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와 토문강

우리의 북방영토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두 가지 소식이 한꺼번에 전해졌다.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에서 러시아 측과 공동발굴작업을 하고 있는 고구려연구재단은 지난 21일 현지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 온돌보다 훨씬 큰 고구려식 발해 ‘쌍 구들 온돌’을 발견했다고 한다. 발해 온돌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역사임을 재확인해 주는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소식은 간도(間島)의 영유권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문서 발굴이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가 입수해 공개한 중국의 외교문서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 의정서’는 중국이 1962년 북한과 비밀리에 맺은 국경조약인데, 내용 중 주목되는 것은 백두산 정계비에서 조선과 청이 국경으로 삼았던 토문(土門)강이 두만강이 아니라 쑹화(松花)강 지류임을 중국 측이 인정한 대목이다.

간도는 옥저와 고구려의 영토였다가 나중에 발해가 건국했던 우리 땅으로, 지금도 우리 동포들의 집단 거주지역이다. 1870년 함경도 대기근을 계기로 조선인이 대거 이주해 개간한 땅이었으나 조선인의 정착이 이어지자 청나라가 자국인의 이주를 장려하면서 조선인의 철수를 요구해 분쟁이 일었다. 19세기 후반 두 차례 진행된 국경협상에서 우리 측이 백두산 정계비에 경계로 돼 있는 토문강은 쑹화강의 상류이므로 간도가 우리 영토임을 주장했으나 중국 측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우겨 회담을 결렬시키고 간도의 소유권을 강변했던 것이다. 이후 우리의 국권을 유린한 일본은 만주개발권을 따내기 위해 청과 간도협약을 맺어 청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침략자 일본이 임의로 맺은 간도협약은 국제법상 원천무효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국 스스로 외교문서를 통해 토문강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빼앗긴 간도’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 같다.

(세계일보 / 김국수 논설위원 2005-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