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분 박사의 교육클리닉 ]

(21)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

정훈이(가명)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다. 시험 볼 때면 긴장해 손이 떨려 답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정훈이는 평소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려고 하지만 공부할 때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5분마다 들락날락한다고.

4학년 이후에는 성적이 뚝뚝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학습에 대한 자신감도 잃고 시험 불안까지 생긴듯했다. 지능검사를 해보니 항목마다 기복이 심한 상태로 학습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 등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문제는 없었지만 정서적 어려움 때문에 산만하고 과제에 몰입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정훈이의 연년생 동생은 학교에서 우등생이었고 부모는 알게 모르게 동생과 비교하며 정훈이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정훈이 엄마는 감정기복이 무척 심하고 화를 참지 못해 가족들을 몹시 힘들게 했는데, 특히 정훈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짜증과 분노를 한 몸에 받아내고 있었다. 정훈이 엄마를 상담해보니 그녀 또한 친정 어머니로부터 심한 간섭을 받으며 살았고, 그런 친정어머니를 싫어하면서도 자신 역시 자식들 특히 맏이인 정훈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도 상담을 받게 했고, 점차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정훈이가 빈둥거리더라도 아이와 충돌을 피하고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들어와 아이를 이성적으로 대하도록 했다.

엄마의 태도가 바뀌면서 정훈이도 차츰 편안해져갔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정훈이는 대범해져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지능검사를 다시해 보니 지능지수도 20 정도 상승해 있었고 집중력도 많이 회복되었으며 모든 영역이 균등하게 발달해 있었다.

정훈이가 갖고 있던 문제가 치료된 뒤 독서나 학습을 통해서 부족한 면을 보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만 독서 습관이 갖춰지지 않은 아이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신문에서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를 모아서 스크랩한 뒤 읽게 하고, 아이 스스로 잡지를 골라 흥미를 가지는 것부터 읽도록 했다. 또 만화책이라도 너무 감각적인게 아니라면 독서를 유도하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읽게 했다.

그리고 짧은 분량의 책이라도 처음에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번갈아가며 읽고 차츰 아이가 읽는 양을 늘려 혼자서 읽어 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정훈이는 공부에도 자신이 생겨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가 되었다.

(20) 탈모가 있는 아이

재민(가명)이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다. 정수리 부근에 엄지 손톱만한 원형 탈모가 생기더니 점점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피부과에 갔더니 스트레스성 탈모이니 소아정신과를 추천해주었다고 했다.

재민이 부모는 스트레스성 탈모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가정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재민이는 친구도 잘 사귀고, 야단을 맞아도 노여움을 타지 않는 아이라고 했다. 꾸중을 해도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해 오히려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재민이는 행동이 부산스럽거나 충동적이어서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질문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아 자주 되묻곤 했다. 집에서 공부할 때도 집중을 잘못한다고 했다. 평소엔 그렇지 않다가도 책상에만 앉으면 자주 들락날락했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 숙제하는 데도 몇 시간씩 걸렸다. 오랫동안 공부방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으니 부모로선 답답할 수밖에. 이런 문제로 재민이는 집에서 자주 야단을 맞았다.

검사를 해보니 재민이의 원형 탈모 원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집중력 장애로 나타났다. 요즘은 주의력 결핍 장애에 대해 많이 인식이 돼 있어 치료도 받고 있다. 하지만 재민이처럼 부산함이나 과잉행동이 없어 조용해 보이는 경우는 부모들이 놓치기가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차분해 보이지만 집중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하면 성적이 형편없고,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학교에 다니는 재민이는 좌절감 열등감이 더욱 증폭되었고, 급기야 원형 탈모 증상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원형 탈모는 원인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재민이처럼 선천적인 집중력 장애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경우는 약물치료나 뉴로피드백 치료 등으로 먼저 기질적인 요인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재민이 부모에게는 야단을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아이가 사실은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재민이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고, 재민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것만 빼고 방안 물건들을 다 치웠다. 그리고 숙제할 때 엄마가 옆에서 책을 읽는 등 같이 있어주면서 도와주도록 했다.

(19) 가슴이 답답해요…갈등·스트레스 받는 아이들

마음 속 갈등이나 어려움을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를 신체적인 증상 즉,두통이나 복통,가슴 답답함 등으로 표현한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심이나 불안감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몸이 아픈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훨씬 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희(가명)는 고1 여학생이다. 가슴이 답답하며 등과 목이 쑤신다고 했다. 남희는 원래 공부 잘하고 성실하고 얌전해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신체적인 증상이 생기면서 밤낮 채팅,게임 등 컴퓨터에 매달려 살았다.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이런 행동을 하는 남희를 부모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야단을 칠수록 컴퓨터에 대한 집착은 강해져 부모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점점 더 떨어지고 마침내 등교까지 거부했다.

가족상담을 하다보니 남희의 엄마도 유사한 신체증상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남희의 아빠는 아주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절대로 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성실했지만 감정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어 딸이나 아내의 감정적인 어려움을 이해해주지 못했다.

남희는 아버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신체적인 증상으로 표현하는 엄마의 방어기제를 무의식중에 학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신체화 장애’가 많은 이유는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감정 표현을 어색해 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부모가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특별한 신체적인 병이 없는 데도 ‘여기 저기 아프다’는 것을 습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므로 피해야 한다. 또 아이가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표현했을 때 이를 진지하게 받아주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희의 경우엔 어려움의 뿌리인 아버지의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아버지는 상담을 통해 그동안의 양육방식이 옳지 않음을 느끼고 허용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자녀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다 들어주면서 키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남희의 경우엔 일단 그러한 단계가 필요했다. 남희는 좋아하는 취미를 위한 학원을 다니면서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18) 세살 버릇 여든까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육아나 교육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아이들과 부모를 깊은 수렁에 빠뜨리기도 한다.

인아(가명)는 세살짜리 여자아이다. 어려서부터 까다롭기도 하고 낯가림도 심했던 인아는 두 돌이 되자 고집을 지나치게 부렸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한 번 울기 시작하면 3∼4시간을 계속 심하게 울어 목이 다 쉴 정도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뭐든지 엄마 손을 거쳐서 하려 했고, 엄마가 해주지 않으면 울고 떼를 부렸다.

인아의 고집과 떼가 처음부터 이렇게 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집을 좀 부린다 싶던 아이가 동생을 보면서 증상이 아주 심해졌다. 6개월 전 동생을 낳은 엄마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데 지쳐서 인아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또 인아가 고집을 피우면 ‘이렇게 버릇이 잘못 들었다가는 두 아이를 혼자 키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인아의 고집을 꺾기 위해 몇 시간씩 실랑이를 하고, 매를 대기도 했다. 그럴수록 아이의 고집은 더욱 심해졌고 엄마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감을 잃게 된 인아엄마는 아이를 일관성 없이 대하게 됐다.

아이들은 두돌쯤 되면 누구나 고집을 부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이의 자율성이 조금씩 생기고 ‘자아’가 생기는 징조로 정상적인 정서 발달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현상 없이 너무나 순종적이고 어른 말만 잘 듣는 아이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런 변화를 사전 지식 없이 맞게 되면 ‘세살 버릇’이 계속 되리란 불안 때문에 아이의 고집을 꺾으려고 애를 쓴다.

물론 아이에게 ‘해서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의 한계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무리한 것을 요구하게 되면 고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마련이다.

인아는 엄마가 잘못 대처해 엄마를 이기겠다는 마음이 아이를 지배하게 된 경우였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엄마가 움직여주어야 하고 엄마를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게 된 것이다.

인아가 자율성을 마음껏 발휘해 더 이상 엄마를 통제할 이유가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위험한 일 빼고는 모든 것을 허용해주도록 하였다. 버릇은 인아의 증상이 사라진 뒤 한가지씩 아이의 수준에 맞게 들여 가면 된다. 세살 버릇을 함부로 잡다가는 아이를 망치기 쉽다.

(17) 양보만 하는 아이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동기간과 나눠가져야 하는데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형제 자매 중에 기질적인 문제가 있어 양보해야 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정민(가명)이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로, 똑똑하고 야무지며 매사에 반듯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다. 말썽 한번 부리는 일 없이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여서 손갈 데가 별로 없었다. 그런 정민이에겐 산만하고 말썽을 많이 부리는 동생이 있었다. 욕심도 많아 누나 것은 무엇이든 빼앗고 그럴 때마다 정민이는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동생에게 자기 것을 양보해주었다.

이렇게 또래보다 조숙하게 자란 정민이는 학교에서도 가장 말썽꾸러기 아이와 짝을 하게 되어 그 아이를 보살 펴주는 역할을 했다. 맞벌이를 하며 말썽꾸러기 아들과 정민이를 함께 돌봐야 했던 부모는 때론 정민이가 안쓰럽게 보였지만 특별한 배려는 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정민이가 어느 날 갑자기 TV에서 공포영화를 본 뒤 잠을 자지 못하고 피를 보거나 붉은 색만 보아도 화들짝 놀라고 엉엉 울며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소리도 화가 난 목소리 같다며 불안해했다.

정민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야단도 쳐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괜찮아,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며 아이를 위로해 보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욕구를 무시하고 모든 걸 동생에게 양보함으로써 부모에게 인정을 받아온 정민이는 늘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부모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불안이 공포영화의 ‘피’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되어 표현된 것이다.

이런 정민이의 불안에 대해 “괜찮아”라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도록 하는 위로보다는 “많이 무섭구나. 힘들지?”라고 아이의 상태를 인정해 주는 한마디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정민이 스스로도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자기 주장을 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정민이는 치료를 받으면서 “동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요” 라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엄마에게 표현했다. 정민이는 예전처럼 조숙한 아이가 아니라 어리광도 피우고 욕심도 부리는 아이로 바뀌면서 편안해졌고, 피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16) 아이들의 공포심

여섯살짜리 유치원생 경철(가명)이는 어느 날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밖에 내보내려면 놀랜 아이처럼 겁을 집어 먹고 숨이 멎을 듯이 울어댔다. 이런 증상은 어느날 아침 유치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었고 유치원 가는 방향은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몇 달 전 경철이 엄마는 경철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였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아이들도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철이도 30개월쯤 처음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을 때 ‘가지 않겠다’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철이 부모는 아이들이 부모를 처음 헤어져있으면서 보이는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하고 억지로 보냈다. 그 이후 아이가 공포증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특별한 일 없이 유치원을 잘 다녀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세상으로 나아갈 때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몇 시간 동안이지만 엄마와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는지가 중요하다. 아이들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세 돌은 지나야 무리없이 부모와 떨어질 수 있다. 이 때가 아이들의 인지발달상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다.

세 돌 이전에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양육자와 떨어질 경우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대개 이런 두려움을 처음에는 울음으로 표현하고, 그 다음에는 분노로 바뀌어 고집을 부린다. 그래도 부모가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포기해 버린다. 그러다가 경철이처럼 어느 순간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두려움이 폭발한다.

경철이 엄마는 휴직하고 아이와 늘 함께 지냈다. 아이는 그동안의 분노를 한동안 엄마를 향해 터뜨렸다. 떼를 쓰고 매달리며 상처받았던 그 시기로 퇴행된 행동을 보였지만 차츰 안정되어 갔다. 유치원은 가고 싶어질 때까지 여유있게 기다려 주기로 했다.

(15) 아이가 말이 늦을 때

“아이가 또래보다 말이 늦다”며 소아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단지 말이 늦을 뿐이라고 부모들이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 중 자폐증이나 정신 지체, 부모와의 애착·정서적 장애가 동반된 경우가 많으므로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폐와 같은 타고난 장애가 없더라도 언어 발달 지연은 아이의 인지,정서,사회적 발달 전반에 걸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말이 늦는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행동이 난폭해지거나 고집을 피우기 쉽고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며 미숙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또래들과의 놀이에서 차츰 소외되고, 위축돼 자신감을 잃기 쉽다.

또한 언어를 매개로 한 지능의 발달을 방해받는다. 그래서 타고난 지능이 정상적이라도 오랫동안 언어 지체를 방치할 경우 언어성 지능이 발달하지 못해 지능 발달에 심각한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다. 다른 지능보다 언어성 지능이 떨어지는 정신지체아가 되어 언어를 매개로 이뤄지는 ‘학교 학습’에서 심각한 학습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의 언어 문제를 조기 발견하기 위해선 월령별로 몇 가지 면을 유념해 봐야 한다. 아이가 돌이 되어도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에 반응이 없는지, 21개월이 되어도 간단한 지시에 반응하지 않는지, 25개월이 되어도 2개의 낱말을 조합할 줄 모르거나 신체 부위를 가리키지 못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30개월이 되어도 3개의 낱말을 조합하여 사용할 줄 모르거나, 37개월이 되어도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이 없고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지 등을 관찰해야 한다.

아이가 말이 늦을 때 부모들이 하기 쉬운 실수는 “이게 뭐야?”하는 식의 질문을 반복하고, 아이에게 말을 따라서 해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런 행동은 아이의 말문을 더 닫게 한다. 아이에게 요구하지 말고 부모가 간단한 문장의 말들을 아이에게 자주 말해 언어적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옹아리든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든 아이가 말할 때마다 항상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하는 말의 실수를 교정해 말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려선 안된다. 또한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많이 본다면 이를 차단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또래보다 6개월 이상 말이 늦는다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14) 취학전 기초 가르치기

지훈(가명)이는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아이다. 받아쓰기가 전혀 되지 않고 간단한 계산조차도 틀린다. 그렇다고 지훈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만 3세 때부터 한글을 비롯한 여러 학습지를 섭렵했고, 아이를 붙잡아 놓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가르쳐 봤다. 지훈 엄마는 아이의 지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검사를 해보고 학업을 중단했다가 내년에 다시 입학시키는 게 어떨지 상담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경우다.

지훈이는 몹시 풀이 죽어 있었고,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으며, 만사가 귀찮고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검사를 해보니 지능은 140에 육박하는 최상위 수준이었다.

지훈이나 엄마에게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1년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선 요즘엔 한글 읽기와 쓰기, 기본적인 셈은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지훈이는 전혀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 입학이 다가오면서 불안해진 엄마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화를 내고 체벌을 하면서 공부를 가르쳤다. 그럴수록 아이는 글씨나 책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공부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지훈이 엄마가 심각한 성격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고지식할 정도로 성실하고 원칙대로 열심히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지훈이도 기본부터 착실히 공부해 주기를 바랐다. 처음 습관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맞춤법과 글자의 획순부터 아주 꼼꼼히 글자를 가르쳤고, 머리가 좋은 지훈이로서는 지루한 과정으로 여긴 나머지 공부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초부터 확실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이에 따라선 다를 수도 있다. 아이가 흥미나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 보자. 기초에서 너무 기운을 빼면 재미가 없다. 지훈이도 기초는 최소한의 것만 알도록 하고 넘어 갔다면 공부에 흥미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선 부분을 쌓아 올려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게 중요하다. 또 앞부분을 완전히 이해해야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80%정도만 이해했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앞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의외로 나중엔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능이 정상인 데도 기초조차 이해하지 못할 경우 공부하는 방법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13) 손기능이 떨어지는 아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중에는 미세 소근육의 기능이 부족한 경우가 상당수 있다.

인철(가명)이는 어려서부터 걷기보다는 뛰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학교에 가서도 공부 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장난을 쳐 지적받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선생님에게 대들기도 하고, 학교 규칙을 어기고, 화가 나면 참지 못해 친구들과 다툼도 잦았다. 견디다 못한 인철이의 부모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

진단 결과 인철이는 충동성이 심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나왔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 치료 등을 하면서 인철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서너 시간 걸리던 숙제를 이십분이면 끝내고 차분해져 거의 나무랄 일이 없었다.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소소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하는 리코더 불기를 아무리 연습해도 잘해내지 못했다. 예전에는 연습을 하지 않고 꾀를 부려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치료를 받은 뒤 몇 시간씩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을 했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번번히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만들기 시간에도 열심히 하는 데도 가위질이 서툴고 풀칠도 어설펐다.

인철이 같은 아이들은 대개 손 사용을 점차 싫어하게 된다. 어려서도 물건을 쥐거나 옮길 때 실수를 많이 하고, 단추 끼우기나 운동화 끈 매기가 어려워 엄마가 대신 해주기 쉽다. 선천적으로 부족한 ‘손의 기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기능이 더욱 떨어져 자신감마저 잃기 쉽다.

이런 아이들은 실수를 하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어릴 때 숟가락질부터 옷 입고 벗기 등을 스스로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손 소근육의 발달은 ‘몸 전체를 조절하는 기능’과 연관되기 때문에 신체적인 놀이를 많이 해야 한다. 닭싸움 사방치기 미끄럼타기 그네타기 썰매밀어주기 등 바깥에서 즐기는 놀이가 도움이 된다. 신체 전체를 조절하는 이런 운동들을 하면서 차츰 작은 근육을 사용하는 가위질,젓가락으로 콩 집어 옮기기,종이접기,한손으로 동전 세기 등을 매일 연습시키는 게 도움이 된다.

아이가 차츰차츰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활동만으로 발전이 더딘 아이들을 치료하기는 힘들다. 전문가의 평가를 받고 좀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12)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는 온 집안 식구가 초긴장을 하게 된다. ‘등교거부’는 소아정신과에서도 ‘응급’ 조치가 필요한 증상이다. 오래 지속되면 그만큼 치유하기 힘들고 부작용도 많이 따르게 되는 심각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성윤(가명)이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다. 집에서 늘 의욕이 없고 짜증이 심하며 화를 많이 낸다고 했다. 떼를 부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동생을 심하게 때리기도 한다.

그런 성윤이가 학교에서는 전혀 딴판이었다. 얌전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안 가려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니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성윤 엄마는 직장에 다니고 성윤이는 할머니가 양육했다. 엄마는 성윤이를 많이 통제하는 편이었지만 할머니는 지나치게 허용적이었다. 성윤이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를 오가며 제멋대로이면서 의존적이고, 자신의 요구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럴수록 자신에 대한 열등감만 쌓여 갔고, 집 밖에서는 자신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사소한 자기주장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니 학교에 가는 것도 두려울 수밖에.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선생님이나 친구 관계, 학습 등 가시적인 문제가 아닐 때는 부모와의 관계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원인이 어떤 것이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야 한다. 부모가 함께 학교에 있어 주거나 혹은 한두 시간만 하고 오게 하는 한이 있어도 학교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근면함을 배우는 것은 학동기 아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이며, 한두 번 안 가는 것을 허용하다 보면 다시 보내기가 몇 배로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이와 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친구들의 정보를 참고로 등교 거부의 원인을 찾아보고,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는 아이의 심리내적인 유발 인자를 찾기 위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이가 인지적인 능력이 부족해 또래들과 수준이 맞지 않는다거나, 심한 우울이나 심한 따돌림이 있을 때는 학교에 보내기 전에 먼저 아이의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11) 학원가기 싫어하는 아이

“아이가 학원에 가기 싫어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싫다고 해서 무조건 그만 두게 하면 싫은 걸 영 견디지 못한 채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요즘 엄마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인 혜인(가명)이는 매사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뭔가 잘하고 싶은 의지도 없는 듯 보인단다. 엄마는 혜인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 자신감이 없다고 생각해 학원도 보내고 집에서 공부도 봐주려고 하지만 학원을 보낼 때마다 전쟁이란다. 시간도 안 지킬뿐더러 이루 말할 수 없이 짜증을 낸다고. 엄마는 학원 가기 싫어하는 혜인의 요구를 들어 주기 시작하면 뭐든 쉽게 포기할 것 같아 억지로 보낸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혜인이는 학원뿐 아니라 학교에 갈 때도 전쟁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서 떠먹여 주어야 하고, 옷도 입혀 주고 심지어 양말까지 신겨 차를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해인 엄마 말대로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 줄 수는 없다. 하기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은 선택 사항이다. 그보다는 밥먹고 씻고 옷입고 스스로 준비해서 학교에 가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다. 아이가 해야 하는 일에도 우선 순위가 있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간과하면서 유독 학원을 가지 않으려 할 때만 민감하게 반응해 엄마의 요구를 관철하려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이는 아이가 뒤처지는 것에 대한 엄마의 불안과 성적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조의 영향일 것이다.

혜인 엄마는 혜인이가 공부를 잘하면 자신감도 회복하고 의욕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보다 먼저 아이가 기본적인 생활을 자발적으로 해냈을 때 자신감이나 의욕도 기대할 수 있다.

아이가 학원이나 학습지를 거부하거나 자주 시간에 늦고 미룰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 수준에 맞는 걸 배우는지, 선생님과의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아니면 아이가 학습을 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먼저 살펴야 한다.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가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뭐든지 마지못해 억지로 하게 하는 아이에게서 자발적인 의욕이나 자신감이란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0) 컴퓨터 게임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젊은이가 동료와 상사 8명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수류탄까지 투척했다는 일이 터졌다. 그래픽으로 범행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마치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이는 오래 전부터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고 했다.

IT 강국 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고, 세계 제일의 게임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부모나 아이나 여간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쉽게 게임에 빠져들고 심지어 중독까지 된다. 실제로 어느 집이든 컴퓨터 게임을 둘러싸고 “몇 시간 했느냐?” “이젠 공부 좀 해라” 이런 식의 논쟁이 일상화되어 있고, 아이들끼리 대화도 대부분 컴퓨터 게임에 집중되어 있어 게임을 모르면 대화에도 끼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욕구에 대해 무절제하게 키우는 데다 너무 쉽게 매체에 노출시킨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텔레비전 등을 늘 켜놓고 지내는 집들이 많다.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도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무엇이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어린 아이를 돌보기 힘들 때는 서너 시간씩 텔레비전 만화나 비디오를 켜놓게 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 들지 않게 하려면 아이가 어려서부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영상 매체에 길들여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쉴새없는 시각 자극을 주어 생각할 필요도, 시간도 없게 만들어진 영상 매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사고력도 떨어질 뿐 아니라 책을 읽거나 사색하려 들지 않는다. 또 텔레비전도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프로만 보게 하고,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통제해야 한다. 처음엔 내버려 두다가 아이가 재미를 느낀 이후에 조절하게 하려면 너무 힘들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엔 시간을 제한하는 프로그램이나 요금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을 쓰든지 이도 힘들면 컴퓨터 코드를 빼놓고 정해진 시간 동안에만 연결해 준다.

그리고 숙제 등 ‘해야 할 일’을 한 다음 그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일정 시간 컴퓨터 게임을 허용해야 한다. 컴퓨터 게임,텔레비전 시청 등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버리고 숙제,공부 등 ‘해야 할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데 익숙해진 아이에게 두 가지 일의 순서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컴퓨터 게임 중독도 백가지 약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

(9) 무력감을 학습하는 아이들

철민(가명)이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집중을 하지 못해 성적이 너무 부진하다고 병원을 찾았다. 철민이의 부모님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공부엔 흥미가 없고, 게으르고, 집중을 못하며, 엉뚱한 공상이나 하고 오직 컴퓨터 게임만 한다고 하였다.

철민이와 이야기를 해보니 철민이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살아가는 것에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불순한 아이들과 어울려도 보고, 담배도 피워보고, 술도 마셔 보았다고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나마 몰입할 수 있어 좋고, 괴로운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다고 했다.

부모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부담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좋다는 학원이나 과외를 쉬지 않고 했었단다. 학원 시간에 늦거나 빠지지는 않았지만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다고…. 철민이는 스스로 표현하지는 않했지만 객관적으로 관찰하기에 우울했다.

우리와 한 핏줄을 타고 태어나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카레이스키 청소년들과 서울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상태를 비교해 보니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훨씬 윤택하게 살고 있는 서울의 청소년들이 카레이스키 청소년보다 우울증이 나타나는 비율이 몇배나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눈만 뜨면 ‘공부해라,공부해라’ 친구들과 뛰어놀 새도 없이 학원으로 과외로 내몰리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성적이라는 잣대로 평가되니 공부를 잘하지 않는 아이들은 우울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공부하는데는 적절한 인지적 능력인 타고난 지능, 초인지적 전략인 계획·예측·확인, 정의적 전략인 동기·의욕·자존감 등이 필요하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마지막 정의적 전략인데, 여기에는 ‘정서적인 안정과 자신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대 대다수 아이들은 ‘학습된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즉 아무것도 잘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반복해서 경험하여 이를 학습하고 있다.

아이들은 특성에 따라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 ‘이것만은 정말 자신있어’ 할만 한 것 하나씩만이라도 만들어주자. 그게 비록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뭔가를 잘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갖게 해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자.

(8) 학습장애

지영(가명)이는 적어도 문자를 배우기 전까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한글을 만 4세 때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받침이 없는 글자는 더듬더듬 겨우 읽었지만 어떤 때는 다른 글자로 바꾸어 읽기도 하였고, 눈치껏 자신이 만들어 낸 단어로 대치해 버리기도 했다. 또 한두 단어를 빠뜨리고 읽거나 거꾸로 읽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야단을 많이 쳤다. 그래서 그런지 지영이는 책 읽는 것을 겁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읽기를 가르치기가 어려워졌다. 지영이 엄마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병원을 찾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지영이는 국어 뿐 아니라 사회 자연 수학 등 다른 과목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검사 결과 지영이는 지능은 정상이었지만 읽기 능력에 어려움이 있는 ‘읽기 학습 장애’였다. 학습 장애란 지능에 비해서 학습적인 성취도가 현격히(1.75 표준 편차 이상) 떨어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학습장애에는 읽기장애, 쓰기장애, 산술장애 등이 있으며 이중 90%는 읽기장애다. 읽기장애는 문자의 해독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문자는 읽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해장애도 있다.

지영이는 특히 음소에 대한 음가, 즉 ‘ㄱ’과 ‘ㅏ’를 붙이면 ‘가’라고 발음하며 여기에 ‘ㅇ’ 받침을 붙이면 ‘강’이라는 발음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음가’를 지영이는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방법으로 글씨를 가르치다 보니 아이나 부모나 끊임없이 좌절만 느끼게 될 뿐이었다.

학습장애는 무엇보다 조기 진단이 중요하므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학습 장애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아이가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 적절한지, 발음이 나쁘거나 의미 없는 소리를 자주 내는지, 몸의 사용이나 손의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움이 있는지, 글자나 수의 명칭을 기억하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글자를 베껴 쓰거나 쓰는 방향에 지속적인 혼돈이 있는지, 간단한 산수의 조합에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해 보자. 이런 점들에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집단 괴롭힘

몇 해부터 집단 괴롭힘,소위 ‘이지메’는 이제 우리 아이들 사회에서 만연돼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 됐다.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긴장이 따르고, 그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나머지 구성원이 그 긴장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속성은 어느 사회 집단에서나 있어 왔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따돌림은 방식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원인은 아무래도 사회적 환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공격성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언제든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풍선처럼. 어려서부터 공부면 공부, 예능이면 예능, 순위를 매기고 무한 경쟁 속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은 늘 경쟁에서의 좌절과 아픔을 겪고 그로 인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산다.

이는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춘기 전까지는 부모는 너무 강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감히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기 힘들다. 그래서 그 분노감을 표출할 대상이 만만하게 보이는 ‘또래’가 되기 쉽다.

이것에 일조하는 것이 부모들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부모 세대 역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어려서부터 순위 매김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자식을 볼 때도 자동적으로 줄 세우기를 해 우리 아이가 몇 번째에 해당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고 뒤처져 있으면 안달을 하며 아이를 다그친다. 부모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건 경쟁에서 앞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다그침을 당한 아이들은 힘의 순위에서 자기 밑에 누군가를 두고 지배하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힘이나 비아냥거림,놀림,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행동 등으로.

어떤 시대에나 경쟁은 있어 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왜 더 공격적일까. 컴퓨터 오락이나 TV,영화 등 매체의 영향도 있지만 아이들이 ‘신체 활동 놀이’가 너무 부족한 탓도 있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신체적 활동을 통한 놀이로 이를 해소하며 살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불쌍한 요즘 아이들은 바깥에 나가 뛰어 놀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어도 컴퓨터나 TV에 매달려 산다. 당연히 오를 대로 오른 공격성은 배출구를 찾아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어 애꿎은 친구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괴롭힘의 대상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도 한다.

부모들이여!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자.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그리고 정신이 건전해야 공부도 잘한다.

(6) ‘특별한 놀이시간’ 을 갖자

아이에게 ‘숙제해라’ ‘세수해라’ ‘오락하지 마라’ 등등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 이외의 대화시간을 꼽아 보자. 아마도 전체 대화의 10% 미만일 거다. 아이가 산만하고 말을 듣지 않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부모가 자신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놀이 시간’이 하루에 30분쯤 필요하다. 아이는 그 전에는 말썽을 피우거나 문제를 일으켜야 부정적인 관심을 받던 것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관심을 받는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와의 ‘특별한 놀이 시간’은 어떻게 갖는 것이 좋을까.

첫째, 만일 자녀가 9세 이하라면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20∼30분을 정해 자녀와 놀아주는 게 좋다. 9세 이상이라면 아이를 잘 지켜보다가 혼자서 놀이 활동을 즐기고 있는 시간을 포착해 부모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놀이에 동참한다. 이때 아이의 형제들은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자신이 특별히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둘째, 놀이는 아이가 선택하도록 한다. 하지만 TV 시청 등은 허용해선 안된다.

셋째, 가능한한 아무런 질문도, 지시도 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질문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놀이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단, 아이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는 경우,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질문하는 것은 괜찮다. 그리고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해서도 안된다. 이 시간은 아이가 부모와 함께 온전히 편안히 즐기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넷째, 놀이에서 마음에 드는 점에 대해 이따금씩 칭찬해주고 아이를 인정해주는, 긍정적인 말은 해준다. 예를 들어,“난 우리 철이가 이렇게 차분하게 놀 때가 좋더라” “우리가 함께 하는 이 특별한 시간이 정말 좋아” “야,이거 정말 근사하구나. 참 잘 만들었어” 등등.

다섯째, 아이가 하고 있는 놀이를 잔잔한 목소리로 기술해 주는 것이 좋다. 부모가 아이의 놀이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해설자가 축구나 야구 경기를 중계 방송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를 지키면서 정기적으로 놀이시간을 갖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5) 산만한 아이와 대화하기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는 아이들은 대개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야단을 맞거나 지적을 받고, 부모와의 관계에서 많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아이들과 효과적으로 대화하여 부모 자녀 관계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첫째,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는 되도록 10단어 이하로 짧게 이야기해야 한다. 산만한 아이들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10단어가 넘어가면 ‘불필요한 훈계,잔소리’가 될 뿐이다. 둘째, 부모가 느끼는 생각이나 느낌을 ‘나-전달법’으로 표현해야한다. 예를 들면 “엄마는 약속 시간에 네가 나타나지 않아 몹시 당황했다”는 식으로 부모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해야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넌 왜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니?”라고 표현하면 비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산만한 아이들은 비난의 뉘앙스에 민감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닫아 버리고 부모를 상대하지 않거나 더 반항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셋째, 부모가 말하기 전에 아이 말을 먼저 들어 주어야 한다. 대개 산만한 아이들은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말은 많지만 조리가 없거나 요지가 없이 엉뚱한 곳으로 세어 버린다. 그래서 대개의 부모는 아이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리고 부모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해버리기 일쑤이다. 부모는 아이의 십분의 일만 말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참고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

넷째, 아이의 말을 들을 때는 경청하고 있다는 신호를 아이에게 끊임없이 보여 주어야 한다. 즉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그래서?’ 등등 관심이나 긍정의 뜻을 전달해야지 아이는 의욕을 갖고 자기표현을 하게 된다. 부모가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대꾸도 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듣게 되면 자존감이 낮은 산만한 아이들은 자신을 거부한다고 느껴 상처를 받고 더 이상의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번에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 지나간 이야기나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과거의 잘못을 비난하게 되고 현재의 문제나 주제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떤 태도로 아이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부모는 좋은 ‘조언자’도 될 수 있고 불필요한 ‘잔소리꾼’도 될 수 있다.

(4)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지시하기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의심된다면 아이가 치료를 받는 것과 함께 부모도 아이 다루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반항한다’ 혹은 ‘일부러 부모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되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한번쯤 부모 자신이 아이가 말을 잘 듣도록 효과적으로 지시했는지 되돌아보는게 좋다.

첫째, 아이에게 시키려고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 부모가 먼저 알아야 한다. ‘해도 그만,안해도 그만인 일’은 지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사건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식으로 시키는게 너무 많으면 아이는 부모의 지시를 가볍게 볼 것이다.

둘째, 지시를 내리기 전에 아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먼저 살펴본다. 자녀가 TV를 보고 있거나 컴퓨터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다른 일을 하도록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흥미진진한 것을 하고 있을 때 부모의 지시에 반응하고 따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든지, TV나 컴퓨터를 끄게 한 뒤 지시하는 게 좋다.

셋째, 아이가 부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아이가 딴전을 피우고 있는 상태에선 뭔가를 시키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부모는 반드시 아이와 눈길을 맞춘 상태에서 지시해야 한다.

넷째, 늘 그럴 필요는 없지만 주의 집중력이 아주 짧은 유아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지시를 반복해 보도록 함으로써 지시한 말을 아이가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게 좋다.

다섯째,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시키지 말고 한가지씩만 하도록 한다. 너무 복잡한 일을 한꺼번에 하도록 시킨다면 아이는 쉽게 좌절을 느끼고 부모 말을 아예 안 들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작은 단계로 나눠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나아지면 차츰 복잡한 일도 스스로 단계를 나눠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무엇을 지시할 때는 부탁하거나 사정하듯 하면 오히려 좋지 않다. 표현은 부드럽게 해야 하지만 지시하려는 것을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애매하게 부탁조로 하면 아이에게 오히려 혼란만 줄뿐이다.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말 안 듣는 아이’도 ‘말을 잘 듣는 아이’도 될 수 있다.

(3) 산만한 아이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생각만큼 학습 효과가 없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음의 10개 항목을 정도에 따라 0,1,2,3 점으로 표시해 16점 이상이면 상당히 의심할 만하며, 정밀검사가 필요하다. ①차분하지 못하고 활동적이다 ②쉽게 흥분한다 ③다른 아이에게 방해가 된다 ④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다 ⑤늘 안절부절한다 ⑥주의력이 없고 쉽게 주의가 분산된다 ⑦요구하는 것을 금방 들어줘야 한다 ⑧쉽게 울어 버린다 ⑨금방 기분이 확 변한다 ⑩화를 쉽게 터뜨린다.

정밀검사의 경우 먼저 지능 검사를 통해 주의력이나 집중력을 요하는 항목에서 다른 항목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수를 기록하는지 살펴본다. 다음 집중력 검사를 실시, 자극에 반응하는 양상을 본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너무 빠르거나 느린지, 부주의해서 실수를 많이 하는지 생각없이 충동적으로 반응하는지, 이런 반응에 일관성이 있는지 아니면 비일관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본다. 그리고 이런 반응들이 환경적인 자극이나 박탈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지를 보기 위해 정서적인 상태를 검사한다.

일단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진단되면 치료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먼저 약물치료. 일반인들이 약물치료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부작용만 없다면 효과는 탁월한 편이다. 약을 먹었을 당시에 보이는 식욕 부진이나 수면 장애,메쓰꺼움,복통 혹은 두통 등은 약을 끊으면 즉시 사라지므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틱 장애 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경우 약물치료에 의해 악화될 우려가 있다.

약에 의한 부작용이 염려될 경우 최근엔 뉴로피이드백 치료를 실시한다. 이는 뇌가 가지고 있는 자체의 조절 능력과 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특정 부위 뇌의 상태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에 따라서 집중력을 높여 주거나 유지시켜 주고 충동성을 감소시켜 주는 치료를 한다. 이는 뇌의 자체 기능을 회복,강화시키는 치료이지 외부적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작용이 전혀 없다. 이밖에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모교육, 병으로 인해 결핍되기 쉬운 사회성의 문제를 보강해 주기 위한 사회 기술 훈련을 실시한다. 이밖에 정서적인 장애 등이 있는 경우는 놀이치료나 심리 치료를 병행한다.

(2) 시간관리 개념이 없는 아이

“아이가 급한게 없고 성격이 너무 느긋해요. 늘 약속에도 늦고 학교도 지각이고 학원도 밤낮 지각이에요.” “등교 준비가 전쟁이에요.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어도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올 줄 몰라요.”

요즈음 아이들은 바쁘다. 그러므로 학습 관리의 반은 시간 관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시간개념이 없다면 문제다. 또 이런 아이들은 대개 집중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없다. 정리정돈도 못한다. 이렇게 정신을 쏙 빼놓고 학교나 학원엘 가니 가서도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아이가 왜 이럴까. 성격이 느긋해서? 아니면 엄마를 약 올리려고?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대개 뇌의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일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는 실행 기능, 사물을 분류·정리·조직화하는 능력, 집중해 문제 해결의 전략을 세우는 고차적인 정신기능을 총괄하는 곳이다. 그러니 선천적으로 전두엽 기능이 다소라도 저하된 아이들은 한마디로 ‘머리 속이 뒤죽박죽’인 셈이다.

‘8시30분까지 학교를 가야 하니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 세수하고, 옷 갈아 입고, 밥 먹고 8시에는 출발해야지,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니까’ 라는 식의 당연하고 보통사람들에게는 자동적인 계획이 세워지지 않는다. 내버려두면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런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먼저 간단한 일이라도 계획표를 가시화해서 순서대로 짜보도록 한다. 예를 들어 ‘등교 준비는 무엇부터 시작해서 각각 몇 시까지는 어떤 행동을 마친다’는 식으로. 그리고 이를 카드로 만들어 눈에 띄는 곳곳에 붙여 놓는다. 또 학교에 갈 가방을 챙기는 일도 책과 공책,필기구,숙제,준비물 등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큰 종류별로 분류표를 만들어 붙여 놓고 매일매일 해당 물품을 가방에 넣고 체크하도록 한다.

또 물건을 두는 장소를 일정하게 정해서 서랍에 표시하고 정리하는 것을 반복해서 연습시킨다.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되면 여행 가방 챙기기, 집안의 영수증 분류 등을 맡겨 조직화해서 실행하는 경험을 가져 보게 한다.

이때 부모가 명심할 점은 일이 아이의 현재 능력 수준에 맞아야 하고,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아이의 행동에 대해 그때그때 즉각적인 칭찬과 보상을 해줘야 한다.

(1) 고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져요

요즘에는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소아정신과를 찾아오는 부모들이 부쩍 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4학년부터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어요.” “집에 와서 풀어보면 다 아는 문제인데도 시험 때는 못 풀어요.”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고 속이 탈대로 타서 쏟아내는 하소연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이런 아이들은 대개 긴 문장으로 된 문제를 혼자서 읽어 내지 못한다. 고학년이 되면서 문제의 형태가 달라지니 저학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결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유형은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거나 한 두 단어를 빠뜨리고 읽는 경우,그리고 아예 읽기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 문제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인 경우 집중력의 문제를 의심해 봐야 한다. 이 문제는 사소한 실수를 하는 부주의성과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행동해버리는 인지적인 충동성이 원인이 된다. 그래서 문제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여러 단계를 거쳐야 답을 낼 수 있는 문제가 나오면 끝까지 읽기 어려우니 중간쯤까지만 읽고는 지레 짐작으로 답을 써버린다. 이들에게는 심하지만 않다면 연필로 줄을 그으며 문제를 읽도록 한다든지, 잣대를 대고 읽는 방법을 권해 본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타고난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므로 전문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 후자, 즉 읽기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마와 함께 책읽기를 해보는 것이 좋다. 이해하기 쉬운 짧은 책을 골라 엄마와 아이가 한 페이지씩 번갈아가면서 소리내어 읽다가 차츰 아이가 읽는 분량을 늘려 나가야 한다. 읽기를 할 때마다 다음의 네 가지를 염두에 두도록 훈련한다. 첫째, 본문을 읽기 전에 목차를 미리 살피고, 각각의 목차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를 미리 예측해 본 다음 실제 내용이 어떤 점에서 일치했고, 어떤 점에서 달랐는지를 비교해 본다. 둘째, 읽어가는 내용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거나 실제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시킨다. 셋째, 기존에 알던 지식과 어떤 면에서 일치했고 어떤 면에서 다르거나 모순이 있는지를 비교해 본다. 넷째, 알게 된 지식을 현실과 접목시키거나 연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이와 같이 적극적인 집중력과 읽기훈련이 이루어진다면 ‘아는데도 시험에서 좌절하는’ 억울한 일은 사라질 것이다.

 

이호분 / 연세누리정신과 의원 원장 (02-6357-7575)

(국민일보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