 비롯한 중국 호주 홍콩 등 아태지역 17개 국가 1만73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어른들을 매우 존경한다'는 응답 은 17개국 평균이 72%인데 반해 한국은 13%로 골찌를 차지했다. 우리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를 철저히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청소년을 철부지로 무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난센스일 게다. 지난달 월드컵에서 보여준 청소년들을 주축으로 한 붉은 악마의 일거수 일투족은 오히려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으며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세계가 그들을 칭송했다. 기성세대는 붉은 악마의 열기가 자기들의 소산인 양 정부와 기업 차원의 포스트 월드컵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무도 거들떠볼 리 없는 계획서 작성 훈련만 했다.

6월의 하나된 마음, 넘치는 사랑의 땅이 7월 들어서는 다시 구겨지고 패거리싸움을 하는 땅으로 변질되고 있다. 칭찬이 빈약하고 사랑이 척박한 한국땅에 언제나 2002년 6월과 같은 훈풍이 다시 불어올 것인 가.

장용성 편집국 국차장

(매일경제 200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