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블랙홀’ 미국 NSA 하루 30억 통 전화 도청

미국 15개 정보기관 중 최대…
8개국 참여한 감청시스템 ‘에셜론 프로젝트’ 운영

1998년 개봉된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에서 변호사 로버트 딘(윌 스미스 분)은 한 정보기관의 집요한 추적을 받는다. 이 정보기관은 인공위성을 통해 딘의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뿐 아니라 전화통화는 물론 대화내용까지 엿듣는다.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다소 과장해 묘사된 이 정보기관은 ‘국가안보국’(NSA·National Security Agency)이다.

NSA, 요원만 3만8000명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및 감청이 NSA의 전공(專攻)이다. 세계적으론 중앙정보국(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 정보기관 중 가장 큰 규모와 막강한 정보수집력을 갖고 있는 것이 NSA다. CIA 요원은 1만5000~2만여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NSA는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3만8000여명의 요원이 근무하고 있다. 정보수집 대상국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뛰어난 수학자도 다수 고용하고 있다. 1952년 창설된 NSA는 미국 정보기관 중에도 가장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밀의 기관. 약칭 NSA에 대해 ‘No Such Agency(그런 기관 없음)’ ‘Never Say Anything(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NSA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NSA가 수면 위로 떠올라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 1999~2000년 이른바 ‘에셜론 프로젝트(Echelon Project)’ 파문 때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NSA가 주도적으로 운영해온 전세계 통신감청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전화, 팩시밀리, 이메일, 인터넷 다운로드, 위성통신 등 하루에만 30억 통화를 도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 통신을 모두 집어삼키다시피 하는 블랙홀이라 부를 만하다.

에셜론 프로젝트는 1947년 영국과 미국의 비밀협정인 UKUSA 협정에 따라 1차 가입국인 영국과 미국 외에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앵글로색슨계 3개국을 참여국(제2차 가입국)으로 해 시작됐다.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포함해 한국, 일본, 터키(제3차 가입국) 등이 가입했다. 이 가운데 1·2차 가입국은 에셜론의 모든 감청정보를 제공받지만 3차 가입국의 경우 이전에 가입한 5개국과 달리 정보접근이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셜론은 그 존재 자체가 극비에 부쳐져 있었으나 1999~2000년 호주 정보기관의 시인과 영국 언론의 추적 보도 등으로 실체가 드러나게 됐다.

에셜론은 세계 모든 국가의 행정부와 각종 조직, 그리고 기업 등 비군사적 목표물을 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NSA는 전화, 팩스, 전자우편은 물론 항공기 및 함정의 전파 등 지구상의 모든 신호정보(SIGINT·signal intelligence)를 추적, 수집할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가 인터넷 메일이나 전화로 ‘폭탄(Bomb)’ 등의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즉각 에셜론의 추적 대상이 되며, 이 정보는 미 첩보위성을 통해 NSA 본부가 있는 메릴랜드주 포트 미드로 보내져 수퍼 컴퓨터 등을 통해 분석된다.

신설되는 DNI, 미 15개 정보기관 지휘

NSA는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68년 납북된 푸에블로호는 NSA가 운영하던 정보수집함이었다. 현재 NSA는 한국에 ‘서슬락(SUSLAK)’이라 불리는 일종의 연락사무소를 두고 한국군 통신감청 부대인 777부대(일명 스리세븐 부대)에 감청장비 등을 제공, 북한의 신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 미 연방정부 산하의 정보기관은 NSA를 포함해 모두 15개. CIA와 연방수사국(FBI)을 비롯, 국방정보본부(DIA), 국가정찰국(NRO) 등이 대표적이다. 종전엔 이들 기구의 총지휘·감독을 CIA 국장이 겸임했으나 지난해 12월 이들 15개 기관을 지휘·감독하는 국가정보국장(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보개혁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국가정보국장은 CIA 국장이 겸임하던 15개 정보기관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대통령의 선임 정보자문으로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게 된다. DNI는 또 연간 400억달러에 달하는 정보관련 예산을 감독하고, 국내와 해외의 정보활동을 감독·지휘한다.

NSA가 첨단장비를 활용한 신호정보 수집에 주력하는 반면, CIA는 정보관이나 공작관 스파이 등을 통해 수집하는 인적 정보(HUMINT·human intelligence)를 주로 다룬다. CIA는 2차대전 때 활약한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를 모체로 1947년 만들어졌다. 예산은 1986년엔 28억달러, 1994년엔 30억달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MI5·MI6, 이중스파이로 유명

CIA는 관리부, 첩보부, 공작부, 과학기술부 등 4개 부서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첩보부가 가장 규모가 크다. 첩보부는 정보를 분석하고 생산해낸다. 공작부는 비밀공작, 정보수집, 방첩 등의 임무를 맡는 곳. 공작부의 일부 성공적인 공작 활동으로 ‘CIA는 전지전능한 무소불위의 기관’이라는, 다소 과장된 인식이 퍼져 있지만 실제로는 실패한 공작이 훨씬 많다. 1961년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해 이뤄진 피그스만 공격은 1400여명의 투입 부대원 중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실패로 끝났다. 과학기술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정찰기였던 SR-71과 지금도 사용 중인 U-2 정찰기, 각종 정찰위성의 산파역이 돼왔다.

영국의 정보기관은 영화 ‘007 제임스 본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임스 본드가 속해 있는 기관은 MI6로 알려진 비밀정보국(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미국에서 국내 분야는 FBI가, 해외 분야는 CIA가 각각 맡아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영국에선 MI5로 알려진 보안국(Security Service)이 국내 분야를, MI6가 해외 분야를 맡고 있다.

MI5는 1·2차 대전 중엔 독일 스파이들을, 2차 대전 후엔 소련 스파이들을 색출하는 것이 주임무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800여명의 요원이 있고 6개 처로 편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MI6는 MI5보다 두꺼운 베일에 싸인 기관으로 한때 2300여명의 요원이 있었으나 인원과 예산이 감소 추세인 것으로 전해진다.

MI5와 MI6는 ‘케임브리지 링’이라 불리는 영국 정부 내의 소련 고정간첩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오욕의 역사도 갖고 있다. ‘케임브리지 링’은 1930년대 케임브리지대학 재학 때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학생들이 소련 첩자로 포섭된 뒤 MI5와 MI6, 외무성 등에 들어가 고위직에 오를 때까지 소련에 정보를 제공한 고정간첩망이다. 대표적 고정간첩인 킴 필비는 수많은 고급정보를 소련에 넘긴 혁혁한 공로로, 발각되기 직전 소련으로 피신한 뒤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소련은 그가 죽은 뒤 KGB의 영웅을 주제로 한 우표 시리즈에 그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 이스라엘 모사드

미국이나 영국의 정보기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곳이 이스라엘의 모사드다. 모사드의 모토는 ‘기만에 의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 주로 해외정보 수집을 맡으며 인적정보 수집, 비밀공작 등을 수행한다. 특히 납치·암살 공작까지 편 것으로 유명하다. 모사드는 2차대전 때 유대인 학살에 깊이 관여했지만 신분을 감추고 아르헨티나로 피신한 독일의 대표적 전범(戰犯) 아돌프 아이히만을 집요하게 추적, 1960년 5월 납치해 이스라엘로 압송해 오는 데 성공했다. 아이히만은 1962년 5월 이스라엘에서 처형됐다.

모사드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사살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의 분노’라 불리는 암살 특수부대를 창설, ‘검은 9월단’ 단원들을 차례로 암살하기도 했다. 모사드는 냉전 시절 소련제 최신 무기들을 중동 국가들에서 빼내 미국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모사드 요원 수는 1200~200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에는 이밖에 국내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 정보를 담당하는 아만(AMAN) 등의 정보기관이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정보기관도 상당한 명성을 갖고 있다. 일본의 정보기관은 국가정보기관 성격의 내각정보조사실(이하 내조실)과 군사정보기관인 정보본부, 국내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공안조사청 등으로 나뉜다. 내조실은 1952년 관방장관 산하에 창설된 뒤 1957년 국가 정보수집의 중심기관으로 재발족됐다. 7개 부, 1개 센터로 구성돼 있다.

일, 정찰위성 통해 군사정보 탐지

일본은 내조실을 미 CIA나 이스라엘 모사드를 모델로 해서 총리실 직할 정보기관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150명인 내조실 요원을 1000명 규모로 확대하고 2006년 중 출범시킨다는 것. 공안조사청으로부터 인력지원을 받게 된다. 내조실 확대 개편의 명분은 국제 테러와 북한 공작활동을 사전에 막기 위해 정보수집 및 분석 활동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정보 수집능력 강화도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보본부가 대폭 강화돼 1000여명의 정보분석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1998년 8월 북한이 일본열도를 가로지르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데 자극받아 2003년 3월 2기의 정찰위성을 쏘아올렸다. 이들은 매일 15차례씩 지구를 돌며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 중국, 러시아 등의 군사정보를 탐지하고 있다. 정찰위성은 2006년까지 2기가 추가 발사돼 4기 체제가 구축된다.

태평양전쟁 때 나가노 정보학교와 만주철도주식회사 조사부라는, 세계 정상급 정보 엘리트요원 양성기관을 가졌던 일본. 지금도 그 전통을 살려 정보요원뿐 아니라 종합상사원, 언론인 등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중국의 경우 국가안전부(MSS)가 대표적 정보기관이다. 국가안전부는 1983년 공안부 내의 일부 부서와 당내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의 일부 기능, 군 총참모부의 일부 인력을 통합해 설립됐다.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조직적인 방첩 및 간첩 활동을 벌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17개의 공작국과 10여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신사인 신화사도 중국의 정보수집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밖에 프랑스의 대외안보총국(DGSE), 독일의 연방정보국(BND) 등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보기관들이다.

이처럼 강대국들은 국력 수준에 걸맞은 정보기관을 갖고 있다. 한 전문가는 “선진 강국의 정보기관은 기관 자체의 권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정보 수집력과 분석 능력 등 정보 경쟁력이 강하다”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 국정원도 국제적인 정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질 및 구조개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간조선 /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2005-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