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강대국 힘의 논리' 노골화

러시아가 친(親)서방 노선을 강화한 소련권 국가들에 대한 응징에 나섰다. 에너지 공급과 관련된 특혜를 안 주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자국민에 대한 면책특권을 주는 데 반대하는 나라들에 대한 원조를 줄이고 있다. 강대국의 힘의 논리다.

◆ 러시아는 "에너지가 인상하고 공급 축소" =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3일 "러시아는 소련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국제적 규범과 원칙에 맞게 바꾸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소련 소속 12개국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 외무장관 회담 자리에서다. 라브로프는 "시장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소련권 국가들과의 외교.경제적 관계도 점차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한 크렘린 관계자는 "러시아는 석유.가스 공급가격 인상을 통해 러시아에서 이탈하려는 CIS 국가들을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옛 '사회주의 형제국'에 대한 특혜 차원에서 1000㎥당 55달러(약 5만5000원)에 공급해 오던 가스가격을 국제가격 수준인 160달러 정도까지 인상하고 석유 공급가도 대폭 인상하겠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첫째 표적은 반(反)러 노선의 선봉에 선 우크라이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너지 공급가격을 올리는 동시에 올해 말까지 석유공급량을 17%(약 900만t)나 줄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 수출해 오던 송유관 덤핑가격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국내업자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서방에 붙은 '배신자'에 대한 보복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오렌지혁명'(서구식 시민혁명)을 통해 집권한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며 친서방 노선을 강화해 왔다.

◆ 미국은 "협력하지 않는 나라 원조 축소" = 미국은 2003년 국제형사재판소가 만들어질 때부터 원조를 외교 압력 수단으로 활용했다. 반인륜범죄.인종청소 등 국제범죄를 다룰 국제형사재판소에 미국인(특히 군인)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인이 외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논리다. 미국은 자국민에 대한 면책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한 원조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대상 국가는 대부분 중남미와 아프리카 빈국들이다. 군사협력 지원을 우선 축소했고, 이어 난민구호.의료보건 지원까지 줄이고 있다. 당하는 약소국 입장에선 충격이 크다. 대부분 반미 정서가 강한 나라들이라 반발이 만만찮다. 에콰도르 알프레도 팔라시오 대통령은 6월 TV에 등장해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 유철종 특파원 2005-8-25)

미국·뉴질랜드 ‘안보를 위하여’ 손잡아

20년 불편한 관계 깨고 합동군사훈련 … ‘핵’ 둘러싼 이견은 여전

지난 15일부터 19일 사이 싱가폴 인근 남중국해에서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참여한 13개국의 합동 군사훈련이 개최됐다. 이 훈련에서 미국과 뉴질랜드가 20년만에 처음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했다고 지난 19일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가 전했다. 그 동안 소원했던 양국 군사교류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주재 미국대사관은 이러한 움직임이 양국간의 관계 완화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한 상태다. 미 대사관은 뉴질랜드 헤럴드를 통해 “미국은 뉴질랜드의 PSI 참여를 강력히 지지한다”고만 밝혔다.

뉴질랜드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지난 85년부터다. 뉴질랜드는 핵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미 구축함의 뉴질랜드항 입항을 거부했다. 이에 미국은 미국에 의한 호주와 뉴질랜드의 안보보장을 주요내용으로 하던 태평양 안보조약(ANZUS)에서 뉴질랜드를 제외시켰다. 맞불작전인 셈이다. ANZUS는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2차대전 발발시에 맺은 안보조약을 모태로 한다.

이러한 미국과 뉴질랜드 관계에 변화가 오기 시작된 것은 9.11 테러 이후부터. 뉴질랜드는 아프카니스탄에 군대를 보냈고, 이라크 재건을 돕기도 했다. 미국도 새로운 미국의 통상대표에 전임자보다 유연한 성향의 로버트 포트만을 임명하면서 이에 화답했다.

전문가들은 양국간 관계 개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얼어붙었던 모든 외교관계가 한꺼번에 녹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전 각료인 데렉 퀴글리는 “뉴질랜드는 미국과 관계가 악화된 지난 20년 동안 안보에 관해서 호주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며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상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미국 무역협정 체결에는 핵무기를 실은 선박의 뉴질랜드 입항을 금지하는 ‘반핵법’이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를 방문한 미국 농무장관도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은 부시 행정부의 의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밟힌 바 있다.

뉴질랜드는 현재 호주와 중국과 자유무역협상을 진행중이며,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호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모니터지는 전했다.

(내일신문 / 송경희 리포터 2005-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