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과거 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의 주역은 미국과 옛 소련이었다. 그리고 개전에 불을 댕기게 될 후보 지역으로는 우선적으로 독일과 중동이 꼽혔다. 전자가 동독을 발진기지로 한 소련군 및 바르샤바조약군의 대규모 탱크부대에 의한 불시의 서독 침공을 상정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노린 소련이 이스라엘과 아랍국간 마찰을 틈타 남하 진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소련은 없다. 동독도,서독도 없다. 게다가 중동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이스라엘과 아랍국들 사이의 전면전 가능성은 잠복상태다. 과거의 3차 대전 시나리오는 백지화된 셈이다. 그런 만큼 오늘날 3차 대전을 운위하는 목소리는 현저하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3차 대전까지는 아니라해도 세계평화를 뒤흔드는 강대국간 충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 그같은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부싯돌 역할을 할 지역도 즉각 떠올릴 수 있다.

다 알다시피 소련을 대신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이 그 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국간 대결 양상은 미·소 냉전에 이은 ‘신(新)냉전’이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당장은 중국이 군사력 등에서 처지는 까닭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미국에 대해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극히 민감한 지역에서 양측이 맞붙을 경우 냉전이 열전화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바로 대만과 한반도다.

그런 의미에서 17일부터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상 최초의 중·러 합동군사훈련(정확하게는 연합합동군사훈련. 2개국 이상의 나라가 참여하는 것이 연합훈련이고, 육군 해군 공군 등 2개 이상의 군이 참가하는 게 합동훈련이다)은 일대 사건이다. 물론 ‘평화의 사명 2005’로 명명된 공동훈련의 표면적인 명분은 국제테러에 대비한 양국간 공조체제 구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유사시 미국 또는 미·일 동맹과 군사적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고 러시아도 처음으로 거기에 동조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공동 군사훈련을 한다고 해서 중·러 관계가 미·일 관계 같은 확고한 군사동맹으로까지 진전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저지한다는 측면에서 양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따라서 냉전시대의 ‘진영(陣營)’ 개념은 아니더라도 미·일 동맹에 상대되는 ‘한 축’으로 분류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량광례 중국군 총참모장이 20일 양국 공동 군사훈련을 이번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또 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례화를 시사한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렇게 보면 문제는 또다시 중·러와 미·일 사이에 끼인 한국의 대응,혹은 선택으로 귀착된다. 스스로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이 이들 주변 강대국에 의해 휘둘리지 않으려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이는 어느 편에 서서든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의견들이 나와 있다. 아직까지 한반도에 냉전구조가 종식되지 않고 있고, 특히 중국의 경우 북한의 후견국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만큼 한국은 전통적인 한·미·일 남방 3각동맹에 충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한국사회에 크게 확산된 ‘반미 기류’를 업고 친중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가하면 양자택일보다는 한·미·중 3각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어려운’ 주장도 제기됐다.

어느 의견이 옳은가.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는 중·러 공동 군사훈련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훈련이 유사시 중·러와 미·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한 것이라고 할 때 중국의 처지에서 ‘유사시’에는 대만과 함께 한반도 상황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정부는 이 훈련이 ‘한반도 유사시 중·러 연합군이 한·미 연합군에 앞서 북한을 제압할 능력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성격도 띠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이같은 분석이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등에 비추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무엇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있더라도 한민족이 지배하는 통일된 한반도를 이룰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평화의 사명 2005’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선택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민일보 / 김상온 논설위원 2005-8-22)